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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20. 2022

내 아이가 사이코패스인 줄 알았다

감정을 머리로 이해한다고?

지금이야 신경증, 정신증, 발달 및 성격 장애에 이르는 정신 장애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지만, 3-4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자폐가 선천적인 뇌손상의 문제인지 환경적 문제인지, 중독이 신경증의 문제인지 정신증의 문제인지, 틱이 불안 장애가 아니라 왜 행동 장애에 속하는지, 발달 장애- ADHD와 자폐증은 최근에 왜 이렇게 이슈가 되고 있는지... 이해가 넓어진 만큼 그걸 지칭하는 병명과 진단도 많아졌다. 그래서 더 헷갈린다. 그리고 그때 나도 상담사인 후배가 들려준 '감정을 이해하는 저마다의 코드'에 대해 힌트를 얻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내 아들이 사이코패스인 줄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부모 말일랑 귓등으로도 넘기고, 무신경 하기 그지없는 사춘기 아들을 보며  의심하며 나누던 짧지만 소중했던 대화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본다.



나 : 사춘기 첫째랑 싸우면서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 이런 거거든. 내가 얘기했지? 애가 어쩔 때 보면 사이코패스 같다고. 우리 부부가 이렇게까지 화가 난다, 너의 달라진 행동 때문에 힘들다, 하는데 애는 전혀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기색조차 없는 거 같은 거야.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는 거 같달까. 그러다 보니, 어쩔 땐 이대로 자라서 ‘사이코패스’가 되면 어쩌나 싶은 극도의 불안이 올라오는 거지.


후배 : 일단, 선배네 첫째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것에 제 모든 걸 걸겠습니다. (웃음)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하는 사이코패스는 일단, 유전적 성향이 우세하고 뇌기능적인 문제예요. 이런 성향의 사람들은 뇌의 모습 자체가 일반 사람들과 많이 다르죠. 흔히 일반 사람들에 비해 회백질 부분이 지나치게 수축되어 있는데, 그 부분이 정서적 영역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보니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죄책감 역시 잘 못 느끼게 되는 거예요.


나 : 아, 사이코패스는 정서적 문제가 아니라 뇌기능의 문제구나.

(베스트셀러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가 갖고 있던 알렉시티미아 같은 것이 '선천적' 감정표현 불능증의 대표 격)


후배 : 발달 장애 아이들도 ‘뇌손상’의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어렸을 때 해당 유형의 행동 패턴이 발견되면, 상담이나 치료를 통해 사회화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일반 사람들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머리로 인식시키고 대처하도록 말이죠. 이런 아이들은 감정을 ‘보는 것’ 자체가 학습이 되죠.


나 : 그럼 내가 우리 집 첫째한테 받은 이런 ‘무신경한 느낌’은 어디서 온 걸까.


후배 : 사람마다 감정을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요. 그 마음을 자기에게 대입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동요하죠. 그러고 나서 상대를 위로해요. 어떤 사람은 감정을 ‘사고’ 하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들은 상황 자체의 전후 맥락을 듣고, 이해하고, 판단을 내리죠.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는 식으로 사고 회로를 돌려요. "상대방이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게 좋았겠다.” 하고 대처 방법을 조언하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감정을 공감하고, 같은 방법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대처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나 : 감정을 해석하고 공감하는 방법이 다 다른 거구나.


후배 : 저희 부부가 아이들 앞에서 싸운 적이 있거든요. 애들이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겠어요. 둘 다 어리둥절하고, 또 불안해했죠. 그런 경우 저희 집 첫째는 절대 먼저 물어보지 않아요. 눈치를 살피고 그냥 있어요. 동상처럼 경직된 듯이요. 그러다 보니 첫째에게는 꼭 나중에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했어요. “엄마가 아빠랑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가 잘 이해를 못 해서 엄마가 목소리가 좀 높아진 거야. 너도 동생한테 말하는데 동생이 이해를 못 하면 목소리가 커지잖아. 그렇다고 동생이랑 다시는 안 보는 거 아니지? 마찬가지로 엄마하고 아빠가 큰 소리를 내며 싸워도 서로 미워서 그런 게 아니야.” 하고 말이죠. 그러면 저희 집 첫째는 “응. 알았어.”하고 바로 이해를 하고 편안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죠. 근데, 반응이 너무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이 받아들이니까, 마치 로봇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첫째는 머리로 이해가 된 순간, 마음도 바로 정리가 된 거였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부모님의 상황을 수용한 거죠. 그때 알았어요. 이게 저희 집 첫째가 공감하는 방법이었단 것을요. 사고를 먼저 하고 그다음 마음으로 가더라고요.


나 : 아, 감정을 머리로 먼저 받는 거구나?


후배 : 네. 감정이 가슴보다 머리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관계를 이해하는 코드가 머리에 있어요. 그래서 설명을 잘해주면 그 감정을 머리로 잘 이해해요. 반면 둘째는 엄마, 아빠가 큰소리를 내면 갑자기 자기 옷 정리를 막 해요. (웃음) 그러곤 나중에 저에게 와서, “어제 엄마하고 아빠랑 내가 옷 정리를 잘 안 해서 싸운 거지? 내가 말 안 들어서... 이제부터 내가 잘할게.”하고 말해요.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아빠랑 엄마가 다른 걸로 이야기하다 의견이 맞지 않아서 그런 거야. 너도 친구랑 잘 놀다가도 마음이 안 맞으면 싸우지? 그래도 다음날 놀잖아.”하고 얘기하면 금세 얼굴이 환해져요. “아, 그런 거였어? 아빠가 잘못했네. 그래서 엄마 지금 괜찮아?”하며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표현해요. 마음에 담아두지 않죠. 그 아인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와서 물어봐요. 그리고 자신의 생각도 잘 표현하죠. 방금처럼 “아빠가 잘못했네.”하며 한쪽 편을 들기도 하고, 엄마 감정을 살피기도 해요. “그래서, 아빠가 엄마한테 사과했어?”하고 위로도 하고요. 둘째는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아이인 거죠.


나 : 맞아. 둘째는 내가 마음 상해 있으면 자기가 대신 뭔가 잘해주고 싶어 하고 그러지. 근데 첫째는 무슨 상황이 있어도 묻지도, 표현하지도 않으니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네.


후배 : 네. 그래서 머리를 많이 쓰는 아이는 관계적인 것에 취약하게 보이죠. 화가 나도 묻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눈치를 보며 상황을 살피고요. ‘내가 무슨 문제를 일으켜서 그런가? 괜히 물어봤다 혼나면 어쩌지?’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도 하고, 또 속으로 혼자 나름의 추론도 하죠. 그러니, 이 두 녀석만 봐도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하고, 공감하는 게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죠?


나 : 머리로 감정을 이해하는 아이에게는, 먼저 묻고 설명해줘서 머리로 이해시켜주면 되는 거구나. 아, 그래서 내가 그동안 그렇게 애가 이상했다고 느낀 거구나. 네 말이 맞는 것 같은 게... 내가 막상 아이랑 어떤 문제로 싸울 땐 애가 하나도 공감하는 느낌이 아니었거든? 근데 서로 감정 가라앉고 이성적으로 그때 상황에 대해 차분히 얘기하다 보면 애가 그때의 맥락과 정황을 잘 이해하고 있더라고. 그게 참 이상하긴 했어.


후배 : 네... 선배네 첫째는 머리가 먼저 움직이는 유형이었던 거죠.


나 : 그러고 보니, 나도 있잖아. 나 스스로 되게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사람한테는 잘하는데, 막상 눈앞에 없으면 그리워하지도, 먼저 찾지도, 관계를 잘 이어가지 못해. 근데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따듯한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거야. 그게 나 스스로 되게 모순되게 느껴졌는데... 네 얘길 듣고 보니 이게 같은 맥락인 거 같단 생각이 들어. 내가 ‘머리’로 이해한 것을 그 사람은 ‘가슴’으로 받으면서 나를 따듯한 가슴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가봐.


후배 : 보통 우리가 상대를 받아들일 때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게 되잖아요. 상대방이 무슨 얘길 하든, 자신의 창으로 먼저 필터링하죠. 그러니 같은 말, 같은 상황인데도 사람마다 공감하고 반응하는 방법이 다 다른 거겠죠.


나 : 내가 가슴으로 잘 안 내려가지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타인에 대한 공감이랄지, 서로 다름에 대한 것을 이렇게 머리로라도 이해해보고자 집요하게 질문했던 거 같기도 하고.


후배 : 어떤 사람은 머리로, 어떤 사람은 가슴으로... 허락되는 대로 하는 거죠. 너무 완벽한 이해나 공감을 하려고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아이의 불편한 마음을 그저 “그럴 수 있겠구나.”하고 수용만 해줘도 되는 거죠. 초반에도 그런 얘기 나눴죠? 속속들이 이해하고 알아야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나랑 닮은 아이여서 더 화가 난다고, 너무 잘 알아서 골이 더 깊어지기도 하는 거라고요. 어쩌면 그건 아이보다 엄마 스스로가 느끼는 답답함 일 수 있죠.


나 : 그러게. 완벽한 이해나 공감도 해본 적 없으면서 나는 왜 부족한 대로 아이 편에 서서 지지하지도 못하는 건지.


후배 : 사람마다 이상한 완벽증 같은 게 있잖아요. 분야가 다를 뿐.


나 : 너랑 이야기 시작한 게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이에 대해, 남편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했던 게 결국 요즘 다 다시 나에게 되꽂히는 기분이야. 초반엔 남편이 아이에게 공감하지 않고 해결 위주로 하다 보니 아이와 관계가 더 악화된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나 또한 문제 앞에서 나를 변명하고 아이에게 계속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며 해결중심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고 있었더라고. 마찬가지로 그 아이의 무신경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아이처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네. 그러니, 아이가 그렇게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외로워했던 거고. 휘유. 상대방을 향하던 손가락이 일제히 나에게 돌아서는 이 느낌 아니?


후배 : 그래서 모든 상담은 ‘나’의 변화라고 하는 거예요. 그만큼 그동안 선배가 고민하고 깨지면서 성장했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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