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의 리더십
아로마의 아침, 콜로세움 근처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낮게 가라앉은 땅 위에 고대의 숨결이 그대로 묻혀 있는 포로 로마노가 있습니다. 콜로세움이라는 유명한 건물에 가려져 있어 우리에게 덜 유명한 곳일지도 모르지만 로마에서 아주 의미 있는 유적지이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은 마치 한 도시의 의식이 남겨진 열린 도거관 같은 곳입니다. 여전히 기둥들이 있고 계단들이 남아 있습니다. 조용히 그곳에 그냥 서 있지만 과거의 장면들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각자의 돌이 감정을 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관광객들이 콜로세움 앞에서 환호할 때 나는 조용히 이 광장을 더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어쩌면 이 폐허에서만 들을 수 있는 조용한 소리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포로 로마노는 제국의 중추였고, 로마 시민의 모든 공적 생활이 녹아든 공간이었습니다. 행정, 사법, 군사, 종교, 경제 등 모든 기능이 이 광장 안에서 조율되었습니다. 곳곳에 남은 신전의 석조 기둥, 바실리카의 넓은 기단, 원로원이 회의를 열던 커리아(Curia Julia), 승전의 흔적을 새긴 개선문들은 각각 제국의 리더십 기능을 상징적으로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공공의 리더십이 실현된 가장 압축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광장의 중심엔 왕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도자는 위에 서서 장악하지 않고, 광장 가운데 시민들과 함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느낀 포로 로마노는 무질서한 폐허였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건물의 배치, 기둥 간격, 길의 방향, 건물의 용도는 완벽한 질서와 기능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사투르누스 신전'은 국가의 금고이자 재정의 신 앞에 정의를 두는 구조였고, '바실리카 율리아'는 시민들이 실질적인 사법 절차를 경험하는 열린 법정이었습니다. '로스트라(Rostra)'는 시민과 지도자가 마주 보며 연설하던 단상이었고, '세베루스 개선문'은 전쟁의 업적이 개인의 영광이 아닌 공공의 기억으로 남겨지게 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는 지도자의 명령이 아니라, 시민과의 합의와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리더십의 도시 설계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조직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리더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포로 로마노의 중심을 걷다 보면, 돌로 된 낮은 단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곳이 바로 로스트라(Rostra) — 고대 로마의 공식 연설대였습니다. 로스트라는 단지 연설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리더가 시민과 마주하는 자리, 국가의 방향을 말하는 자리, 정치적 책임을 공개적으로 묻는 자리였습니다. 이곳에선 집정관이 정책을 설명했고, 원로원 의원이 시민에게 호소했으며, 장군이 전쟁의 승리를 보고했고, 철학자와 연설가가 진실을 외쳤습니다.
가장 유명한 이는 '키케로(Cicero)'였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카틸리나 음모를 고발하고, 법과 도덕을 설파했습니다. 그의 말은 로마 시민을 움직였고, 결국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로스트라는 높지 않았습니다.
성곽처럼 웅장하거나 위협적이지도 않습니다. 그 단상은 광장 가운데 놓여 있고, 시민들과 거의 같은 눈높이였습니다. 지도자는 위에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 서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선거 때뿐만 아니라, 로스트라처럼 책임질 수 있는 말이 오가는 공간, 공개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리더가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설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포로 로마노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공간을 걸으면서 과거 견고한 리더십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권위보다는 질서로, 리더의 보이는 자리보다 시민이 함께 설 수 있는 광장으로 로마라는 제국은 포로 로마노를 적극 활용 했습니다. 어쩌면 그곳은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 리더십의 철학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나는 포로 로마노를 걸었습니다. 돌무더기처럼 보이던 폐허가, 걸을수록 하나의 이야기로, 그리고 한 도시의 리더십 교과서로 다가왔습니다. 높은 탑도 없고, 화려한 궁도 없었지만 그곳엔 질서가 있었고, 목소리가 있었고, 함께 서야 했던 광장이 있었습니다.
콜레세움의 웅장함과 그 이야기를 느껴 보는 것은 훌륭합니다. 다만 콜로세움 앞 포로 로마노에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그 시대의 역사와 사회를 생각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