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성 파도를 본 적이 있나요?
바람이 자연의 몸을 빌려 현현할 때
몇 년 전 넷플릭스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아프리카 대륙 끝자락, 케이프타운 주변의 아름다운 켈프 숲을 주무대로 하고 있다. 켈프는 바다에 서식하는 다시마 과에 속하는 갈조류이니, 엄밀히 말하면 거대한 다시마숲을 품은 대서양 앞바다가 배경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해안에서부터 시작된 바윗덩어리들이 바다를 향해 점점이 흩어진 해변에 작은 목조 방갈로 하나가 별처럼 박혀 있다. '폭풍의 곶'이라는 별명답게, 큰 폭풍이 몰아치는 날이면 '바닷물에 현관문이 부서져 방 한가운데까지 물이 차곤' 하던 곳. 주인공 크레이그 포스터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다.
어쩌다 저렇게 바다 가까이, 바윗덩어리 한가운데에 집을 지을 수 있었을까 싶은. 반은 인간에, 반은 자연에 속한 듯 모호한 경계를 가진 집. 파도에 무방비로 노출된 그 집이 뭐가 좋다고, 나는 정작 주인공인 문어 선생이 등장하기도 전에 그 영화에 바로 매료되었다. 폭풍우가 사정없이 해변을 강타하는 어느 밤과, 폭풍에 맞서 밤새 바닷가 한 소년의 단꿈을 지켜주었을 집의 마음 같은 것을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바람이 좋았다. 바람에 대한 첫 기억은 보리밭이다. 벼이삭이었나. 한밤에 나는 혼자다. 무리와 함께 논두덩을 지나는 길이었는데, 조금 전까지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은 어느새 저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나 스스로 낙오된 것이 분명했다. 바람 때문이었다. 고흐의 그림처럼 내 양옆으로 사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직 황금빛이 되기 전 청초롬하게 푸른빛을 띤 그것들이 내 앞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폭풍 전야였을까. 바람은 마치 달의 인력에 이끌린 듯 논밭 위로 거대한 옷자락을 펼쳐내고... 바람이 한 번씩 철썩일 때마다 풀들은 누웠다 서기를 반복했다.
그때 처음 식물도 파도를 만들어 낸다는 걸 알았다.
땅에 깊게 뿌리내린 그것들은 동시에 하늘의 거대한 지배권 아래 놓여 있었다. 바람은 무자비하기만 한데,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정작 때려 맞는 것들은 태평했다. 이 세상은 우리가 감히 알지 못하는 거대한 원리 아래 오늘도 운행을 반복하고 있으며, 인간이 제아무리 잘난 척 해도 대자연 앞에선 한낱 미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어렴풋한 인식. 거대한 것에 대한 경이, 순응하며 살고 싶다는 갈망, 언젠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 그날 바람이 모두 내 몸에 아로새겨준 것들이다.
설 명절 때 우연히 알고리즘이 물어다 준 쇼츠에서도 화면 가득 바람이 가득했다. 크리스티앙이라는 조류학자가 마이크로라이트(초경량 비행 장치)를 타고 기러기 떼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었다. 기러기들은 인간이 운전하는 동력 장치와 나란한 높이에서 서열을 이루며 날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람이 기러기 배에 손을 가져다 대도 전혀 놀라거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기러기들은 철새의 이동경로를 연구하기 위해 크리스티앙이 각별히 돌보던 것들로, 알에서 부화할 때부터 크리스티앙을 아빠로 각인하며 자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기러기들에게 뒤뚱뒤뚱 걷는 법, 도움닫기를 하다 부웅~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하늘로 날아오른다. 부리를 주욱 앞으로 빼며 힘차게 날갯짓하는 기러기를 곁눈질하며 함께 비행한다. 기러기들의 시점으로 발 아래 펼쳐진 평원과 섬과 대서양 연안의 습지를 눈에 담는다. 머리 위의 태양과 자기장과 몸에 내장된 본능의 나침반을 의지해 위치를 가늠하고, 교회탑과 마을과 강줄기를 랜드마크 삼아 이동 경로를 메모리 한다. 그들의 비행을 지켜보는 내내 새가 된 것처럼 내 가슴도 함께 벅차오른다.
바다를 모태로 진화를 거듭해 온 생물들은 어느 순간 지느러미 끝을 곧추세워 땅 위로 기어올라오더니, 다시 그들 중 일부는 사지 중 다리 두 개를 들어 올려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했다. 티-렉스의 사촌이자 새의 조상인 벨로키랍토르가 그들이다. 장구한 시간을 거슬러 변화하는 종들의 진화의 순간들은 늘 경이롭지만, 다리 두 개를 어느 날 하늘을 나는 용도로 변화시킨 새들의 순간은 특히나 가슴을 뛰게 한다. 만약 신이 그때 내게 선택권을 주셨다면 어땠을까?직립보행을 하는 생물아. 너는 이제 나머지 두 다리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나머지 두 다리를 각종 도구를 만들고 땅을 정복하고 문명을 일으킬 수 있는 손으로 삼겠느냐? 아님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미끄러지듯 활강하거나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온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닐 수 있는 날개로 삼겠느냐?
내게 선택지가 있었다면, 나 또한 날개를 선택했을 것 같다. 그럼 나는 한때 이 땅에서 '새'로 살다 죽었겠구나. 평생 그 좋아하는 바람에 몸을 싣고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녔겠구나. 매일이 위험천만했겠지만, 지금처럼 지루해 죽을 일은 없었겠지.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자유했을 것 같다.
<유튜브 영상>
Amazing flights with birds on board of a microlight. Christian Moullec avec ses oisea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