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체육국장이자 제2차관 노태강 인터뷰-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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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n5wTUQP-rM?si=Ts46Vi1OSdVTgTj6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정유라 편을 들지 않고 사실관계에 충실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화근이었다.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수첩을 펼쳐 그의 이름을 콕 집어 경질할 것을 요구했다. 문체부 체육행정을 담당하던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좌천되었고 그곳에서 3년 뒤, 고가의 프랑스제 명품을 판매하는 전시회 지시에 반대하다가 또다시 눈 밖에 났다.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고 대통령은 물었다. 공직생활 32년 2개월 만에 그는 결국 사직서를 내야 했다. (71p.)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자 제2차관, 노태강. 대구고등학교와 경북대 법정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행정고시에 합격해 이십 대 중반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2016년 5월 박근혜 정권 시절, 강제로 사직서를 내고 나올 때까지 꼬박 만 32년 2개월을 공직자로 일했다.
노태강의 어릴 적 꿈은 판사였다. 생각이 바뀐 건 경북대 법정대에 진학한 뒤 행정학 강의를 접하고부터였다. 당시 사십 대 젊은 진용으로 짜인 행정학과 교수들은 학생들과 야구나 축구를 같이할 만큼 자유분방하고 격의가 없었지만, 공무원의 자세와 가치를 얘기할 땐 더없이 열정적이고 진지했다. 출세나 안정된 직장을 기대하고 공무원을 선택하면 인생이 불안정해지니 아예 시작을 하지 말라고, 공공적 가치를 중시하고 숙의적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배웠고, 그것을 공직생활의 평생 원칙으로 몸에 새겼다. (74~75p.)
그는 처음 노동부에 가서 노동자 권리 개선에 몸 바치려 했다. 하지만 뜻한 대로 되지 않아 보훈처를 거쳐 체육부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88 올림픽을 치러내는 일에 헌신했고, 김영삼 정부 들어 체육부가 문화부와 합쳐진 이후 줄곧 체육 분야에서 일해 왔다.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문체부는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 안에서도 특이한 조직이었다고 한다. 굉장히 자유롭고 상호 간에 벽이 없어서 직급 간 소통도 활발했다고.. 장관님한테도 농담하면서 아닌 건 아니다 의견도 내는 곳. 하지만 박근혜 정부로 바뀌면서 그런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발단은 2013년 5월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직접 그에게 전화해 ‘박원오라는 사람이 승마협회 관련해 할 말이 있다고 하니’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대한체육회를 통하지 않고 직접 경기단체 관계자를 상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청와대 수석의 연락이니 무시하기도 어려웠던 그는 진재수 과장을 보낸다. 박원오라는 인물은 진 과장에게 승마협회 관련자 몇 명이 문제가 있다며 제보를 하러 왔다. 하지만 제보자 하러 온 박원오의 신상이 좀 지저분했다. 횡령, 사기 미수, 배임, 사문서 위조 같은 전과를 잔뜩 가지고 있던 인물. 승마협회 내 파벌싸움에 끌어들이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진 과장은 되려 체육계 전반에 대한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써서 청와대 수석에게 보낸다. 하지만 하루 이틀 후.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문서가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박원오는 진 과장에게 전화해 ‘두고 보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 과장이 승마협회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정윤회 씨 딸과 관련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체육부 차관과 유진룡 장관에게 이 일을 함께 의논한다. 공공성과 숙의적 사명에 충실했던 그들은 정윤회와 관련이 있다면 더더욱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호가호위하지 못해야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대통령이 자신이 공언한 국정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허무하게 깨졌다. 다음 달인 2013년 8월 유진룡 장관이 대통령에게 체육계 개혁방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수첩을 펼 쳐들며 ‘노태강, 진재수가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며 인사 조치를 할 것을 지시했다. (79p.)
그 이후는 우리가 뻔히 아는, 조직 내에서 바른말하는 사람에게 벌어지는 공식을 따라간다. 노태강, 진재수 두 사람에 대한 공직감찰이 시작되었고, 그는 체육국장에서 경질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발령대기받았다. 그날 그는 두 가지 서류를 한꺼번에 받았다. 하나는 ‘체육개혁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고 공무원으로서 품위 유지에 문제가 있다’는 경질 사유가 담긴 감찰 보고서. 또 다른 하나는 ‘2013년 고위직 청렴도 평가 결과’ 서류였다. 청렴도 평가서에서 노태강의 종합점수는 10점 만점에 9.98이었다. ‘부당이득 수수 금지’와 ‘건전한 공직풍토 조성’ ‘직무수행 능력 및 민주적 리더십’ 세 분야는 10점 만점이었다.
고난은 계속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으로 재직하던 중 그는 프랑스 장식미술전 문제로 다시 윗선에 미운털이 박힌다. 전시품 리스트 중 사치품회사들의 판촉행사용이 분명한 리스트에 대해 당시 김영나 관장과 함께 반대하다가 이번엔 아예 사직압력을 받은 것이다. 전시회 배경에 미르재단이 있었고, 문체부와 청와대는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며 그대로 진행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아닌 것에 아니라 말했고, 그 일로 이후 사직서를 냈다. 공무원법상 그는 정년이 보장되는 ‘나’급 공무원이었지만 스스로 사직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던 과장이나 학예연구원까지 징계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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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에게 사표 제출 지시를 내린 데 대한 직권남용과 강요죄를 선고했다. 대통령의 지시로 그에게 사직을 강요한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도 각각 징역과 실형을 선고받았다. 억울하게 공직에서 쫓겨났던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체부 차관으로 다시 복귀하여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다.
그는 평상시 술, 골프, 스키를 즐기지 않고 동문회조차 가지 않는다. 동문회 행사는커녕 회비도 내지 않기 때문에 모교 발전기금에 일조하지 않는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게 결국 학벌주의고 패거리문화로 변질되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사례가 상징 조작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은 불의에 대항하거나 소신 있게 저항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공무원으로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한 것인데 이름이 노출된 것뿐’이라는 거다. 그리고 당부한다.
“직업안정성 때문에 공무원을 택하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반드시 후회할 겁니다... 삶의 가치관 자체가 공공지향적이지 않으면 이 일을 택한 걸 후회하게 될 겁니다. 이게 안정적인 직업인가, 반드시 회의가 들 거예요. 도전적이고 활력이 있는 친구들은 공무원보다는 민간기업으로 가는 게 맞습니다. 공무원의 역할이란 건 사회를 위해서 숙의적인 역할을 하는 거예요. 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내가 정말 삶에서 뭘 원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한 다음에 택하시면 좋겠어요.” (90~91p.)
그는 문체부 제2차관에 기용된 뒤 쓴 칼럼에서도 다시 한번 공무원의 공공성에 대해 강조한다.
“공무원의 특성은 맡은 일이나 신분의 공공성에 있다. 공무원은 숨 쉬는 것조차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공공행정에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무원으로서 상사의 지시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의 상황에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부행위 그 자체였다. 또 ’내가 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해야 했을 것‘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거부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되고 나아가 우리 모두가 될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 잘못은 어쩔 것인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공무원이 공무원일 수 있는 것은 국민이 공무원을 공무원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의 충성 대상이 되는 것은 국민이다.” (92p.)
2024년 8월,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조사·지휘하던 국민권익위원회 김 모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권익위 수뇌부 인사가 이 사안(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한 것에 대해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지인에 의하면 그는 “평소 쾌활하고 친근했으며 유머 감각 있었고, 동시에 예의 바르고 깍듯한 공무원‘이었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정부 정책에 당당하게 소신을 밝히던 반부패 전문가였다.
시간 회귀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요즘. 신문 기사 귀퉁이를 장식한 한 공무원의 죽음을 떠올리며 10여 년 전 박근혜 정부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지켰던 노태강 인터뷰가 생각났다. 부당한 지시에 거부했던 그는 정권이 바뀌며 업무에 복귀했다. 다행히 해피엔딩이었다. 하지만 모든 공무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진순, 문학동네.
- 2013~2018년 8월까지 한겨레신문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인터뷰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되었던 12편의 인터뷰를 묶은 책.
- 차가운 물속에서 뒤엉킨 아이들 시신을 하나씩 품에 안아 올려준 세월호 민감잠수사 고 김관홍 씨의 아내 김혜연, 의료계 오랜 관행과 맞서 중증외상센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외롭게 싸워온 이국종 교수, 성소수자들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기 위해 ‘프리허그’ 캠페인을 벌였던 ‘성소수자부모모임‘ 이은재 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불이 꺼진 듯 보이는 세상에서, 어느 한 귀퉁이,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불을 반짝이던, 이들의 벅찬 진심을 만날 수 있다.
‘사유화된 권력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나라에서, 공무원이란 존재는 무력하고 왜소하다. 권력의 충실한 사복이 될 것인가, 개인의 양심을 따를 것인가? 역린을 건드린 대가는 혹독하고 순응의 후과는 참담하다. 권력의 비위를 거스른 이들은 축출되고, 숨죽여 살아남은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는 동물’ ‘권력의 하수인’으로 국민들로부터 조롱당한다. 부당한 권력이 작동할 때 수직적 집행체계의 볼모가 된 이들에게 우린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72p.)
[참고] 오마이뉴스, “숨진 권익위 간부, 그는 ‘가슴 따뜻한 포청천”’ [인터뷰] 김거성 전 청렴위원이 기억하는 부패방지국장.. “권익위, 신뢰 잃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53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