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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07. 2023

"꿋꿋하니 얼마나 좋아요?"

고3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정신과 상담 1주일 후, 고3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아들은 고3이 되면서 학교에 빠지고 바로 병원에 가서 진단서 떼오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석하는 애들이 많아진다 싶으니, 본인도 웬만하면 안 가는 방식으로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든 것 같았다. 아들이 코로나인지 독감으로 인해 오락가락 결석을 반복하던 그 주. 결석 인정 기간 때문에 선생님과 몇 번 문자로 통화를 하다가 아래와 같이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도 보시다시피 애가 정신적으로도 문제(무기력증 등)가 좀 있어 보여서 안 그래도 이번 주에 신경정신과 상담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다녀오고 나서 면담 때 찾아뵙고 자세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드디어 상담일. 고등학교 입학하고 처음 찾은 학교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한 번도 상담을 가지 않았다. 아니, 굳이 상담할 필요를 못 느꼈다. 아들은 학교에서는 특별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저 공부 안하는, 존재감 없는 학생일 뿐이었다. 부모인 우리 입장에서는 애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공부할 기미가 있어야 뭔가 선생님을 찾아가도 의미 있는 상담이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고3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하셨다. 엄밀히 말해 이번 해에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아들에 대해 잘 모르고 계셨다. 이동식 수업을 하다 보니 아들과 겹치는 수업이 하나도 없었고, 아들이 수업 시간에 어떤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셨다. 하긴, 모르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과와 문과가 통합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하는 남편을 보고, 선생님도 속으로 대충 수준을 파악하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님, 그때 문자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아들 데리고 정신과에 다녀왔답니다. 아들이 머리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에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선생님이 반짝반짝하다고 하실 정도로 집중력도 좋았고, 영재 학급도 다니고 해서 사실 저희가 기대를 좀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사춘기 지나면서 핸드폰과 게임 중독이 됐고, 제가 아이를 못 이겨서 통제력을 잃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아들은 5년 전부터 다음 시험부터는 잘 보겠다고, 늘 기약하면서 노력을 하지 않네요."


"안 그래도, OO가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의지를 못 부리는 것 같아 안타깝긴 했습니다."


"네에. 그래서 내내 기다리다가 이번에 검사를 받은 거거든요.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걸 경고처럼 생각했어야 했는데, 저희는 성적으로 아이 평가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계속 아이가 스스로 의지 부리기를 기다렸어요. 이번 검사지 보니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  ADHD와 핸드폰 의존증 고위험군이라고 나오더군요. 의사 선생님이 치료를 권유하셨는데, OO가 싫다고 해서, 진행을 못했어요. 본인이 자기 문제를 문제라고 못 느끼는데 치료해봐야 효과도 없을 거 같고 해서 저희도 포기했고요."


근데 내 얘기를 여기까지 듣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니~ 우리 반 애들 정신과 데리고 가서 검사받으면, 집중력이랑 핸드폰 의존증 고위험군 안 나오는 애들 하나도 없을 걸요?"


"아니 그럼, 선생님은 우리 OO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고3인데, 스트레스가 제로라니, 이것도 너무 이상하다는 거죠. 해야 할 것 안 하고, 5년 내내 우리에겐 다음 시험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계속 회피 중인 거잖아요." 


그러자 선생님이 다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어머니, 회피하는 건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저는 모든 애들이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저 혼자 꿋꿋하게, 저렇게 스트레스도 안 받고 의연한 것도 한편으로 기특한데요? 저 예전 학교에서 점수 1점 내려갔다고 자살하는 애들 있었습니다. 성적 때문에 비관 자살이라뇨. 이런 게 정상이 아닌 거죠."


분당 여러 학교를 거쳐 온 선생님은 경쟁 위주 대한민국 교육 현장을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고, 그래서 고3 학부모에게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 저희는 꼭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도 아니거든요. 대학 가지 않더라도 괜찮다,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해라, 근데 다른 것도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대요... 지방대를 가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과가 있으면 저희도 대학 가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배우고 싶은 공부가 없는데, 대학을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요? 근데 자기도 대학 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으니까, 다들 대학은 가야 한다고 하니까 막연히 대학은 가겠다고 고집 피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수시는 넣어볼 생각도 안 하고요. 정시만 보겠다고 하거든요. 그래도 서너 달 남았으니까 그사이 또 뭔가 변수가 있을까 해서 미루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돼요. 지금 성적이 어느 정도고, 이 성적으로는 어디 전문대, 지방 어느 과에 갈 수 있다, 아이에게 그대로 얘기해 주시고요, 본인 선택하게 하시면 됩니다."


어찌 보면 참 일반론적인 답변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싹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다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두 전문가가 우리 아들에게 내린 평가의 온도차였다.


ADHD와 핸드폰 의존증 고위험군으로 치료가 필요한 아들.

세상과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고 있는 아들.


부모인 나는 어떤 아들을 선택해야 할까.

그리고 이를 위해선 나에게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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