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의 마지막 이야기
회사 실적 지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더라도 CEO는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하고, 그 일을 회사에서 잘할 수 있게 리딩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새로운 사업의 론칭과 성공이다.
3년 후에 우리 회사의 수익 모델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일반 기업에서 신사업은 대부분 독립된 사업부에서 기획/발굴 타당성을 검토하여 자체 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권자가 결정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나와 몇 명의 담당자가 사업을 발굴/기획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자체 예산이 부족하여 정부 지원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각자 다른 일들도 많아서 이래저래 관련 팀은 바쁘다. 지금처럼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주변 부서의 눈치도 봐야 한다.(나도 본다.)
"바쁘고 실적도 안 좋은데 데체 CEO가 뭘 하는 거지?"
빨리 결과를 내 보이지 않으면 주변에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비난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빨리 사업을 론칭시키고 싶고,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부담감을 매일 느끼면서 고민을 하고 있다.
오늘도 기획팀과 함께 새로운 잠재 사업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기획팀과 나는 두 가지 신사업 대상을 선정했다. 하나는 회사 자체 예산으로 진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지원을 활용하여 작년 하반기부터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정부 지원사업을 활용하는 경우, 정부의 '사내벤처지원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어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서비스 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 향후 사업 확대/분사 등의 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시장성이 있어야 하고, 개발이 성공적으로 잘 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들이다.
" 잘되어야 하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네.. 불안하군"
10년 이상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항상 느끼는 좌절은 '쉽게 잘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와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어떠한 시련이 와도 '이 또한 지나간다'이다. 결국 신사업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에 대한 도전이고, 지금은 힘들고 불안하여도 결국 어떤 모습(사업 진행/사업 포기)으로 결과나 나온다.
두 가지 신사업 모두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나는 '출판 플랫폼'으로 출판과 관련한 모든 사람이 우리 플랫폼에 들어와 소비자/공급자가 되어 서비스를 활용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해외 양질의 도서를 유통하는 사람과 국내 '옮긴이/번역가'를 연결해 주거나, 실력 있는 예비작가와 출판사, 경력 작가들과 실력 있는 소규모 출판사 등을 연결해 주는 등, 책과 관련한 많은 일들을 플랫폼에서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비즈니스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고 항상 출판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신사업으로 시도해 보게 된 것이다. 이걸 하기 위해서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보았고, 나름 실무의 경험도 해 봤다고 자신하기에 야심 차게 진행해 보려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여행 플랫폼'이다. 국내, 해외 여행지 중에서 나만의 명소를 찾고 여행 상품화하여 플랫폼에 소개를 하고 본인이 직접 관광 가이드까지 할 수도 있는(본인의 숙소를 에어비앤비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좀 특별하지만 흥미로운 장소와 이벤트로 포장된 여행상품을 일반인 모두가 만들어 비즈니스에 참여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다. 비록 지금은 코로나19로 와닿지 않지만 언젠가 종식이 될 것이고,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하면 나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이라 생각한다다.
조금 전에 지금까지 개발된 서비스를 자체 테스트를 했는데, 짧은 시간에 젊은 친구들(신사업의 핵심 개발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20대의 젊은 친구들이다.)이 완성한 것을 감안하면 훌륭했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해 보이는데요... 최종 발표 시에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요."
이 두 신사업이 계속 진행되어 회사 수익에 보탬이 되고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정식 서비스가 될지 아니면 '멈춤(개발의 멈춤은 결국 끝이다)'이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정해진 날짜까지 그냥 힘을 합쳐서 해 보는 것이다. 최종 결론은 CEO인 내가 내려야겠지만 팀원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싶다. 의지가 있으면 더 진행하게 해 주는 것이 언제나 옳다.
신사업은 전문분야, 남들은 잘 모르지만 해오고 있었던 분야의 지식인 '암묵지'를 잘 분석하고 활용해야 한다. 해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지식, 말해줘도 모를 수밖에 없는, 우리만 알고 있는 경험의 영역에서 신사업을 진행해야 시작이 편하고 성공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신사업 대상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우리가 잘하고 경험을 축적한 부분은 테이터 분석과 시각화 영역인데(특히 제조업에 IT 기술을 접목시켜 고객이 보지 못했던, 볼 수 없었던 가치를 찾아 주는 것인데), 출판과 여행이라니... 뭔가 분명 어색한 느낌이 든다. '결국은 데이터 수집으로 여러 인사이트를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같은 영역이야.라는 스스로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뭔가 좀 궁색하다.
혼자 공원을 찾아 3시간 정도를 걸었다. 이 두 가지 신사업을 계속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투자 관점에서도 던져보고 CEO의 입장과 직원의 입장에서도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변을 해보았다.
"내가 투자자라면 출판/여행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는 이 회사에 투자를 할까?
아니오"
아무리 스스로를 위로하며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오'였다. 유니크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양한 IT 신기술을 융합시킨다고 해도 투자자나 고객 설득이 어려울 것만 같다. 야심 차게 준비하고 신나게 끌고 온 신사업은 다음 내부 최종 발표에서 그 운명이 정해질 것이다.(두 신사업 대상은 몇 개월 동안 일부 개선점을 보완했지만 서비스할 수 없다는 최종 결정에 따라 사라졌다.)
다행히 3월의 실적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좋았다. 모든 직원들이 노력을 한 결실일 것이다. 예상이 맞다면 이달 영업이익은 6억 원에 근접할 것이다. 1월과 2월의 적자폭이 너무 커서 1사 분기는 영업적자를 면치 못하겠지만 분기의 마지막 달을 긍정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안도와 자신감이 생겼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부정적 실적 신호에 잠도 못 잤는데, 겨우 한 달 만에 안도를 하게 된 것이다. 아직 일희일비하는 초보 CEO인 것만 같아서 조금은 부끄럽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코르티솔'이라고 한다. 이 물질은 우리가 위협이나 위험을 느끼면 감지했을 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가 위험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분비되는 물질이지만 몸에 오래 머물면 오히려 우리 몸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코르티솔은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암, 당뇨, 심장 질환 등 각종 질병의 발병률을 높인다고 한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스스로 살기 위해서 생성되는 고마운 물질이지만 넘치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위험한 물질이기도 하다.
반면에 '세로토닌'은 자신감을 주는 호르몬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존중을 받거나 인정을 받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이 세로토닌 때문이라고 한다. 세로토닌이 분비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세로토닌 덕분에 소중한 사람이 훌륭한 일을 성취했을 때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한해 시작과 더불어 세 달 동안 내 몸에는 꽤 많은 '코르티솔'이 분비가 되었고, 축적이 되었다. 그로 인해 건강에도 어느 정도 나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달에는 우리가 목표한 실적을 성공적으로 낼 수 있는 임직원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결과에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 '세로토닌'이 역시 많이 분비가 되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에 '코르티솔'과 '세로토닌'이 내 몸에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앞으로는 '세로토닌'만 분비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아마 반복적인 두 감정의 변화를 겪으면서 두 화학물질이 생성되고 축적되고 사라지는 반복 과정을 겪으며 적응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미래도 그럴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멈추지 않고 나갈 뿐이다.
그러고 보니 3월은 내 생일이 있었던 달이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매일매일 조증과 우울증 사이의 아주 찰나의 간격에 살고 있다.
가끔은 사소한 일에 아주 기쁘기도 하고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얘기는 나에게 칼이 되어 오기도 하고, 또 어떤 얘기는 나에게 꿀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잘했다. 잘 버텼다!' 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CEO라는 나의 숙명 때문에 그 일이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나에게 좀 더 관대하게 대하고 나를 더 존중해 주는 단련을 해야 한다. 조금씩 내려놓고, 천천히 멀리 가는 방법을 익혀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CEO 일기 다음 시간은
Ep10. '2021년 4월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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