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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29. 2022

아침상에 올린 생선구이과 스테이크의 문제

예민한 걸까, 예민해진 걸까



다시 첫 장, 발목 늘어난 양말로 돌아가 보려 한다. 내가 발목이 늘어난 양말은 '못 신는 양말'로 규정한 예민한 아들에게 '새 양말'을 사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참고:모든 것은 양말에서 시작되었다)에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런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들이 으엥, 하면 달려가 젖을 물리고, 으엥 으엥, 하면 다시 기저귀를 열어 보고, 으엥 으엥 으엥, 하면 아이를 업고 달래며 아들의 요구에 최적화된 에미였다. 아들이 엄마, 이것 좀 보세요~ 하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부리나케 달려와 아들이 만든 별것도 아닌 레고 블록에 환호와 탄성을 연발했고,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귀를 곤두세우며 살았다. 그러니, 또래보다 훨씬 작고 입맛 까탈스러운 아들이 먹고 싶은 게 있다고 하면 천리를 달려가서도 구해 줄 자세가 되어 있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많지 않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


그래서 아침마다 생선과 스테이크를 구웠다. 나는 이제 아침마다 달려 나갈 직장이 있지 않았고 오전 중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아이들 제대로 먹여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는 일뿐이었다. 나는 첫째가 원하는 생선과, 둘째가 원하는 스테이크를 구워주기 충분한 아침 시간이 있었다. 아마, 내가 맞벌이를 하는 여자였다면 생선만 간신히 굽고, 엄마 식단에 너희 입맛을 맞추라고 했을 거였다. 아침부터 생선구이라니. 그냥 마른반찬에 젓갈만 내놓고 한술을 뜨라고, 아님 옆집처럼 일찌감치 콘푸레이크를 아침 식사 대용으로 못 박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전업주부였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웃 엄마들과 식단 얘길 하다가 누가 이런 밑반찬 한번 만들어 먹여봐,라고 하면 이렇게 얘기했다. 

"자기네는 애들이 밑반찬 잘 먹나 봐? 우리 애들은 밑반찬 절대 안 먹잖아. 생선이나 고기 없으면 밥을 안 먹어."

그럼 음식에 진심이 다른 옆집 엄마가 나를 거들었다.

"맞아. 우리 애들도 미리 해둔 건 절대 안 먹잖아. 뭐라도 바로 해줘야 먹지. 남아서 냉동실 들어간 것도 절대 안 먹어. 아무거나 잘 먹는 애들 너무 부러워~."


사춘기 아들과 씨름할 때 가장 나를 요동치게 한 것도 음식이었다. 나는 내가 건강한 음식을 먹이면 아이가 건강한 음식에 길들여져 인스턴트를 싫어하는 아이로 자랄 줄 알았다. 하지만 한번 라면에 꽂힌 아이는 그야말로 폭주했다. 예민한 아이는 나쁜 것에도 쉽게 탐닉한다는 걸 알았다. 나의 훌륭하신 상담사 후배님께서 조언하시길,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건강을 해치는 것은 사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꽤 오랫동안 아들과 음식 문제로 씨름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아침상마다 올린 생선과 스테이크가 예민한 아들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데 조금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되었다. 


원리는 양말과 똑같았다. 살다 보면, 나에게 딱 맞지 않는 상황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익숙했던 곳을 떠나서 낯선 곳으로 가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나 나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사람을 만나 어찌 됐건 합을 맞추기도 해야 한다. 나에게 딱 맞지 않는 상황이라도, 짐짓 표정을 감추고, 또 조금 불편하더라도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로 만들어야 하는데... 생선과 스테이크는 그렇지 않았다. 상위 0.01%에 해당하는 왜소한 아들의 부족분을 채워주려던 순수한 에미의 본능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안 그래도 까탈스러운 아들 입맛을 더욱 까다롭게 조장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유유상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예민한 아들 때문에 미쳐버리겠다고 하자 주변 엄마들이 한 목소리로 자기 아들의 예민함을 성토했다. 티셔츠와 운동화에, 어느 집은 고기를 안 먹는 문제로 어느 집은 고기만 먹는 문제로, 지나치게 씻고 안씻는 문제로... 분야만 다를 뿐. 우리 땐 없던 까탈스러움에 어찌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꼭 새것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아들은 이웃 집 아들이 잘 길들여놓은 옷과 운동화만 고집했다. 취향이라니! 우리 땐 없어 못 먹던, 없어 못 입던, 아무 선택지도 없었던 것들의 향연이었다. 바야흐로 세상에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펼쳐져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들은 무조건 법대나 의대에 가야 했던 예전과도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직업 체험과 진로 교육을 받으며 아이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취향에 골몰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대학 나온 사람보다 훨씬 돈 많이 버는 유튜버도 널렸다. 택배 상자만 찍어내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온 사람보다 많이 버는 세상이 되었다. 공 하나만 던져줘도 해가 질 때까지 놀 수 있었던 아이들은 이제 컴퓨터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더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밤을 지새웠다. 꼭 공부하지 않아도, 공을 차지 않아도 더 재미있고 더 많은 가능성들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때는 까탈스럽다고, 별나다는 소리 들을까 봐 숨죽이고 살았던 감성을 이젠 독창성과 고유성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하는 세상이 되었다.  


많은 선택지와 자유. 그건 나 또한 추구하던 가치이기에, 아들을 제재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자유로운 기질의 아이에게는 더 많은 자유보다 적당한 규제가 훨씬 안정감을 준다는 것도.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 사춘기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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