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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03. 2020

24. 청혼

너라면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아서

당신을 나는 내 몸처럼 사랑하오.

이탈리아의 날씨들이 멋진 철새 떼처럼 남쪽에서 날아와 영국의 절벽에 내려앉아 쉬는 것 같은, 눈부신 한여름이다. 낮의 타오르는 열기가 잦아든 늦은 저녁. 꽃향기와 과일 냄새로 가득한 정원을 걷던 제인은 마침 산책을 나온 로체스터와 정원 한가운데서 마주친다. 그는 여전히 애매모호한 태도로 계속 제인의 마음을 떠보기만 하는 것 같다. 그간 애써 억눌렀던 마음과 자신의 처지에 설움이 갑자기 복받친 제인은 울음을 터뜨리고... 그제야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로체스터. 그의 유명한 청혼담이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신기한 당신! 그런 당신을 나는 내 몸처럼 사랑하오. 당신이 가난하고 출신이 비천하고 몸집이 왜소하고 못생겼다 하더라도 부디 나를 남편으로 받아주었으면 하오."   




청혼받은 기억이 없다. 서로 사랑했고, 결혼하기 적당한 때 같았다. 양가의 특별한 반대도 없었다. 결혼까지 너무 수월했다. 남편이 이벤트에 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것 따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았으니, 형식적인 의례 따위 뭐 그리 중요하랴. 아마 그가 특별한 청혼 이벤트를 준비하기라도 했다면 지금 나는 부끄럽고 어색했던 순간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참 고약하게도, 하루 종일 청혼에 대해 골똘하게 생각하는 도중 난데없이 연애가 무르익던 그 어느 날의 대화가 떠오른 건 뭘까.


"당신은 나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너...?"


서로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흔히 나누는 그렇고 그런 대화 중 하나였는데,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남편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거다.


"너라면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아서."


흠. 이렇게 말하면 남편을 어머니에 대해 지극정성으로 생각하는 마마보이쯤으로 오해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 부연 설명을 좀 해야겠다. 남편은 특별한 용무가 아니면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건 어머니나 아내나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24시간 공적 통화로도 너무 바쁜 그에게 사적 통화란 연중 행사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가 나를 사랑하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그 대답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너라면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았어"가 다시 화두에 오른 건 우리나라의 '가족주의'를 주제로 다룬 책을 만나면서였다. 한민족에 혈연으로 똘똘 뭉쳐 유독 이질적인 것에 취약한 우리나라. 쇄국정책으로 인해 강제로 외세에 의해 개방이 되고 그 후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침탈과 전쟁을 겪었다. 폐허 위에 새로 나라의 기초를 세우려다 보니 급한 마음에 받아온 게 미국과 일본의 선진 제도. 그들 나라 실정에 맞게 구축된 문물과 제도는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식되어 정치, 경제, 교육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자본 경제와 산업 역군 양성을 목적으로 한 교육은 강한 것만 살아 남기는 이상한 공화국을 이 땅에 세웠다.


'가족주의'는 그렇게 폐허 위에 아파트를 올리고, 공장을 가동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다보니 우리가 미리 치를 밖에 없었던 후불제 민주주의의 일부였. 개인의 욕망은 가족의 욕망보다 앞설 수 없었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 <공부 공부>라는 책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공부'는 신분 상승과 출세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었다. 당시에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의대나 법대를 가지 않고 철학이나 문학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생각만 하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던 시절. 공부해야 출세하는데, 모든 아이를 밀어줄 만큼 경제적 여력이 안됐다. 장남은 출세해야 했기에 자신의 기호와 상관없이 공부해야 했고, 장남의 성공을 위해 나머지 동생들은 자신의 욕망과 상관없이 공장에 다녀야 했다. 개인의 욕망을 금지하고 책임과 의무를 앞세우는 게 그 당시 ‘선’이었고, 그 가치는 고스란히 한국형 ‘가족주의’의 특징이 되었다.


비단 공부 뿐이겠는가. '나'가 아닌 '우리'로 살게 하는 것은 이미 우리 의식 중에도 스며들어 있다. 나만 해도 '남편'을 지칭할 때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남편'이라고 해야 편하다. 생활 전반에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훨씬 지배적이 된 요즘에도 언어와 습관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중이다. 그러니 로맨틱하거나 입에 발린 말을 할 줄 모르는 그 남자는 기습적으로 받은 여자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너라면 우리 엄마랑 잘 지낼 거 같아서"라고.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다. 청혼 그게 뭐 대수라고. 너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쯤 몰랐다고, 그것에 나보다 가족의 혹은 전체의 가치를 담았다 해서 뭐 어떤가. 근데 <공부 공부> 그 장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런 가족주의적 특징 때문에 한국에 유독 ‘일 중독’이 많고, 일의 성취를 위해 ‘불법이나 탈법’도 불사하게 됐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곧 ‘선’이라고 배운 세대의 특징이 있다. 이들은 일이 되게 해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불법이나 탈법도 불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일 중독’이라고 불릴 만큼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다. 여기에 압축적 근대화가 결합되어, 이들은 최대한 빨리 일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선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 능력주의. 일중독.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이 우선이고, 최대한 빨리 일이 되게 하는 것을 선이요 능력이라고 여기는 생각. '불법이나 탈법도 불사하는 경향'만 빼곤 고스란히 내 남편을 가리키는 가치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던 이 땅의 다른 어머니들과 똑같았다. 아들이 설거지라도 거들라치면 "남자는 잔잔한 일 하면 큰일 못한대이"라며 부엌에서 밀쳐냈다. 그 아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부모의 바람대로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진 못했지만 벤처기업에 투신해 성실하게 영업을 뛰었다. 잘못된 관행과 싸우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고쳤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 중 하나다. 빨리 성공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집안일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음은 당연했다. 게다가 집안일은 전통적으로 여자일이 아니던가. 아내가 맞벌이를 접고 집안에 들어앉겠다고 했을 때 그는 그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아내에게 경력단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대로 누구나 말하는 성공까지 그가 무한 질주했다면, 그의 아내도 그의 청혼인지 고백인지 모를 그 어느 날의 일까지 지금 떠올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돈으로 되는 일은 돈으로 안 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따위? 아무렴 어떤가. 그가 이미 온몸으로 금화를 뿌려대며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그는 더이상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그가 자기 일을 자기 몸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만큼 오래되었다. 나는 한 칸 물러설 곳을 마련해 두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해도, 그는 온몸을 다 바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가 아내 대신 맞바꾼 헌신에 대해 이 사회는 지금쯤 어느 정도 보답해줘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회는 앞으로도 별로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의 아내는 그 사실이 지금 서글플 뿐이다.    



<공부 공부>, 엄기호 저,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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