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스티나 천장화

미켈란젤로와 율리우스 2세, 시스티나 천장화와 고독한 리더십

by 디케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의 수많은 사람들처럼 머리를 들고 천장의 웅장한 미술 작품을 보았습니다. 천장은 단순한 장식이 아라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고독과 고집이 그린 세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걸작을 잘 알지만 그 모든 창조의 시작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합니다.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병사를 이끌고 전쟁을 이끄는 전사였으며 예술가를 부르고 건축가를 통솔해 바티칸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라파엘로에게 교황궁 벽화도 완성되었습니다. 그가 예술에 투자한 이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권력의 영속성을 ‘예술’로 남기려 했던 나름 통찰력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라파엘로 교황 율리우스 2세.jpg <라파엘로의 교황 율리우스 2세>


시스티나 경당, 예술과 권력의 무대

시스티나 경당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경당입니다. 1480년대 시스투스 4세가 건립했고, 그 이름을 따서 ‘시스티나’라 불립니다. 바로 이곳은 지금도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이며(얼마 전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죠.) 그 자체로 가톨릭의 심장입니다. 가 보신 분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성단 내부는 단순하지만 길고 높으며 벽면은 보티첼리, 페루지노 등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완성의 최고점으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입니다. 천장화는 권력의 상징, 신앙의 극치 그리고 예술의 정점이었습니다.


시스티나 경당 내부.jpg <시스티나 경당 내부>


강요에서 시작되다 ― 조각가에게 붓을 쥐게 하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천장을 그릴 것을 지시합니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주로 조각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무덤 조각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의 지시를 처음 받았을 때도 그는 자신은 화가가 아니고 조각가라 하며 사양했지만 율리우스 2세는 단호했습니다. 설득이 아니라 거의 강제에 가까운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교황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가(화가나 조각가)가 아닌 신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아파트 4층 정도의 높이에서 500㎡가 넘는 천장을 혼자 그리게 됩니다. 비협조적인 팀, 기술적 한계, 경제적 압박까지 있었지만 그는 오로지 신념 하나로 천장과 싸웠습니다.

천장화.jpg <미켈란젤로 천장화>

천장 위의 신화 ― 아담의 손끝과 9개의 이야기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장화의 중심은 창세기의 9개 장면입니다. 설명을 들은 것과 따로 공부한 것에 기반하여(?) 간단히 설명하면, 성당의 정중앙을 따라 배치된 이 이야기들은 인류의 창조, 타락, 심판까지를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티칸 여행은 가이드분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상세히 설명을 해 줍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담의 창조>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오른손이 땅에 누운 아담의 손끝과 마주하는 장면입니다. 손끝은 닿지 않고 있으며, 그 미세한 거리가 바로 인간과 신 사이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리더와 조직원 사이의 이상적 긴장감이 아닐까요. 그 외에도 <노아의 방주>, <선악과를 따먹는 아담과 이브>, <대홍수> 등 신화이자 역사인 이야기들이 장엄한 구도와 생생한 인체 표현으로 천장을 수놓고 있습니다.

또한 천장 양옆에는 12명의 예언자와 여선지자가 그려져 있고, 코너에는 구약성경의 구원 장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단순한 성경 해석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과 인간, 믿음과 고통, 창조와 파괴의 관계를 예술로 번역한 존재였을지 모릅니다.

시스티나 성당 내부모습은 아래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교황과 예술가 ― 충돌과 존중의 반복

한편, 율리우스 2세는 성급하고 완고한 리더였습니다. 작업이 지연되자 천장 위로 직접 올라와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분노했고, 심지어 로마를 떠나 피렌체(앞선 연재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조각가로서 명성을 떨쳤습니다.)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라파엘로를 소개받고 편애를 했기에 미켈란젤로의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서로를 존중했고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율리우스 2세의 단점은 분명했습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강압적 명령을 선호하며 예술가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정확히 보았습니다. 누가 시대를 남길 수 있는 예술가인가? 그 믿음은 결과적으로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가 예술을 남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하다

미켈란젤로는 천장을 그릴 때 고개를 들 수 없었고, 허리를 필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리더인 율리우스 2세는 자주 그를 몰아세웠습니다.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고 미켈란젤로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분노하며 때론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완성했습니다. 그 역시 그의 대단한 업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가 만든 천장은 수백 년 후에도 수많은 이의 고개를 들게 만들었습니다.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이 직접 그릴 수 없는 천장을 지시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리고 결국 완성이 될 때까지 지켜보고, 기다리고, 지탱해 줄 수 있는 율리우스 2세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또한 인물을 잘 알아보고 적시적소(브라만테, 라파엘로 등)에 잘 배치하는 것 또한 그가 리더임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