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첫째 아들은 뭐든 물 빨아들이듯 배웠다. 대신 꾸준히 하는 것이 없었다. 피아노든 기타든 농구든 수학이든 영어든. 선생님들은 늘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고 했지만, 아들은 그런 아이들 특유의 성실함이 부족했다. 막상 데려다 놓으면 잘하는데 거기 갈 때까지 난관이 많았다. 가령 오늘은 방학식 했으니까, 친구들이랑 에버랜드에 놀러 가기로 해서, 혹은 서울로 이사 갔던 친구가 오랜만에 놀러 왔으니까 등의 이유로 학원을 빠졌다. 초등 저학년 땐 나도 공부보다 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허용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도 그런 일이 반복되자 일침이 필요해 보였다.
주변 엄마들에게도 물어보니 4학년 정도면 이제부터는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했다. 마냥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하다 보면 애 버릇 망치게 된다고. 아쉬운 거 모르고 쉽게 생각하게 된다고. 나 또한 당시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자유를 허용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율을 적용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경고했다.
"이거 모두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시작한 거잖아. 일단 시작했으면 성실하게 해야 하는 거야.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을 때는 안 하는 건 안 돼. 약속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그러나 몇 차례 경고에도 아들은 한 달에 2-3번 이상 학원에 빠지는 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원칙대로 아들의 학원을 끊었다. 아들은 계속 다니고 싶어 했지만,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물론 예체능 학원이어서 쉽게 끊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전공할 거 아니니까, 하며. 그런데 그렇게 하나 둘 놓기 시작하던 아들은 공부 학원도 그런 식으로 다니다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만두기 시작했다. 자기를 예뻐하며 가르치던 학원 선생님이 다른 반을 맡게 되자 잘 다니던 수학학원을 그만두었다. 실력도 애정도 없는 학교 선생님이 부당한 권위를 휘두르며 단체 기합을 주면 그 선생님이 담당하던 과목에 대한 흥미를 즉시 잃어버렸다. 그 와중에 핸드폰과 게임으로 점철된 극렬한 아들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공교육을 신뢰할 수도 사교육에 열혈 할 수도 없었던 나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아들을 방치하는 에미가 되고 말았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책임과 대가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엄마가 자기 친구 이야기라며 얼마 전 들은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내 친구가 일찌감치 딸을 독일로 유학 보냈잖아. 한국에서 괜찮은 대학 갈 점수는 안되고, 독일은 학비가 공짜니까... 유학 가면 외국어라도 배우고 학위라도 따오겠지 싶어서 보낸 거지. 대신 독일은 대학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독일어 시험에 합격해야 돼. 보통 공부하면 1년 안에 합격하거든? 근데 그 집 딸은 독일에 간지 3년이 다 되도록 독일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거야. 유학생활은 재밌다고 하면서.인스타그램엔 클럽에서 신나게 노는 딸의 사진이 매일 올라오는데, 정작 그 집 엄마만 모르고. 그 집 딸이 점점 인싸가 되어 가는 동안 유학을 지속해야 되는지에 대한 내 친구의 고민도 깊어갔지. 그런데 드디어 올해 4년 차에 그 집 딸이 독일어 시험에 통과한 거야. 그러면서 엄마 아빠한테 그러더래.
"엄마 아빠. 기다려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 모두가 엄마 아빠가 계속 절 믿어 주시고 기다려 준 덕분이에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저 지금 제대로 대학공부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순간, 그 자리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는데. 그 딸을 기다려 준 것은 자식을 향한 지고지순한 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그 부모가 가진 경제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딸을 예전에 한국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그 많은 돈 들여 유학 보내놨더니 부모의 수고도 모르고, 허구한 날 철딱서니 없이 클럽이나 들락거린다고 질책하면서.
결정적으로, 그때 우리를 실소하게 한 것은 '돈'을 마치 '숭고한 사랑'인 것처럼 둔갑시킨 미묘한 그 딸의 워딩의 방식이었다. 이런 게 자식을 향한 부모의 믿음이고, 이런 부모의 믿음이 우리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거라면?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이 없다더니, 이제 돈으로 훌륭한 부모의 자질마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구나. 이런 거라면 나도 거리낌 없이 줄 수 있는데! 하지만 나는 그만한 경제력이 없으니 오늘도 끊임없이 자책과 후회 사이에서 아들과 나를 흔들어대며 살 수밖에 없겠구나... 그게 다시 우리를 냉소하게 했다.
이런 게 믿음이고 기다림이라면, 나도 그때 책임이고 대가고 나발이고 다 걷어치우고, 아들 학원을 띄엄띄엄이라도 보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랬더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아들은 피아노를 마스터하고 공부를 때려치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지금쯤 남들처럼 즐겁게 생활하고 있었을까. 엄마 아빠가 기다려 주신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계속 절 믿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하면서?
아들을 키우며. 그때는 전혀 모르겠다가 이제 겨우 조금 알겠다 싶은 것들이 생겼는데... 이런 얘길 들으면 다시 여전히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너무 밑천 없이 세상에 나와 갈 곳 없어 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 책임과 대가 운운 했던 내 선택을 후회하고야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