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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18. 2022

첫째 아이, 둘째 아이

기질인가 양육인가, 하는 문제



앞서 둘째 아들에 대한 울트라급 폭풍 자랑을 예고한 바 있지만, 내가 그 정도로 푼수는 아니다. 세상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자식 자랑이라지 않나. 둘째 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저 첫째 아들과 완전 반대라는 사실만 언급해 두겠다. (이하 둘째, 첫째로 명명)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거나 잘 입고, 잘 자고,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자신의 물건과 준비물을 스스로 챙겼다. 오히려 엄마가 잊어버릴까 보아 엄마, 언제까지 뭐 준비해야 돼,라고 며칠 전부터 알려주는 세심함까지 갖춘 매너남.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해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남자 친구 일 순위를 놓쳐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직 모태솔로)


첫째와는 29개월, 만 3년 차이라 체력적으로 밀릴 만도 한데, 어렸을 때부터 형님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운동에 대한 특별한 감각은 이때 형님 좇아다니며 단련된 것이라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축구, 농구, 배드민턴, 수영, 합기도 등 가르치는 운동마다 1,2등을 다투고 한번 시작하면 그만두는 법이 없다. 욕심이 많아서 피아노를 하나 가르치면 드럼, 기타, 우쿨렐레로 무한 관심이 뻗쳤다. 노는 데에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농구를 하러 나갔다가, 영화 보는 그룹에서 부르면 다시 영화관으로, 노래방으로, 에버랜드로... 주말에 나가면 11시가 넘어야 겨우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허덕거리며 기어 들어온다. 그렇게 바쁘면 빡센 학원 숙제 한번 안 해갈 수도 있건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못 견딘다. 


그러다 보니 둘째 아들과 대화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아들아, 그러다 쓰러질 것 같아 걱정이 되는구나. 숙제 좀 못하면 어떠하뇨. 오늘은 제발 좀 그냥 쉬면 안 되겠니?"

아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그런 나약한 소리는 집어치우시옵소서). 소자는 숙제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맘 놓고 쉴 수가 없사옵니다." 


당연히 학급에서 회장 부회장 자리를 놓쳐 본 적이 없고, 전교 회장 따위 나가면 무조건 당선이지만 피곤해서 안 나간다. 한마디로 운동 잘해, 공부 잘해, 놀기 잘해, 성격 좋은 둘째는 첫째와 다른 이유로 인기가 많다. 내가 이런 아들을 낳은 걸 보니 진짜 전생에 세상을 여러 번 구한 게 틀림없다. (푼수 짓 안 한다더니 결국... 쯧쯧)


암튼 다르다. 어찌 이렇게 다를까.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매일 같은 밥 먹고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첫째 사춘기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나는 또 물어보았다. 대체 내가 뭘 어쨌길래 첫째와 둘째가 이렇게 다른 거냐며. 역시 베테랑 상담사인 후배의 레이더는 남달랐다.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제가 보기엔 둘이 크게 다른 거 같지 않은데요?"


나는 다시 눈을 똥그랗게 떴다.  


"표현되는 양상만 보면 크게 다른 것 같지만, 저에게는 두 아이가 모두 같은 '맥'으로 보여요." 

"뭐어? 도대체 어떤 점이? 우리 집 첫째는 지나치게 자유롭고 늘 헤벌레~ 한데, 둘째는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자기 할 일 잘 챙기기잖아. 그게 어떻게 같은 뿌리라는 거야?"

"선배네 첫째는 표면적인 변화에 까다롭게 구는 거잖아요. 자신의 신체에 닿거나 자신이 보이는 것 위주로 예민하죠. 규율 따위와 무관하게 자유로운 기질의 영혼처럼 보이고요. 둘째는 겉으로 보기에 자기 관리 철저하고 투덜거리지 않고 할 일 잘하잖아요. 부모 입장에선 책임감 있는 모범 아들처럼 보이죠? 하지만 그 기저에는 둘 다 ‘불안과 긴장’이라는 맥이 흐르고 있어요. 둘째 보면서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자기 물건 잘 챙기고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 없으세요? 그 이유가, 자기가 챙기지 않으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그건, 곧 믿을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생각에, 아님 기질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죠. 첫째가 장난감에 흠집 하나만 나도 죽고 싶다고 하는 것 같은 예민함과 같은 맥인 거예요. 

"흠. 그러니까, 우리 둘째가 지나치게 자기 관리가 잘 됐던 이유가, ‘에미가 못 미더웠기 때문’이라는 거야? 엄마만 믿고 있다간 준비물 잊고 가기 십상이겠다 싶어서? 

"(웃음) 꼭 그렇다기 보다 두 아이 모두 ‘불안과 긴장’이라는 두 맥이 기저에 깔린 거 같다는 거죠. 부모의 기질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으니 전혀 다른 아이일 순 없을 거라는. 재차 강조하지만, 드러나는 모습과 패턴만으론 판단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보상적 행동은 적당히만 활용하면 아주 훌륭한 성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죠."


둘째가 나이에 비해 잘 챙기는 게 정말 신기하긴 했다. 물론 그때는 아빠 닮아 시간과 스케줄 강박이 좀 있겠거니, 아님 형님과 엄마가 맨날 그런 걸로 지지고 볶으니 옆에서 자연스럽게 반면교사 삼아 배운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에미 신경 안쓰이게 알아서 잘하니, 너무 무리하지 않게 옆에서 적당히 제동 걸고, 그저 "고맙다"고만 표현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근데 그게 같은 뿌리 일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작년에 둘째가 한동안 가슴 통증과 두통을 호소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본 적이 있었다. 머리 심장 할 것 없이 모두 검사해 보았으나, 결국 아무런 신체적 이상은 없었다. 두통이야 어렸을 때부터 땡볕에서 오래 운동하거나 더위를 먹을 때, 그리고 수학 시간(싫어 하는 과목)에 가끔 호소한 적은 있어서 익숙했다. 하지만 쥐어짜는 듯하 가슴 통증은 살짝 공황과 닿는 증상이라 조금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아무 근거 없는 엄마의 촉인데... 나는 둘째의 가슴 통증이 내가 사춘기 때 첫째 아들과 싸우며 드리운 그림자가 아닌지 살짝 의심하고 있다. 


첫째 사춘기로 싸우면서 내가 놓친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싸우는 동안 그걸 내내 세 살 터울 동생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도 첫째도 자기 감정에 치닫느라, 누가 우릴 지켜보고 있을 거란 건 전혀 생각도 못했다. 후배 말대로 둘째 또한 불안과 긴장이 높은 아이라면, 어느 구석에서 외로이 자신의 어린 심장을 조이고 있었겠구나 싶어 뒤늦게 후회가 밀려 들었다. 


그게 첫째 사춘기 치르며 내가 놓친 또 하나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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