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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Mar 09. 2023

사춘기를 지난 아들은 돌아온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방식이 아닐 뿐



고3 새 학기를 한 달 남짓 앞두고, 아들이 도서관과 스카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산더미처럼 바닥에 쌓아 놓던  옷들이 어느 순간 2-3일 간격 규칙적으로 빨래통으로 옮겨갔다. 1년이 가도 한번 정리하는 법 없던 책상이 깨끗해지고 문제집이 각을 잡고 앉아 있은지도 서너 달. 이제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건가? 이번엔 얼마나 가려는가? 내가 아는 집도 고2까지 게임중독이었던 애가 고3 1년을 보란 듯이 공부해서 인서울 갔잖아. 머리 좋은 애들은 가능하다니까~ 그런 이웃집 이야기를 마음에 품은 적도 있었다. 우리 아들이 그 신화의 주인공이 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늘 깊은 불신이 올라왔다. 왠지 로또 같아서다. 로또 맞을 확률과 그런 확률에 목매는 부모라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들어야 할 처지에 뭔 배부른 소리냐 하겠지만. 그럼 초등학교 때부터 죽어라 달린 애들은 어쩌란 말인가. 공부할 거 아니면 대학은 왜 가는데? 이제라도 정말 하고 싶은 전공이 생겼다면 모를까.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들 좋은 대학 나와 취업도 어렵다는데... 모두 의미 없는 수고일 뿐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다시 베테랑 상담사인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담자들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게 뭔지 아세요? 작은 변화에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분명 지난주보다, 또 상담받기 전인 몇 달 전보다 아이는 훨씬 좋아지고 있는데... 부모님들은 상담만 받으면 바로 눈에 띄게 좋아져야만 할 것처럼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상담실까지 찾을 땐 서로 죽을 것처럼 힘들기 때문에 오는 거거든요. 그만큼 오랜 시간 잘못된 습관과 관계가 고착된 다음에야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는 건데... 그건 회복하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


그러면서 그때, 아이와 부모의 양육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교정하는 TV 프로그램에 대해 조심스럽게 우려를 내비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프로그램이 주는 사례와 전문가의 조언은 이 시대 '정보 제공'이라는 나름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몇 주만에 사람이 변화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사람이 어디 안다고 변하던가! 그럼 모두 다 대통령 됐게!


나 또한 그때 받은 교훈이 있기에 아들의 작은 변화에 기뻐하고자 애쓰는 중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수많은 배신의 순간들을 모두 잊은 채 백치처럼 기뻐할 순 없었다. 지금 2-3일마다 빨래는 내놓고, 내가 해주는 밥을 라면 대신 한 끼 정도는 열심히 먹어주고, 하루 몇 시간이라도 스카에 가서 공부하는 내 아들은 내가 4-5년 전에 깨닫기 원하던 아들이었다. 잃어버린 시간 만큼 보상 받으려는 이상한 도박자의 심리가 나에게도 있었다. 


최근 사춘기를 극심하게 겪고 있는 후배 엄마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들이 돌아오긴 해.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는 아니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사춘기를 지난 아들은 돌아온다. 돌고 돌아 우회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물론 저 나름대로 실패를 통해 깨달은 바도 있겠지. 그렇다고 부모 기준에 그동안 헛발질하던 시간들을 모두 보상하는 방식으로 돌아오진 않는다. 이제 그 시간을 회고하고 이야기 나눌 정도로는 돌아온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 전 내가 챙겨준 밥을 열심히 먹고 앉은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들아, 내가 이제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나는 네가 놀아도 어느 정도는 성적 유지하면서 놀 줄 알았거든? 이렇게 아예 공부에 손 놓을지는 몰랐어.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니?"


핸드폰에 눈을 처박고 있던 아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고개를 들더니, 살짝 눈웃음을 쳤던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도 그때 좀 해보려고 했거든? 근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말했어. "그 정도론 안돼, 더 해야 돼. 다른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달렸어." 그래서 나 금방 포기했잖아."


무방비 상태에서 들어온 펀치에 그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담사 후배에게 아들이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지 물었을 때, 꼭 짚어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보통 엘리트 부모 아래서 자란 애들이 이렇게 의지가 금방 꺾이곤 하거든요." 특히 아버지의 너무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들 컨셉이 딱 이렇다는 거다. 


반면, 나는 늘 주변에 이렇게 얘기하고 다니곤 했다. 수업 노트 해야 한대서 아이패드 사주고, 줌 수업한다고 데스크톱 넣어주면 그걸로 밤낮 게임이나 하고... 시험공부 언제 하나, 하고 기다리면 매번 시험 때마다 다음 시험부터 잘 보겠다고 해. 그럼 우리는 이렇게 얘기하지. 다음 시험부터 잘 보려면 지금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안 돼~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다음 시험 때도 똑같은 말을 하게 될 거야...라고. 그럼 지금 아들이 하는 말은 거짓인가? 아니다. "다른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고 있어"란 말도 당연히 했다. 하지만! 설마~ 우리가 처음부터 저렇게 아들 의지 꺾는 말부터 해댔을까. 아들이 그런 패턴을 3-4년쯤 반복하고 나자 그때부터는 우리도 그만 불안해지고 말았고... 그래서 결국 끝에 한두 마디 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말보다 "너는 머리가 좋으니 금세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포기하지 말자"는 말을 백번쯤 더 했건만! (아, 나 지금 변명 하고 있는 거?)  


아들은 그 마지막 말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론 안된다고, 그래서 엄마 때문에, 아빠 때문에... 부모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그 말. 나 또한 내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말. 온통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편집된 그 말. 그랬기에, 아들의 뒤늦은 고백 앞에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의미로 내 불안을 조장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나를 안심시켰는데... 내가 무엇을 해도, 아들은 내 탓을 하고야 말 구조라는 것.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다지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거라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자 아들에 대한 집착도 기대도 자연스럽게 내려놓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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