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이형 Oct 07. 2015

책임과 분노

책임이 분노로 이어지는 이유

"너 때문에 정말 창피해. 너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부모가 말썽을 피운 자식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자녀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런 것이다. 자기 반 아이가 타교사에게 혼나고 있으면 낯부끄럽고 화가 나서 데리고 와서 더 크게 혼내곤 한다. 담임의 책임의식 때문이다.


그런데 책임감과 분노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그 아이 때문에 화가 난다는 건 무슨 이유일까? 혹시 궁금하게 생각한 적은 없는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이 화가 난 상황에서 소리가 높아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혹시 자기를 비난하고 있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사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이가 다른 아이를 때려서 그 아이의 부모에게 사과할 때 아이를 잘 교육해야겠다는 책임감과 더불어 상대편 부모가 얼마나 나를 비웃고 비난할지 두렵기 때문에, 그 비난을 견딜 자신이 없어 부모는 분노한다. 반 아이가 잘못을 해서 타 교사에게 혼나는 상황도 역시 마찬가지다. 가까운 사람이 열받아서 소리가 높아질 때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과 왜 그런 책임을 충분히 다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까운 사이에서 책임과 비난은 자주 섞인다. 책임의식이 강하면 비난 강도도 더 강해질 수 있다.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지면 질수록 비난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그걸 모면하거나 공격해서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순식간에 분노라는 감정을 꺼내들고 표출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내 강한 책임과 같은 강도로 해야 할 걸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상대방에게 씌워버리는 것이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관계 속에서 느끼는 책임과 비난, 그리고 분노는 매우 강한 패턴으로 묶여 있어 연결고리를 알아차리는 것이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러나 패턴의 고리를 끊어내야 우리는 어른으로 제대로 교육할 수 있고 대화를 하면서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토마스 고든의 충고처럼 내 문제인지 상대방의 문제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내 문제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뜻한다. 아이가 싸워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현장에 내가 없었다면 내 문제는 일단 아니다. 그건 아이의 문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현장에 있었는데 아이가 싸우는 걸 막지 못했다면 자신의 문제로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밝히는 게 필요하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데 신경쓰느라 못 봤는지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싸운 건 아이의 문제이다. 아이의 생각과 감정까지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을 덜어내면 비난도 약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분노도 작아진다. 우리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조절이 힘들 정도로 강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소위 욱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덜어내면 욱의 강도도 약해질 수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아이와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 있다. 아이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 순간에 아이의 마음에 떠오른 감정과 생각들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교육이다. 아이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게 힘을 불어넣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책임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직업의 형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