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영문예창작제/우수상
홍유릉에 스며들다.
남양주에 이사 온 지도 어느새 2년이 되었다. 나는 남양주 호평동에 위치한 아파트를 계약하기 위해 생전 처음으로 남양주 땅을 밟았다.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처음 와본 동네에서 덜컥 부동산을 계약했다. 그렇게 나는 예비 남양주 시민이 되었다. 사방에 산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의 호평, 평내동은 마치 엄마의 품처럼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아이에게 따뜻한 동네,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는 산책길의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아파트 완공이 되기까지 1년 동안, 우리 가족은 매주 서울에서 남양주까지 오갔다. 이사를 하기 전이었지만 이미 남양주는 우리 동네였다. 아파트 공사 현장을 한없이 보고 가기도 했고,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했으며, 쉼 없이 걷기도 했다. 남양주 주민처럼 자연스럽게 동네 산책 하기를 즐겼다. 가장 많이 찾은 곳은 홍유릉이다.
홍유릉은 아이와 걷기 좋은 산책지였다. 홍유릉은 사실 단순한 산책 코스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때를 간직한 곳이다. 홍릉과 유릉이 있으며, 그리고 덕혜옹주묘가 있다. 홍릉은 대한제국 1대 고종과 명성황후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 순종과 순명황후, 순정황후의 능이다. 이에 우리는 홍유릉이라고 부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능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세계문화유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지 모른다. 서울과 남양주를 오가며 지내는 1년 동안 우리는 홍유릉을 자주 찾았다. 그사이 뒤뚱뒤뚱 아슬하게 걷던 아이는 이제 안정적인 발걸음으로 홍릉과 유릉을 뛰어다니게 되었다. 아이가 조선 왕릉의 의미를 알까? 홍유릉은 그런 건 상관 없다는 듯, 드넓은 잔디밭을 내었다. 마음 편히 내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홍유릉과 하늘에 맞닿을 듯 뻗은 나무들이 내 아이를 보호해주는 듯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드디어 경기도 남양주 시민이 되었다. 남양주 시민이 되고 난 이후 다시금 홍유릉을 찾았다. 처음으로 남양주 시민 50%할인을 받는데 내심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물론 할인받지 않아도 1,000원의 아주 저렴한 입장료이다. 그래도 1년 동안 기다리던 내 집이 생긴 여기, 남양주 시민이 되고 홍유릉을 방문하니 기분이 남달랐다. 이날을 기념하듯 50% 할인된 입장료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홍유릉. 아이와 함께 왕복 100km에 달하는 거리를 매주 왔던 산책로 홍유릉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내 집 앞 산책로가 되었다.
아이와 우리 가족에게 수려한 자연풍경을 두고 산책하는 이 시간이 진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이사 온 이후에도 변함없이 별일이 없으면 매주 홍유릉으로 산책하러 간다.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다. 홍유릉 앞 이석영 광장에서 공연을 보기도 하며 여유로운 주말의 한때를 보낸다. 홍유릉은 아이에게는 언제나 변함없는 산책로가 되었고, 나와 남편은 매주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역사의 조각들이 마치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역사의 한때를 알게 해주었다. 그저 산책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홍유릉 곳곳에 있는 나무들을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낸 홍유릉의 나무들. 홍유릉은 걸으면 걸을수록 익숙함과 낯섦을 보여준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듯 익숙함을 주다가, 또 어떤 날에는 꽃을 활짝 피우는 봄을 보여주고 잊고 있었던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우리 가족의 첫 보금자리, 남양주
그리고 언제나 길을 내어주는 홍유릉의 산책로, 아이를 기르기에 참 좋은 동네이다. 언젠가 아이가 내 품을 떠나 독립을 하더라도 우리가 쉼을 위해 찾는 홍유릉의 산책로처럼 나는 이 자리에서 내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노후에 남편과 함께 홍유릉을 걸으며 여러 날을 회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