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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17. 2021

지금, 마스크 내리셨죠?

기차 안에서

군대에 간 친구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친구 아들은 제대가 몇 달 안 남은 말년 병장. 작전 수행차 상사와 함께 춘천행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마주 앉은 상사와 오늘 아침 내부반에서 있었던 이야기며, 오늘 점심은 뭐가 나올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상사가 엄지손가락으로 왼쪽 손톱을 몇 번 쓸어내는가 싶더니,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고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입에 넣고 뜯기 시작했다. 그런 채로 30-40초쯤 지났을까. 턱 아래 걸쳤던 마스크를  다시 위로 올리고 창 밖을 쳐다보던 상사 앞에 어떤 여자 하나가 또각또각, 걸어왔다.


"저, 좀 전에 마스크 내리셨죠?"

"네? 아, 네에~~"


무슨 상황인지 분간이 안된 상사의 눈이 똥그래졌다가 다시 가라앉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손에 거스러미가 생겨서 잠시.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중사는 서둘러 사과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내리면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알면 됐어요."


상사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보는가 싶던 여자의 눈이 계급장과 가슴팍에 붙은 중사의 이름표에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마주 앉아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친구 아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뭐지, 이 여자? 소령 사모님이라도 되나? 중사님이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나처럼 말단 병장이 걸렸으면 어쩔 뻔했나. 친구 아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당황과 안도 사이를 오갔다.  


이윽고 춘천역. 잠시 대기 중이던 그들 앞으로 기차에서 본 여자가 다시 다가왔다. 이번엔 옆에 남자 하나를 대동한 채였다. 여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녹음하겠습니다. OOO 중사님, 아까 기차 안에서 마스크 내리신 거 맞지요? 인정하시나요?"

당황한 중사는 아까와 똑같이 대답하고는, 이미 기차 안에서 사과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정중하지만 조금 힘주어 말했다.

"네, 아까 사과하셨죠. 사과하신 거 맞고요. 그럼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내리면 위반인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제가 신고해도 이의는 없으시죠?"


하, 사실이 아닌 건 아니니 아니라 할 수도 없고. 근데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친구 아들의 얼굴이 조금 울그락불그락 했던가. 여자가 여기에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리고요, 제가 아까 사과받으면서 너무 무서웠거든요? 저는 위반 사항이라 확인차 물어본 건데, 옆에 앉아계시던 분이 저를 내내 뚫어져라 쳐다보셔서요. 제가,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다행히 그 사건은 행정명령에 따라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졸지에 '공포감을 조성한 자'로 지목된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야말로 내 등줄기가 서늘해지고야 말았다. 이거 혹시 남녀 공갈 사기단 아니야? 기차 안에서 상주하면서 내내 마스크 내리는 놈만 노렸다가, 하나 걸리면 이때다, 하고 협박해서 그걸 미끼로 단돈 얼마라도 뜯어내려는? 그게 아니면 위생에 예민한 강박증 환자일까? 나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법이라는 테두리를 이용해 굳이 이렇게까지 '해코지' 하려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서성이다 불현듯 얼마 전 유튜브에서 구독한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조던 피터슨 한국 공식 채널에서 올린 '조던 피터슨| 암울한 미국 대학의 미래'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조던 피터슨과 만난 출연자는 2008년 탈북 후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박연미 씨. 그녀는 작년에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했는데, 영상 속에서 자신이 대학 캠퍼스에서 경험한 PC(정치적으로 올바름) 운동의 충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업 전 교수님들은 이런 이메일을 보냅니다. 이번 강의는 이런저런 주제를 다룰 건데, 이로 인해 우울해지거나 자존감이 하락할 것 같으면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고, 관련 자료를 읽지 않아도 됩니다."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그 대가로 중국 브로커에게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녀. 사랑이란 단어는 오직 김일성 일가에게만 바쳐져야 하는 단어인 줄 알고 살았던 그녀. 굶주림과 독재 정권의 억압을 피해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탈출한 그녀에게는 '강간 이야기가 우울하다고, 아니 불쾌하거나 상처를 준다고' 피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서구 사회는 이상한 곳이었다. 기후 변화와 동물권, 성평등과 성전환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친구들의 70프로는 심리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2시간씩 줄을 서고 있었다. 영어를 그다지 잘하지 못해 '그'나 '그녀'조차 헷갈리던 그녀에게 학생들은 자신을 성 중립적 대명사로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남성이 문을 잡아주도록 하는 것은 남성이 자신을 제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죠. "아니죠! 친절한 거고, 예의를 지키는 거 아닌가요? 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문을 잡아주는 걸요? 제가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니지 않아요?라고 했어요.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연미 씨는 북한에서 완전히 세뇌당한 거예요."


그녀는 대학에서 '자신을 아주 능숙하게 검열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고 탄식했다. 옳다고 믿는 신념을 말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는데 '안전공간을 만들고 감수성을 기르는 데'에 다시 4년이라는 시간을 써야 했다고. 자유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내가 가장 놀랐던 지점은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기 미국 대학 강단에 대해 그녀가 날린 일침이었다.


"미국 대학은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생각하는 방식을 거의 새겨주다시피 해요. 생각의 형태를 올바르게 잡아주려고 하고,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잡아주는 거죠."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또 다른 검열이 될 수 있다니! 늘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에 비해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서구에 대해 식민지 원주민 마냥 급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법이란 것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일 뿐이란 사실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20여 년 간 PC 운동과 함께 소수자 인권 운동의 언저리에서 불고 있는 잡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법적으로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그들의 투쟁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또 다른 검열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감수성을 기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또각또각, 해코지하는 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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