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마지막 이야기
과거 혼자서 처절하게 투자유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회사의 개발을 이어가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얻기 위해서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만들고 다듬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했었다. 영업, 기술, 재무와 회계관리, 마케팅, 트렌드 등 투자를 위한 모든 부분을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했다.
라고 생각이 들 쯤엔 정말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참 의도치 않게 인생의 방향이 틀어진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 대표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몇 년 전의 과거였다.
오늘은 투자 유치를 위한 발표가 있는 날이다.
최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투자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투자사와 미뤄놓은 미팅도 있었지만 4월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아 현금흐름에 문제도 생길 수도 있기에 조금 능동적으로 잠재적 투자자와 미팅을 진행했다. 항상 해왔던 것이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 CFO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처럼 사업의 특성과 제품/서비스 등을 바탕으로 한 우리 회사의 성장 가능성과 투자 목적 등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재무와 관련된 부분들은 CFO가 진행을 한다.
긴 시간 진행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정리하면 다른 하나가 보이기 마련이다. 누군가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를 비워야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투자유치는 지금이 때가 아닌 것 같아.' 아침부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올해는 투자유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주변 잠재적 투자자에게서 요청이 와도 모두 CFO에게 전달하고 난 IR자료를 만드는 일도, 투자 유치 전략 등도 직접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자금이 부족할 때도 예상해야 하고, 또 갑자기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수도 있고, 더 큰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CEO인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투자유치 활동 아닌가?'
잠을 잘 수가 없다. 올해 투자 유치활동을 더 이상 하지 말자고 얘기한 게 잘한 건지 아닌지 도무지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결정을 해서 CFO에게 안 하기로 얘기를 한 꼴이 된 것이다.
새우잠을 잤고 심지어 어제 그렇게 혼자서 고민을 했는데도 오히려 기분이 좋고 아주 상괘 한 아침을 맞이했다. 오래간만에 집 앞 경의선 숲길을 새벽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이 최고였다.
결정을 했고 당분간 고민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참 간단하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건강을 위해서도.
아무튼 투자유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창업 초기나 회사의 서비스가 아직 Open 되기 전에는 투자를 받아야 하는 분명한 명분(돈이다.) 있고 '투자 유치'를 이끈 회사라는 소문이 비즈니스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래서 CEO들은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 역시 현금이 고갈되기 직전의 위기 때에는 절박함에 이성적이지 않은 태도로 투자자들에게 발표를 하고 미팅을 했었다. 당연히 될 리가 없다. 대부분의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회사는 절박한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도 그럴 것이다.
투자유치 활동기간에는 CEO는 당분간 일을 내려놓고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은데, 투자유치 활동은 나에게 재미가 없다. 적어도 올해는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다행이다.
주주들 중 가끔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미친!!
경영기획팀의 젊은 팀원들과 함께 올해 그리고 내년에 우리가 힐 일들을 함께 정리했다. 사업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 새로운 융합 서비스를 찾거나 함께 만들어가 보고, 투자와 관련한 부분도 관심을 가져서 내년부터는 함께 준비해 보자고 말했다. 내년이면 결국 경영기획팀의 MZ세대 리더들이 IR자료도 나 대신 직접 만들 것이다. 어쩌면 몇 년째 IR자료를 만든 CEO보다 더 투자유치를 잘할 수 있는 자료가 내년에는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성공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전부 공감을 하지 않는다. 10년 이상 기업을 운영한 나는 아마 투자 유치를 위해 기술과 노하우를 먼저 고민을 하고 자료를 만들 것이다. 목적이 오로지 투자 유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기획팀(혹은 투자팀)은 우리 회사 서비스의 가치와 회사의 비전. 그리고 발전 가능성 등 본질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준비한 기업의 가능성과 가치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분명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건강한 자료를 가치 있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그들이 IR 자료를 만들고 있다.)
마감을 정리하고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올해 초딩이 된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 내일도 자는 모습만 볼 수 있겠지! 사업 초기에 가족과 시간을 많이 가지기로 혼자서 다짐을 했었다. 가족과 시간을 많이 가지기로. 이게 창업의 동기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지금까지는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과연 이걸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실적도 저조한 회사의 대표가 창업 이유 중 하나 정도는 지켜내고 싶다.
더 열심히 지켜야겠다.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