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 일뿐이다
25분은 생각보다 길어요
얼마 전 출연한 생방송은 내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생방송 전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방송국에 도착하니 오히려 가지고 있던 불안감은 없어졌다. 아마도 뭔가를 내려놓았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다. 미리 준비한 대본을 보다가 바로 덮고 말았다. ‘이걸 방송에서 읽으면서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자신이 없었다. 25분간의 생방송 시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질문은 12개였다. 앵커는 “25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니 좀 길게 답변해 주세요”라고 겁을 주었다.
얼굴에 처음으로 화장이라는 것을 하고, 이것 저것 주의 사항을 들으면서 1시간의 대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생방송 뉴스가 시작되었다. 먼저 20분 동안 주요 뉴스를 앵커와 기자가 다루고 이후 25분 동안 뉴스 속 소주제로 ‘주목! 강소기업’에 내가 등장하면 되는 것이다.
스튜디오가 생각보다 편안하네
스튜디오에 앉으니 오히려 편안하였다. 앞에 놓인 여러 모니터에서는 내 얼굴과 자료 화면이 나오고 많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특별히 긴장되지가 않았다. 내가 아니라 회사를 대표해서 회사를 소개하는 것이니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는 주문을 외우니 편안해졌던 거 같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대본을 덮었다. 오히려 대본이 말의 흐름을 부자연스럽게 만들 것이라 생각을 하고, 여러 패널토론이나 발표에서 질문자의 내용을 듣고 간단히 정리한 후 답변을 했던 나의 경험을 활용하기로 했다.
대표님 소개를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사 대표로 출연했기 때문에 제 소개가 아니라 회사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질문부터 시크하게 가버렸다. 순간 앵커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내 소개라니? 무시하고 회사 소개를 했다. 이 자리는 회사의 대표로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소개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앵커는 예정에 없던 질문도 하고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다.(회사 이름을 잘 못 부르는…) 답변을 하고 편안하게 진행을 하였고 그렇게 25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끝까지 내가 봐야 하는 카메라를 집중해서 보지 못했다는 것 빼고는 특별히 방송 실수를 하지 않았기에 만족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왔다.
직업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보니, 발표를 하거나, 패널로 나가거나, 강연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종종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다. 소규모 미팅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이런저런 토론을 나누는 게 항상 편안하게 느껴져서 그걸 즐기는 편이다. 불특정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다. 하지만 회사를 알려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의 일들이 ‘불특정 당신’들과 어쩌면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하기 때문에 해야만 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생방송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도 내 개인적인 부분이 아니라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회사에 피해를 입히는 일 없이 잘 해내야만 한다.
생방송에서는 실수를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 게 아닌데, 나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힘들어했던 거 같다. 실수를 하더라도 우리 회사를 좀 더 잘 알리고 방송을 듣는 우리 임직원들이 만족해하는 게 더 중요한데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생방송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회사를 더 상세히 강하게 소개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을 다시 볼 수없다. 부끄럽기 때문에.
실수는 할 수 있다. 그걸 너무 걱정하면 이뤄야 할 목표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생방송에서 배우게 되었다.
아침에 초등학생 저학년 아들에게 했던 말이 맞는 말이었다.
아들. 아빠 생방송 가는데 뭐 해 줄 말 없어?
방귀만 안 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