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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Dec 17. 2020

29. 번듯한 가난

자본에 대한 단상

옷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거지라니,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제인은 이성의 손을 들어줬다. 그녀는 손필드 저택을 빠져나와 수중에 있는 돈으로 갈 수 있는 최대한 멀리까지 마차를 타고 도망친다. 그리고 내린 마을에서 히스 덤불과 밤하늘의 별을 벗 삼아 슬픔을 삼켰다. 일자리를 구해보고 가진 물건을 팔아 빵으로 바꿔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은 번듯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구걸에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목적 없이 굶주린 개처럼 떠돌아다니길 며칠. 지칠 대로 지쳐 죽음을 생각하던 그녀 앞에 한 작은 집이 나타났다. 세인트 존과 그의 친절한 두 여동생이 살고 있는 무어 하우스. 제인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과 인연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몇 달 안에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가 아이들 개학을 넘기기 시작하던 때부터였을 것이다. 주변이 온통 주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새벽 배송을 하는 업체들이 유통 시장과 소비 패턴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하고, 이런 상태가 올해를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정부지원금이 얼마쯤 시중에 돌기 시작한 직후였다. 나처럼 한번 해볼까, 하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정부지원금을 사용하며 얼마 간의 여유 자금이 쌓인 것이다. 빠듯하게 돌고 돌던, 생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금 이외에 얼마 정도 다른 곳에 유용해볼 만한. 그야말로 '잉여 자본'이라는 것이!


그 후로는 맨날 만나는 동네 엄마도,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도 온통 주식을 샀다는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돈이 '쫌' 있다고 원하는 주식을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내 친구는 상장을 앞두고 공모가가 135,000으로 책정되어 있던 한 기획사의 주식 3주를 확보하기 위해 1억이 넘는 돈을 미리 청약증거금으로 입금했다고 했다. 바야흐로 돈이 돈을 낳는, 자본이 자본을 증식하는 자본주의의 천국을 옆집 엄마를 통해서도 확인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사회인 줄 몰랐어?라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먹고사는 일이 나에겐 늘 빠듯했다고 하면 또 누군가는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10여 년 전 맞벌이를 그만두던 때. 퇴직금으로 받은 금액은 적지 않았다. 평생 내가 만져볼 수 있는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맞벌이할 때 우리의 지출은 대충 다음과 같이 나눠졌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당시 우리가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 이자를 갚고 이런저런 관리비, 공과금, 보험금을 지불했다. 내 월급에서는 아이 돌봐주시는 이모님 월급과 교육비, 생활비 등을 충당했다. 얼추 서로 그렇게 맞춰 살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홧김에(?) 회사를 때려치우자 그는 당장 생활비를 대줄 형편이 안되었다. 그렇게 1년 지나자 10년 일한 대가로 통장에 꽂힌 퇴직금은 고스란히 생활비로 다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사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한 달에 아이들 학원 한두 개 보내고, 영화와 외식 한 두 번 하고, 1년에 여행을 한 두 번 다니는 거 외에 여유를 부린다고 할 만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이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 데에만도 엄청나게 많 돈이 필요했다. 그건 또 다른 의미로 내 불안을 자극했는데, 가령 4인 가족의 가장이 직장을 잃고 2년 여 동안 재취업을 못했을 때, 1억에 가까운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1천이 아니라, 1억이다. 2년 만에 억대 빚을 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실업자인 데다 앞으로 혹 불운이 겹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내겐 과거를 숨기고 사는 스파이마냥 불안한 일이었.

"한 달에 1인당 최소 100만 원쯤 든다고 생각하면 돼."   

도대체 내가 무슨 낭비가 그리 심하기라도 한 거냐고, 따져 물었을 때 내 친구가 말했다. 그 친구는 나같이 가격을 비교하지 않고 아무 두부나 덜컥 산다거나 기분에 따라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그렇게 물렁한 인간이 아니다. 전근대 어머니 세대만큼 절약이 몸에 밴 친구니 허튼소리를 할 리도 없다. 믿어도 좋다.


이런 대화가 오가고 몇 주 후. 추석을 앞두고 시댁과 친정 경조사비로 목이 빡빡하게 조여오던 어느 날, 내가 뾰로통하게 한마딜 건넸던가. 남편이 말했다.

"도대체 얼마면 되는데? 얼마면 만족할 거 같아?”


그러게. 정말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만족이 될지 나도 궁금했다. 얼마나 있어야 중학교에 올라가 말끝마다 나를 거부하는 아들놈과 싸우고 난 뒤에도 세상이 살만 해 보이고, 지금과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이는 빤한 인생이 늙을 때까지 계속된다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허튼 생각 따위  하지 않으며 살게 될까. 얼마나 있어야 가족 모임 때 용돈으로 10만 원을 넣을까 20만 원을 넣을까 하는 고민 없이 가족모임이 기다려지고, 남들처럼 양가 부모님 해외여행도 척척 보내드리고 수시로 병원비도 넣어드리면 살 수 있을까. 얼마나 있으면?   


막상 지금 나를 조이고 또 풀릴 만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실타래가 끊이지 않았다. 가끔은 불행이 겹쳐왔다는 이웃집도 돕고 싶고, 서점에서 책도 마음껏 사고 싶어. 애들 한번 정도는 어학연수도 보내주고 싶다고. 강남에 사는 애들은 한 달에 학원비만 몇백이라는데, 남들처럼 아니 남들 반의 반의 반만큼만이라도 그렇게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고 싶다고. 내가 명품 백에 명품 화장품을 사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도 누리며 살면 안 돼? 우리 정말 그 정도도 안 되는 거니?...  속으로 혼자 막 되뇌는데 갑자기 남편이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연봉이 상위 10%래."

기사를 뒤져보니 남편의 연봉은 그의 말처럼 상위 10%가 맞았다. (물론 10% 구간 곡선 그래프 중에서 길게 늘어선 뒷꼬리 정도겠지만). 집 한 채도 없이 매달 카드값이나 겨우 메꾸며 사는 우리가 상위 10%라니. 내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어떤 기사에선 중산층의 기준을 '30평형 아파트 1채,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중형차 1대, 현금 1억, 해외여행 1회'라고도 했다. 물론 소득과 수입과 자산을 구분하고 중산층을 산정하는 것은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와 그래프 분포도에 따라 체감이 상이하게 달라진다. 단순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에누리를 감안하더라도 내가 체감하는 연봉 상위 10%의 생활은 흔히 말하는 중산층 수준에 턱도 미치지 못했다.


나는 또 궁금하면 파고드는 성격. 우리를 허탈하게 하는 것의 정체는 추적해 보니 이런 차이가 있었다. 매달 고정된 월급만 받느냐, 다른 이벤트가 있는가. 여기서 딱 갈라졌다. 중소기업은 -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연봉 그게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비슷한 연봉이어도 격월로 상여금이 추가되는 공기업이나 연말에 성과급을 받는 대기업. 게다가 명절비나 휴가비 혹은 그들이 누리는 자잘한 복지 혜택까지를 고려하면 그들의 연봉은 우리의 2배가 넘었다. 내가 보기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으로는 의식주와 기본 생활이 혜결 된다면, 보너스와 상여금은 이벤트랄지 삶의 질 같은 걸 좌우하는 것 같았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건 그런 이벤트를 누릴 여유가 없다는 걸 뜻했다. 명절과 휴가,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그때. 함께 하는 데 드는 비용들이 고스란히 다음 달 부채가 된다는 걸 의미했다.  


왜 다들 기를 쓰고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지, 왜 건물을 사고 부동산을 늘리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먹고사는 일 이외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지금 모이기만 하면 주식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옆집 엄마들의 마음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잉여 가치를 늘리겠다는 건, 그 여유로움을 기반으로 현재와 다른 미래를 꿈꿔 보고 싶다는 것. 빤한 미래 말고, 다른 가치를 꿈꿔 보고 싶다는 꿈. 노동소득으로는 턱도 없는 그 일을 자본 소득으로 한번 이루어보겠다고 너도 나도 지금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여전히 이렇게 앉아 '글이나' 쓰고 있다. 옆집 엄마의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얼마 전 내게 몇 개월치 차트와 그간 수익률까지 보여주며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들어와도 늦지 않다고. 많은 전문가들도 조언한다. 언제까지 노동 소득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적은 금액이라도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게 하라고.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성장 동력을 읽었으며, 부동산과 주식은 거품이고 이제 곧 이웃 나라 일본처럼 푹 꺼져버리게 될 거라고도 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시류의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한다. 노동 시장에 뛰어들 정도로 수완이 좋지도, 과감히 자본 시장에 투자할 정도로 감도 없다고. 내가 들어갈 때는 이미 다른 사람도 다 들어갔을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가장 많이 끓어오른 때고 원래 하강 직전이 가장 부글부글 하다고. 가지고 싶은 걸 다 가진들 만족할 리도 없을 거라며.  


가난을 말하기에도, 부자가 될 생각도 모자란 나는, 번듯하게 차려 입고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번듯한 이야기만 내리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어설픈 기득권이 되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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