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모는 남자들의 고독

남자들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가족의 거리

by 쏭마담


내가 처음 트럭 모는 남자들의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은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였다. 주인공인 15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와 함께 이 소설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주인공이 바로 고양이와 말하는 이상한 노인 '나카타'다. 그리고 서브 주인공 격인 착한 청년 '호시노'가 있다. 호시노는 노인 나카타를 우연히 자신의 차에 태우며 모험에 휩쓸리게 되는 껄렁하지만 착한 청년인데, 호시노'의 직업이 바로 장거리 트럭 운전기사. 그를 통해 나는 도로 위에서 보내는 인생에 대해 처음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아직 인생의 젊은 날, 일본 열도를 따라 밤과 낮을 가르며 운전을 직업으로 가진 한 남자의 삶의 내력과 고독에 대해, 갑자기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최근 다시 만난 트럭 모는 남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크리족 출신의 트럭 운전기사인 '대니'다. 1988년 어느 날 캐나다 임상심리학자인 '캐서린 길디너'의 상담실에 들어선 그는 까만 머리를 양쪽으로 땋고 어깨가 떡 벌어진 신장 190센티미터의 잘생긴 인디언이었다. 제 발로라면 절대 상담실을 찾을 리 없는 남자들 중의 상남자. 그를 캐서린에게 보낸 트럭회사 사장은 그녀에게 '그는 고객이 맡긴 고가의 화물을 가장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자신의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기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그녀에게 이렇게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몇 달 전 아내와 4살짜리 외동딸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고 그 큰 일을 겪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고 있다고. 그는 놀라운 일에도 절대 티를 내는 일이 없는 남자라고. 그래서 그가 더 걱정된다고.


예상처럼 그는 매주 성실하게 상담실을 찾아왔지만, 처음 석 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캐서린은 그 침묵에 대해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침묵이 아니라, 그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 특유의처럼 느껴졌다고 책에서 기술하고 있다. 알고 보니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혹독한 지방에서 소규모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최대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관습에 익숙하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조차 '개입'이 아니라 철저히 '행동으로 보여주기'식 양육을 지향하는데... 그래서 잔소리가 많지 않고, 서로의 선택에 최소한으로 개입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대니는 그렇게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덫사냥꾼인 아버지를 따라 개썰매를 끌고 사냥을 배우며 원주민 보호구역 안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캐나다 정부가 파견한 백인 남자들은 '원주민 동화 정책'의 일환이라며 대니와 그의 누나를 부모에게서 떼어내 기숙학교로 끌고 간다. 그곳에서 그는 소중하게 길러진 긴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린 채 (원주민들은 '머리카락이 신경계와 연결돼 고양이의 수염처럼 사회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소중하게 다뤘다. 마치 '아바타'의 나비족들이 머리채 끝을 동물이나 나무에 연결하여 교감하는 것처럼),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점점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잃어간다.


그는 학교에서 백인들에 의해 납득할 수 없는 체벌과 학대를 당하고 '인디언은 나쁜 종족'이라는 굴욕적인 교육을 주입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특했던 그는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그가 학교에서 우수상이라도 받아오는 날이면 그의 아버지는 그를 비웃었다고 한다. 백인들로부터 정착지를 빼앗기고 생계를 유린당한 아버지는 점점 무능하고 아내를 때리는 술꾼이 되어 갔다. 그때부터 그는 '기쁜 일'에도 아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소년으로 자라났다.


가장 최악은 그가 기숙사에서 지내는 동안 신부들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백인과 인디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외로운 소년에게 신부들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재능을 칭찬하고 그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그를 추행했고, 유일하게 친밀감을 느꼈던 이들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는 그를 아무에게도 곁을 내주지 못하는 고독한 소년으로 자라게 했다.


성인이 되어 그는 다행히 '말이 많지 않은 남자를 좋아하는'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녀는 아내가 되자 그에게 부부 사이 특유의 친밀감을 원했고, 아이에게도 그가 보통의 다정한 아빠가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인디언 특유의 개입하지 않는 양육 방식, 어린 시절 겪은 성폭력 트라우마는 그때부터 내내 결혼생활 중 그를 괴롭혔다. 그는 어떤 부분 강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처럼 술기운을 빌려 분노를 폭발하지도, 자신의 동생들처럼 냉소하거나 백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슬픔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아이를 잃어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였고, 트럭회사에 수십 년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의 결근도 없었다. 그는 최우수 사원이었고 술 담배 어느 것에도 중독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에게 가장 파괴적이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건 바로 '감정의 수도꼭지를 잠가버리는 것'이었다. (134P)


그가 상담 중 자신이 느끼는 가정생활에 대한 압박과 자기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털어놓은 문장이 있었는데, 그 표현이 좋아서 그대로 옮겨 본다.


그는 자기 직업에 만족했다. (트럭을 모는 일은) 초원을 달리는 일과 비슷하다고 했다. 혼자라서 좋았고 지도를 보아가며 북아메리카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혼자 알아서 일하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식사 때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현대의 유목민이었다. (143p)


그는 운전을 좋아했다. 그는 가정생활에서 압박을 느낄 때마다 트럭을 몰고 더 멀리 나갔고, 멀리 떠나 집으로 전화하는 정도만큼의 거리감에 가장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상담사인 캐서린 길디너와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졌던 아픈 과거를 꺼내 해동시켜 놓았을 때, 그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우울증'이었다. 아내와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도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던 대니. 하지만 그에게 감정다운 감정이 되살아나고, 굳게 닫아두었던 감정의 봉인이 풀리자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우울감을 호소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느그 아버지랑 나는 딱 절이랑 수녀원에 들어가 살았음 맞았을 팔자여."

갓 결혼한 새색시에게는 적절하지도, 헤아릴 길도 없는,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명명하는 그 단어의 진의를 깨닫게 된 건 중년의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였다. 감정을 취급하지 않고, 사생활을 나누지 못하는 남자들. 늘 거대한 바깥일과 성공으로 규정되는 남자들에게 감정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사소한지. 미묘한 감정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부부간의 내밀한 대화는 언제나 그들의 우선순위에서는 가장 끄트머리로 밀려나고, 그래서 어느 날 참다못한 아내가 정색을 하고 그런 류의 대화를 꺼내기라도 할라치면 피곤함을 호소하며 동굴 안에 숨어들기 바쁜 남편들.


오늘은 그것 없이 20년 가까운 세월을 그저 신의와 우애에 가깝게 살아온 여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고독의 장벽 앞에서 따듯한 회복을 꿈꾸게 될 때마다 그의 아내가 도달하는 곳은... 괜히 그의 견고한 감정의 장벽을 잘못 허물었다가 이르게 될지도 모를 미지의 지점이다.


4개월쯤 지나며 서로에 대한 라포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대니는 길리언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에게 침묵은 '고통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였다고. 그러니 이 남자의 고독을 허물다 그가 다시 우울이라는 동굴로 기어들어가 버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그런 우려가 앞서는 것이다.


p.s. 그나저나 나는 왜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의 굴곡일랑 일점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평범한 경상도 남자에게서 대니와 비슷한 트라우마를 발견하고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건지!


<생존자들> 캐서린 길디너 저, 이은선 역. 라이프앤페이지. '2부 상실과 억압의 벽 안에서-대니 이야기/자아 정체성 박탈, 집단 트라우마 편'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가져와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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