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이라는 신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도덕적 원칙을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내가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망연자실하던 제인이 방에서 나오자,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체스터의 참회가 시작되었다. 정략결혼과 아내의 광기, 차마 정신병원에 보낼 수 없어 손필드 저택 깊숙이 감추게 된 사연.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었지만 몇몇 정부를 거치며 더욱 스스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숲 속에서 제인을 보는 순간 자신의 진정한 사랑임을 확신했다고... 그 고백은 진실했다. 이성의 목소리와 감정의 목소리가 그녀를 흔든다. 이대로 그를 받아들인다면 제인의 사랑은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낼 터이지만, 그것은 지금껏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도덕적 원칙에 반하는 일. 그리고 이제 그녀는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전근대, 근대, 후기-근대를 거의 반세기 만에 경험한 사회죠. 서구 문명권에서 400년이 넘게 걸리며 진행된 것들을 이렇게나 빨리 해치웠어요. 서구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그러니까 전근대인 할머니, 근대인 어머니, 후기-근대인 딸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가 대한민국입니다. 세대 갈등이 유난 맞은 까닭도 여기 있지요." (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프롤로그 중. p.10)
그러는 사이 한 세대가 갔습니다. 미국에서 반세기 전쯤에 중산층 여성들이 겪었던 제도적 혼란을 오늘날 대한민국 다수의 젊은 주부들과 2030 세대 딸들이 겪게 되었죠. 자기를 희생하며 전업주부로 최선을 다해 딸들을 훌륭한 전문가로 길러낸 엄마 세대 덕분에, 지금의 딸들은 그야말로 경쟁력 있는 주체가 되었어요. 그런데 이 사회의 ‘여성 응시’는 여전히 ‘근대적’인 겁니다...한마디로 말하면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는 가정을 지키는 근대적 기획은, 후기-근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즉 바깥일을 하는 여성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구조라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이에 더하여 전근대적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여전히 가정 안에서 권위를 가지고 계시다 보니 ‘추석에 전 부치고’ 대가족 단위로 행사를 치르는 전통 사회의 일들까지 잔재해 있죠. 이런 '일상'을 사는 젊은 세대로서는 그야말로 타임 슬립을 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p.10)
가정이 화목하다고 뿌듯해하는 여인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것은 그녀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실제로는 그녀가 가족들의 욕망에 자신을 맞추고 있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그녀의 욕망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의 이념 속에서는 타자와 차이에 대한 경험이 발생할 수 없다.
가정의 화목을 자랑하려다 보니 가정의 화목을 자랑하던 여인은 ‘우리 가족’이란 집단성에 매몰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국 그녀로 하여금 자신도 당당한 주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동시에 남편이나 자식도 자신과는 다른 타자라는 사실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타자가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려고 할 때, 그는 스스로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