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이형 Oct 07. 2015

직업의 형식

노하우의 악영향

흔히 말하는 노하우는 직업의 세계에서 적응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얼마나 노하우를 빨리 터득하느냐가 냉혹한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판가름한다. 그런데 자주 노하우는 변칙적인 것들이 많다. 이렇게 하는 게 훨씬 일을 쉽고 빠르게 한다는 말은 직장에서 윤리에서 벗어나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자기정당화의 근거가 된다.


이것이 결국 관습이 되고 인습이 되어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남들이 하는 데로 따라해야 하는 선후배 간 전수물이 되고 만다. 이제 그것을 취하느냐 거부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굳어진 상황에서 누군가 거부를 통해 자신을 의롭다 규정하는 건 나머지 모두를 악인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인습이 악습인가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노하우는 직업 형식의 하나이지만 가장 강력한 형식이다. 왜냐하면 그 일을 어떻게 수행하느냐가 곧 그 일의 수행능력을 결정짓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따라야 할 규칙으로 작동한다면 마음은 몸과 분리된다. 즉 직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억누르고 감추는 일을 해야 한다. 직업의 형식이 강고하여 여기에 묶인 정도가 심할수록 분리는 심화된다. 결국 일에 대해 발휘해야 할 성실성을 해치고 오로지 황폐화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만 강화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여유는 없어지고 시키는 일에 매달리고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일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누리고자 한다. 당연히 조직의 관리자들은 이런 직원들을 부정적으로 보며 더 다그치고 평가해서 일 열심히 하는 직원을 골라내고자 한다. 부정적인 시각이 강화된 환경에서 사람들은 방어기제를 높이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한 경쟁은 심화되고 살기에 버거운 환경에서 노하우라는 직업 형식은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직업 형식이 사람들을 분리로 내몰면 사람들은 일보다는 여유를 찾으려고 하고 관리자의 부정적 인식은 강화되어 환경을 더욱 강압적으로 만든다. 이는 다시 직업의 형식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마음을 담아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직업의 형식이 꼼꼼한 메뉴얼과 체크리스트식 평가기준, 그리고 구전되는 노하우로 채우는 것은 불신에서 비롯된 강요와 억압 그리고 분리만 낳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율을 보장받을 때 일에 열정을 담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몰두한다. 결국 일은 생산성 문제인데 양이 아니라 질에 초점을 둔다면 직업의 형식을 각자가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성교육 비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