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첫 번째 이야기
벌써 5월이다.
큰 희망과 자신감으로 시작한 올해는 아직 저조한 실적으로 형편없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불안의 기운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잘 될 거야'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매 순간 하고 있지만 그 보이지 않는 불안함은 내 머릿속과 맘속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코로나로 오늘은 재택을 하는데, 책상에 커피를 엎질러 버렸다. 마음속이 혼돈스러우니 행동 하나하나가 세심하지 못하다. (아님 불행한 하루가 시작이 될지도 모르지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한해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주력 사업이 부진하더라도 다음 달에 결과가 나올 '데이터 지원사업'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낙관적인 생각에, 어쩌면 낙천적인 생각으로 5월을 시작하였다. 어쩌면 이달 실적이 좋게 마무리된다면 분명 2사 분기는 나쁘지 않은 실적을 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잘 될 거니 열심히 해보자'라고 다짐하고 있을 때 대구에 있는 파트너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대구 근처에 있는 제조회사에 대표님이 직접 제품을 제안해 줄 수 있겠습니까?”
“팀장님이나 본부장님이 가서 하면 안 될까요?”
이유를 물었다.
고객사 대표가 다른 회사의 다른 제품으로 이미 결정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대표가 직접 가서 얘기해야 대표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실적 압박도 있고 무엇보다 관련 직원들이 요즘 너무 바빠서 내가 가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일정 잡아서 알려 주세요. 내려가도록 할게요.” 기차 안에서 발표할 소개자료를 꼼꼼히 점검했다. 꼭 고객 대표의 마음을 돌려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부담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구성원에게 업무권한을 위임하고 주체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임파워먼트'를 리더십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조직을 이끌어오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사업 초기에 실무부터 거시적 결정까지 관리하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한적도 있지만 결국 회사는 대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판단에 좀 답답하고 궁금하고 가끔은 실망스럽더라도 '임파워먼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실적 영향과 나의 불안한 심정 때문에 고객사를 직접 찾아가게 되었고 스스로 그 의지를 어겼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
대구에서 차로 2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제조 회사는 ‘친환경 섬유회사’였다. (KTX와 무궁화열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다니..) 정확히는 폐페트병을 수거해서 그걸 원료로 섬유를 만드는 회사다. 플라스틱을 섬유의 원료로 쓴다는 말은 들었는데 직접 보니 재미있는 제조기업이었다. 최근 외부에서 친환경 관련 디지털 전환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고 특히나 '탄소중립'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는데, 이렇게 관련 기업에 직접 와서 보니 큰 도움이 되었다.
플라스틱 페트병은 본래의 역할이 끝나면 소각/매립/재활용으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이 소각과 매립이 큰 환경적 문제이다) 폐플라스틱 페트병을 수거해 섬유를 만드는 것(리사이클링) 자체가 탄소 배출을 '-(줄이는)'에서 시작하는 거다. 적어도 처음부터 소각이나 매립 등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니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섬유를 만드는 공정에서 추가적인 탄소배출이 있지만 덜한 것은 분명하다.)
이 회사는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달성하는 수출 주도 회사며 이 회사의 대표는 창업가 2세다. 지금은 20년 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 설립자보다 지금 회사의 경영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2세 경영인이다. 같은 동향 사람에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했다. 얘기도 잘 통했고 특히 그 기간 제조기업을 경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헤쳐나가는 능력을 엿볼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이 분의 무게를 공감할 수 있었다.(나는 중소제조기업을 이끄는 대표님들을 대부분 존경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은 중요하지만 참 힘든 업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IT와 제조회사의 대표로서 서로 보완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직 제조회사와 IT회사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디어는 없지만 '섬유 친환경 시스템(플랫폼) 구축' 정도가 꽤 잘 진행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예상이 되었다. 좋은 기획을 하고 '탄소중립'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플라스틱은 재활용해 리사이클 섬유를 만든다면 멋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걸 IT시스템 특히 플랫폼으로 구현한다면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듯했다. 아무튼 우리 회사와 진행을 하기로 하는 긍정적인 답변을 듣고 기분 좋게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CEO 역시 위기가 언제 닥쳐오고 기회로 변환할 수 있는 시점을 가늠하기는 참 어렵지만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 과거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그 시점에 회사의 대표로서 얼마나 기회를 잘 포착하고 의사결정을 잘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려고 노력한다. 불행히도 대부분은 최고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려워 항상 반성한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훈련해서 더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다.
간혹 과거의 결정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얘기하는 CEO들이 있는데 사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과거를 돌이켜 보니 '그랬을 거 같다'라는 자기 주문과 자기 인정이 어느 정도 결합되어 '추상적 기억'을 '구체적 사실'로 만든 경우가 많다.(확증적 편향) 사실 리더의 이런 확증적 편향의 실수는 기업에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자기 합리화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실수와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고 뒤를 돌아보고 현실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미래를 준비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것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게 되고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애쓰고 있다.
아무튼 오늘 만난 '리사이클 섬유회사'는 뭔가 잘 협업이 될 것 같다. 여러 협업 모델을 기획하고 준비해봐야겠다. 그리고 양사가 정말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꼭 찾아봐야겠다.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항상 어려운 법인데, 사업을 하면서 그 가치를 만들어 가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괜찮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CEO 일기 다음 시간은
Ep16. '2021년 5월 두 번째 이야기'
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