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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eleine Sep 11. 2018

출산 후기, 나도 이제 엄마다

자연분만 후기

막달이 되니까 어려 모로 몸이 힘들어졌다. 잘 다니고 있던 수영장도 폭염으로 인해 더 이상 외출이 어려워졌고, (수영장 시간이 14~13시까지 인지라, 제일 더운 시간에 임산부가 외출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배는 더 커진 듯해서 몸도 무거웠다.


의사 선생님은 41주를 넘기지 말자고 해서, 유도분만 전에 자연진통이 걸리기를 바라며 매일 짐볼을 타고 매일 걸었다. 하지만 자연진통은 끝내 걸리지 않았고 뜬금없이 양수과소증이라며 빨리 유도분만을 해서 아기를 낳자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들었다. 처음엔 의심했다. 유도분만은 실패율이 높은데 굳이 경산모에게 유도분만을 권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무지한 우리는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해야만 했다.


40주 3일째 유도분만을 예약했다. 유도분만의 장점은 원하는 날짜에 마음잡고 출산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친정인 부산에서 아기를 낳는 나는 진통이 오면 서울에서 내려와야 하는 남편과의 타이밍이 항상 걱정이었다. 유도분만 날짜를 잡고 병원에 입원하니 그 걱정은 덜었다. 출산휴가를 쓰고 온 남편과 마지막 만찬으로 한정식을 먹고, 저녁 8시에 병원에 입원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출산 후기!


저녁 8:30 1차 내진. 자궁문 1cm도 안 열림

입원 후 바로 의사 내진보다 더 아프다는 간호사 내진이 있었다. 아직 굳게 닫힌 자궁문. 혹시 모를 수술에 대비해 포도당을 맞기 시작했고, 저녁 10:30에 다시 내려오라고 했다. 병실로 온 나는 남편과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며 설렘반 걱정반을 논했다. 이 와중에 철없는 남편은 이런 것도 재밌다며 좋아했다. 나와달리 남편은 설렘만 있었던 거 같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블로그로 수없이 찾아봤던 이슬이 비쳤다. 이때가 9시 30분이었다. 이슬은 생리가 끝날 때쯤 나오는 생리 같았다. 이때만 해도 기뻤다. 난 실패 확률이 높은 유도분만, 그리고 제왕절개는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슬이 비치면 곧 진통이 올 것이라고 많은 출산 선배(블로거님들)가 말했다. 나도 자연분만을 하겠구나 하고 들떴다.


저녁 10:30 2차 내진,

저녁 11:00 자궁 마사지

분만실로 가서 신이 나서 말했다. “이슬이 비췄어요!”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고 자궁 마사지를 해보자고 했다. 자궁 마사지는 굳게 닫힌 자궁문을 열게 하고 출산을 빨리 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인데.. 간호사의 손이 자궁 끝 벽을 만지는 것 같이 아프다.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나오고 빨가벗은 내 몸은 오그라들었다. “이제 2cm 열렸어요. 병실에 가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 6시에 내려오세요. 그전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면 내려오세요”라고 간호사가 내 자궁에서 손을 빼고 비닐장갑을 벗으면서 말했다. 손이 빠지자 온 몸에 힘이 풀리며 밑이 허했다. 분만실 앞에는 약간의 상기된 걱정 가득한 남편이 서 있었다. 상상초월 내진 경험담을 말하며 병실에 올라와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근데 이때부터 계속 생리통 같은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이라는 간호사의 말이 걸려 계속 참았다. 다인실을 쓰고 있던 나는 진통이 올 때마다 신음소리가 나서 병실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과 병실 복도로 나왔고 이제는 걷기 조차 힘든 고통이 1분 간격으로 밀려왔다.


새벽 2:00 분만실로가 너무 아프다고 말함

내진 후 간호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자궁은 2cm예요. 더 아파야 해요. 다시 병실로 올라가세요.”

여기서 더 아파야 한다니.. 이걸 아침 6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눈 앞이 캄캄했다.

병실로 돌아와 고스란히 고통을 느꼈다. 물 같은 게 계속 나왔다. 양수인지 이슬인지 모를.. 분만실에서는 더 기다려라고 했지만 나는 누워 있지도 앉아있지도 못할 진통에 힘겨웠다. 병실에 있는 당직 간호사에게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아파야 하나요?” 당직 간호사는 분만실로 연락했고, 다시 내려오라고 했다. 이때가 새벽 3:50. 내진 후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분만실로 들어서자 신음소리와 함께 진통이 쉼 없이 밀려왔다. 잠시 뒤 남편도 분만실로 왔고 그는 조용히 내 고통을 지켜봤다. 정말 조용히 보기만 했다. 후기로는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흠.

자궁문은 여전히 2cm지만 자궁과 자궁 경부가 얇아지는 과정이라 아플 거라고 했다. 진통이 30초 간격으로 왔고 진통이 오면 침대를 구르고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괴로워했다. 호흡이 과다해 축복이 심장박동수가 올라갔고 간호사가 남편보고 심호흡을 도와주라고 했다. 그제야 방관자 남편이 침대로 와 내 손을 잡고 심호흡을 해라고 타일렀다. 나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점점 커지는 내 목소리에 간호사가 다른 산모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참아보려 했지만 이미 고통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새벽 4시 22분 관장을 했고, 4분 참아라고 했다. 4분은 참았으나 30초 간격으로 찾아오는 진통 때문에 다 못 뺐다. 분만 후에 계속 부글거려서 힘들었다. 자궁경부는 종잇장처럼 얇아졌다고 했다. 이제는 자궁문이 얼마나 열린지는 상관없다고 한다.


새벽 6시 35분 드디어 무통 시술

무통 시술을 위해서는 새우 모양으로 몸을 최대한 웅크려야 한다. 의사가 너무 천천히 하는 거 같아서 짜증이 났다. 실제로 나는 무통이 반만 되었고 나머지 다리 한쪽은 멀쩡했다. 의사가 잘못 시술한 게 틀림없다. 7시쯤 넘어서 무통 약이 돌긴 했지만 반만 무통이 되어서 고통은 여전했다. 무통 시술 후부터는 진통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양수는 계속해서 나왔다. 제발 이제 낳으면 안 되냐고 간호사한테 사정했다.


“축복아 내 몸에서 나가..”라고 숨죽여 외쳤다.

간호사는 산모가 원하니까 한번 해보자며 출산 장비를 가지고 왔다. 내 팔에 다리를 걸고 허리를 공처럼 말아서 힘을 주라고 했다. 그 자세도 힘든데 그 와중에 온 힘을 다해 힘을 주라니. 나참 어이가 없었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 힘을 줬다. “이렇게 해서는 못 낳아요. 더 힘주세요. 더더더” 간호사는 1시간가량 힘주기 연습을 더 하라며 나갔다. 나는 얼른 낳고 싶어 힘주기 연습을 이어갔다. 고통은 여전했고 주기는 더 짧아졌다.


오전 8:40 의사가 출근했다. 간호사는 힘이 약해 흡입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비보험 회음부 열상 주사 시술을 했고 주사 시술 후에는 질 입구를 마구 문질렀다. 그게 더 아팠다. “거길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고통에 울부짖으며 물었다. 이래야 흡수가 잘 된다며 벅벅 문질렀다. 진통이 올 때 힘을 줘야 한다. 의사가 준비하는 동안 진통이 왔고 난 지금이라고 외쳤다. 나는 힘을 주고 간호사는 내 배를 누르고 퍽 소리와 함께 출산을 했다. 뭉클하고 뜨거운 것이 내 가슴에 얹혔다. 오전 8시 55분 축복이 탄생.. 밖에 있던 남편이 눈물범벅이 된 채 들어왔다. 장작 9시간 진통 끝에 자연분만 성공. 임산부 졸업. 수유부 입학. 모유수유 전쟁이 기다리고 있을지 이때는 몰랐지. 어쨌든 나도 엄마다 !


남편 손에 안긴 축복이 탄생 직후!
요즘은 찡얼이로 활동중인 내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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