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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마담 Nov 18. 2021

저년은, 이렇게 해줘야 좋아한다고!

분식집 옆자리에서

간만에 모인 동네 친구들 모임. 화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버이날 아들과 딸은 어떻게 다른가. 뭐 굳이 아들과 딸을 논하고자 함은 아니고, 성별이 아들과 딸, 이렇게 둘 뿐이다 보니 서로의 육아 방식이랄지 집안 내력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우리 사이에 넌지시 짐작할 만한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우리 집 아들과 그 집 딸. 하필 두 집 모두 며칠 전 비슷한 문제로 자기 집 사춘기 청소년과 대판 언쟁을 벌인 직후였고, 하필 그 며칠 뒤가 어버이날이었고, 그래서 어버이날을 맞이하야 아들과 딸이 어떻게 달랐는지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뭐 이런 일의 결말은 따져볼 것도 없다. 역시, 딸이 최고다. 며칠 전 그 집 언쟁의 스코어를 따져보자면 엄마와 딸의 결점은 6:4 정도? 사춘기라 엄마 눈에는 딸의 행동이 구구절절 해괴망측한 일뿐이라지만, 우리 아들 맘 눈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코피 쏟아가며 새벽까지 기어이 숙제를 해내고야 마는, 공부뿐 아니라 남학생 여학생 막론하고 두루 생파 단골 초대 손님인 인기 만점 그 집 딸의 결점보다는, 그런 딸이 립스틱 좀 짙게 바른다고 잔소리하는 엄마의 결점을 더 높이 살 수밖에 없었는데.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러니, 딸 둔 집에 대한 조언일랑 늘 '배부른 소리 그만 하라'는 워딩으로 끝나고야 마는데. 그런 그 집 딸이 어버이날 꽃봉투 속에 금일봉 5만 원과 함께 그날의 싸움을 고해하는 예쁜 손편지까지 고이 접어 엄마 손에 쥐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아들 맘 하나가 어디서 들었다는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언니, 친구가 며칠 전 애들 데리고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었대. 애들 학원 막 오가는 시간 때쯤이었을 거야.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서너 명이 왁자지껄 떠들며 들어오더니, 바로 옆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더라는 거야. 언니도 요즘 애들 어떤지 알지? 각자 책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더니 얼굴에 팩트를 톡톡톡, 찍어 바르더래. 입에는 시종일관 이 년 저 년 -그 이상은 자체 검열로 생략- 하면서. 어떻게 'ㄴ'이랑 'ㅆ'이 들어가지 않는 문장이 하나도 없는지, 귀가 열려 있으니 안들을 수도 없고, 친구는 것도 참 신기하더래.


이윽고 테이블에 떡볶이며 김밥이며 튀김이 한가득 차려졌지. 막 한술 뜨려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한통 걸려온 거야. 한 여자애가 받았지. 엄마였나 봐.


"아, 엄마아~ 응, 수학 학원 끝나고 지금 애들이랑 뭐 먹으러 왔어요. 간단하게 먹고 영어 학원 가려고.

(...) 아니야, 아니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애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 정말 괜찮다니깐. 엄마 힘든데, 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알아서 잘 챙겨 먹고 잘 갈게.

걱정하지 마요. (...) 응, 잘 알지~ 나도, 엄마 많이 사랑해~"


갑자기 여자애 목소리 톤이 싹싹하고 나긋나긋하게 바뀌어서 친구는 무슨 딴 사람이 와서 앉은 줄 알았대. 그리고 핸드폰 덮개가 탁, 닫히자마자 "아 씨발, 하마터면 데리러 올 뻔했잖아," 안도인 듯 변명 같은 통화 속 주인공의 목소리 뒤로 기다렸다는 듯 야유 섞인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닥쳐 이년들아. 저년은 이렇게 해줘야 좋아한다고!"


헐. 요즘 애들 말이 걸다는 얘긴 들어봤어도 이런 반전은 또 매우 극적이라 그 자리에서 앉아 듣던 우리 모두 경악을 하고 말았는데.


나는 아들이 태권도장에 다니며 형들과 어울리고,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하나 둘 입에 욕을 달고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크게 제재하지 못했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면 뒤에 가서 할까봐. 나는 뒤에서 듣는 말이 더 싫었다. 돌고 돌아 나에게 맨 마지막에 들리는 말. 차라리 욕을 하더라도 내 앞에서 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무슨 얘기라도 나눠볼 수 있지 않나. '내 아들은 욕 안 써요,' 하는 여자의 아들이 내 아들의 증언에 의해 전교에서 가장 입이 걸은 애로 판명 나는 게 싫었다. '내 아들은 페북 안 하지~ 핸드폰이 없는 걸,' 하는 그 집 아들이 내 아들의 공 핸드폰을 줍줍 해서 페친이 300명이 넘는 인싸인 걸 맨 마지막에 아는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알았다. 이제 내가 내 아이에 대해 다 알 수 없다는 걸. 독점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는 걸. 엄마, 엄마, 나 좀 봐봐요~ 엄마, 엄마, 나 멋지지? 하며 시종일관 엄마만 찾아대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하루 종일 한 몸처럼 내 품 안에서 먹고 자고 싸는 것을 모조리 공개하던 아이는 더 이상 없다는 걸. 이미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교와 친구들과 보내며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기만의 세상에서 부대끼고 변해 갈 거라는 걸.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도 언젠가 어느 집 시어머니처럼 "내 아들은 노른자를 제일 좋아한다"라고 얘기하는 여자가 될지 모른다. 그 아들은 대학생 때 계란 노른자를 먹다 체해서 이제 노른자 따위 거들떠보지 않는 남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더 많은 비밀에 가까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은 것으로만 주고 싶었던 부모라는 안전망이 사라지고,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넘어졌다 일어나고 다가가다 물러서는 실수를 반복해야 한다. 실패를 반복하며 성장해야 비로소 훌륭한 어른이 된다. 그러니, 그 와중에 지우고 싶은 비밀쯤 몇 가지 안고 살 수도 있겠지. 가끔 사춘기 시절 내가 쓴 일기장을 들여다보며 얼굴 화끈해지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아이의 비밀에 대해서도 이제 조금 보고 듣지 않는 엄마가 되어 보고자 한다. 대신 더 좋은 선생님과 더 좋은 친구들과 더 좋은 사람들이 내 아들 곁에 있어주길.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신에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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