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를 좋아하는 며느리는 드물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 지금까지 시어머니와 잘 지내는 부류는 딱 하나뿐이다. 결혼 초창기부터 엄청 똘똘하게 자기 먼저 챙기던 부류. 그녀들은 '우리' 이전에 '나'가 먼저 있다. 나와 남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들은 결혼하며 시댁 위주로 재편되는 이상한 가족주의의 불합리 앞에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부부관계 보다 모자관계를 앞세워 경계를 함부로 넘나드는 시어머니에게 선을 긋고 자기 영역을 지킨다. 초창기 그녀들을 어려워하던 시어머니들은 똑 부러진 그녀들 덕분에 함부로 자기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행복하다.
그렇다면 여전히 고부간 갈등 구조로 남은 여자들은 어떨까. 그들은 누구보다도 배려심이 많고 희생적이다. 그들은 눈치 백 단에 손이 빠르고 다른 이의 요구에 민첩하다. 그들의 시작은 평화와 환대다. 가족 내 다른 구성원과 아무런 갈등 없이 집단 내 한 서열로 무리 없이 진입한다. 한마디로 참한 며느리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고부간 위계와 종속의 관계로 자리매김해 간다. '나' 없이 '우리'로, '나' 보다 '가족' 위주로 만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고姑'와 '부婦'의 관계로 만나 남편의 능력, 시부모의 재력, 손주의 성적에 따라 수시로 권력과 서열이 뒤바뀐다.
가장 아이러니 한 건, 그들을 향하던 렌즈를 주욱 잡아당겨 위에서 내려다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 하나가 온전히 가해자이지도 피해자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여자들의 역할에 순응하는 모두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각각의 여자로 만난 그들이 한없이 좋은 사람이라는, 그 진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
사실 오늘의 주제는 남자들이다. 고부 관계야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남편들은 과연 자기 엄마를 좋아할까. 내가 관찰한 바로는 놀랍게도 그들 또한 자기 어머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먼저 내가 어느 날 그 당연한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사실부터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독립적으로 자라 부모님에 대해 별다른 애착이 없는 우리 집 남자나, 아버지 대신 어머니의 남편 역할까지 하며 자라온 옆집 남자나 자기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 건 똑같았다. 어머니들이란 늘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아들에게 귀찮은 관심을 쏟아붓고, 근심을 드리우고, 며느리 사이에서 여러 가지로 아들을 성가시게 하는 존재가 아닌가.
아니 그렇게 명절이면 자기 집에 가려고 기를 쓰고, 어떻게든 아내를 살살 꼬드겨 홀어머니 모시고 살 궁리나 하는 것 같은 남편들이 자기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내가 이른 결론에 나도 의심스러워 내가 아는 여자들을 죄다 만나 물어보았다. 하지만, 자기 엄마를 좋아하는 남편은 단 하나도 없었다. 늙은 부모님이 안 됐다며 집에 모시자 노래를 부르던 남자도 아내 없이는 단 하루도 자기 부모님과 지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내 없이는 여행을 모시고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혼자 병시중을 들고 나면 부모님 모시자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아내 없이 단둘이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었다.
20년 가까이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한 집안에서 생활했다는 그 루틴 이상의 무언가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돌봄의 대상이며, 모셔야 하는 당위의 대상이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대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좋아하진 않았다.
아들만 둘이 있다 보니, 나에게 남편들이 자기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사랑하는 대상으로가 아니라, 좋아하는 대상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 같은 게 생겼달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사람. 아들과 단 둘이 만나든, 며느리와 가족의 합으로 만나든. 그 사람의 세계가 좋아서, 그 사람이 추구하는 삶이 지지되어서, 함께 서로의 세계를 나누는 시간이 좋아서,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