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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Oct 07. 2023

선생님, 후천적 ADHD도 있나요?

고3 아들을 데리고 정신과를 찾았다




고3 아들을 데리고 정신과를 찾았다. 


'예민한 아들 사춘기'를 꾸준히 구독해 주시던 한 작가님이 조심스럽게 ADHD 검사를 받아보라는 충고가 있던 차에, 마침 이웃에 살던 한 학부모의 경험도 내 마음을 움직였다. 코로나 기간 동안 하루종일 잠만 자는 딸을 데리고 정신과를 찾았는데, 마침 적절한 약물과 상담으로 광명을 되찾았다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특히, 몸의 예민함에 맞춰 음식을 조절하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약을 적절하게 함께 사용했더니 불안정했던 컨디션이 조절되면서 전반적인 기능이 향상되었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내 아들에게는 좀 시기가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성인 되기 전 부모로서 마지막으로 마음의 빚이라도 갚고 싶었다.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OO아, 너 대학은 가고 싶다며? 근데 너무 오랫동안 공부를 놔서 다시 하고 싶다고 결심해도 생각한 대로 잘 안되지? 의지를 부려도 잘 안되니까 점점 더 포기하게 되고. 그런 네 마음도 좀 토로하고, 또 도움 되는 약도 좀 먹으면 네가 생각한 대로 실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대~. 요즘은 이런 일로 병원 찾는 애들 엄청 많고, 주변에 효과 본 집도 많다더라고. 좀 더 일찍 가서 도움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가서 상담 받아보자. 우리 둘이 지금까지 해봤는데 잘 안됐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주변에 전문가 도움 한번 받아보자고~."


진심이었고, 아들도 흔쾌히 허락했다. 소개받은 옆동네 정신과에 예약을 잡고 무려 3개월을 기다린 후에야 간신히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첫날이라 간단한 기본 검사와 상담이 진행된다고 했다. 아이는 선생님과 상담을 한 후 몇 가지 기본 검사를 진행했다. 기본 검사 결과에서 특별한 항목이 두드러지면 다시 종합 검사라는 것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예상했다시피 기본 검사에서 ADHD와 핸드폰 의존증이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스트레스가 제로라는 것. 흔히 스트레스가 없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3인데 스트레스가 아예 없다는 것 또한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아들의 회피 경향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슬몃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아들에겐 스트레스 자체가 없을 수 밖에!


"ADHD 고위험군이니 종합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저.. 근데 선생님, ADHD는 원래 선천적인 것 아닌가요? 후천적인 ADHD도 있나요?"

"맞아요. ADHD는 원래 선천적인 건데, 핸드폰이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전두엽이 마비되면서 후천적으로 'ADHD  상태'가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나란히 앉은 우리를 향해 종합 검진을 권유했다. 아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듣고 있었다. 아들의 표정이 마땅치 않아 보인 내가 선생님께 SOS를 날렸다. 


"상담이 꼭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가요? 아니면 혹시 의지적으로 노력하면 괜찮아질 수도 있는 부분도 있을까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아들과 내 눈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주며 말씀하셨다.

"진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상담 하자, OO야!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아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카운터에서 간호사와 함께 다음 일정을 잡기 시작하자 아들이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들이 병원문 밖에서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상담받기 싫어. 내가 앞으로 좀 더 잘할게. 노력할게." 


별생각 없이 가볍게 따라나선 아들은 막상 병원에 오자 약간 현타가 온 듯했다. 한번 더 권유해 봤지만, 나는 역시나 아들을 이겨본 적이 없는 엄마. 원치 않는 자리에 끌어와 앉혀봤자 제대로 상담이 될 리도 없었다. 아들이 자신의 모습을 조금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만으로도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하니깐. 엄마는 그저 네가 우리랑은 얘기가 잘 안 되고, 우리를 별로 신뢰하는 것 같지도 않길래... 제대로 된 어른이랑 제대로 얘기나 좀 나눠 봤으면 해서 그랬던 건데. 네가 내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알았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정신과 상담도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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