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르네상스의 세 거장 그리고 리더십

로마에서 부딪힌 천재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리더의 초상

by 디케이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는 단지 제국의 수도가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천재들이 부딪히고, 빛났으며, 새로운 시대를 설계한 전장이었다. 그 중심에는 앞선 연재들에서 언급한 세 명의 거장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들은 예술가이자, 사상가이자,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리더십의 세 얼굴이었습니다. 각자가 번성한 도시는 다르지만 로마는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로마에서의 세 명의 거장에 대해서 간략 정리해 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 인정받지 못한 제곡의 도시 로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로마에서의 행적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고독한 시기였지만, 그곳에 있는 미완의 그림 한 점[성 히에로니무스]은 그가 남긴 예술적 진심의 파편처럼 빛납니다. 그의 로마에서의 흔적은 회화가 아닌 사유와 실험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그리지 못한 예술가’였지만, 보이지 않는 구조와 진실을 설계하려던 사유의 리더였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호기심 자체였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로마에서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장식 등 주요 프로젝트에서 밀려났고, 그에 대한 교황의 신뢰는 미지근했습니다. 1514년, 레오나르도는 로마에 도착하지만 그때는 이미 바티칸을 장악한 세력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로 옮겨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늙은 거장’으로 홀로 실험을 계속했지만, 교황 레오 10세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레오 10세는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작업을 보고 "이 사람은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겠군"이라고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레오나르도는 그런 일련의 일들로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조용히 프랑스로 떠나 거기서 생을 마친 게 아닐까요.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빛나던 천재임에도 로마에서는 크게 인정을 못 받은 모습입니다.

성제롬.jpg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히에로나무스'>

미켈란젤로 – 로마에서 예술로 제국을 새기다

미켈란젤로는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 싸운 예술가였습니다. 강렬하고 격렬하며, 타인과 쉽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비전을 끝까지 실현하는 독종형 리더” 자기 확신과 추진력 고립 속에서도 스스로를 태우는 ‘불꽃형 리더’ 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그에게 영원한 무대를 주었고, 그는 그 공간 안에서 신과 인간 사이를 조각해 냈습니다. 그는 말이 아닌 결과로, 명령이 아닌 몰입으로, 고통 속에서 남긴 작품은 2천 년 제국의 상징 위에 예술을 새겼습니다. 그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처음 제안받았을 때 조각가로서 거절했지만, 결국 목디스크, 허리 통증, 분도 등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며 4년을 혼자서 신과 인간의 천장 그림을 완성했던 것처럼 그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로마에 새겼습니다.


그의 로마에서의 업적은 대단했습니다. 로마에서 첫 걸작은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피에타]입니다. 젊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하나를 깎아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고요한 장면을 조각했습니다. 교황 율리오 2세의 강권으로 시작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은 미켈란젤로에게 고통과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혼자서 천장을 올라 4년 동안 1,100㎡에 달하는 벽화를 그려냈습니다. 또한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은 그의 종교적 고민과 예술가로서의 회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집약된 걸작입니다. 교황 바오로 3세의 신뢰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총지휘하여 그중 가장 상징적인 부분이 바로 돔(Dome)을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로마에서 그는 예술가의 천재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피에타, 천장화, 천지창조, 성 베드로 대성당 돔>

라파엘로 – 바티칸을 디자인하고 판테온에 잠들다

라파엘로는 거장 중 가장 젊었고, 가장 빠르게 인정받았습니다.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를 보며 배웠고, 바티칸에서 그 둘을 뛰어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협업과 설계의 마에스트로” 아름다움과 질서의 조화를 중시하며 여러 제자와 함께 대형 프로젝트도 수행했습니다. 라파엘로가 죽은 날, 교황은 건축 공사를 중단시킬 만큼 신뢰를 받았습니다. 라파엘로는 다른 천재들의 고독을 이어받아, 조화를 창조한 리더였습니다. 1508년, 라파엘로는 바티칸의 Stanza della Segnatura를 맡으며 빠르게 로마 미술계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가 그린 [아테네 학당] 속에는 숨은 인물 한 명이 있습니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습으로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었습니다. 홀로 생각에 잠긴 인물, 나무 책상에 팔을 괸 채 깊은 사색을 하는 모습, 이것은 시스티나 천장을 그리던 미켈란젤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를 존경과 경쟁의 대상으로 동시에 그렸습니다.

라파엘로 작품.png <아테내학당, 성체논쟁, 파르나소스 산, 판테온에 있는 라파엘로 무덤>

르네상스의 세 거장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십은 단순히 정답이 있는 하나가 아닙니다. 리더 각자의 리더십이 존재하고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그 리더십은 대단한 결과들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3명의 천재가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도 3대 거장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누구도 흉내 내지 않았고, 누구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시대를 이끌었지만 서로에게는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에서는 여러 작품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세 사람의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대단함에 놀라게 됩니다. 그게 로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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