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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Dec 27. 2015

결과론

삶은 과정임을 잊게 하는 사고방식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시간이 있다. 성적표 발송이다. 부모는 한 학기 동안 공부하라 하는데도 하지 않는 아이를 벼르고 있다. 성적이 잘 나오면 봐주지만 잘 나오지 않으면 평소에 말 안 듣는 것까지 한꺼번에 얹어서 혼내는 기회가 온 것이다. 기껏해야 100이하로 표시되는 두 개 정도의 숫자가 그 동안 공부를 모두 나타낸다는 건 분명히 어불성설이지만 그것이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결과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는 건 신화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말할 때 잘 듣지 꼭 안 듣고 후회한다니까~" 옆에서 충고랍시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 이유는 마치 자신이 언제나 옳은 것인냥 이야기하는 말투에도 있지만 과정 속에 나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결과론의 함정에 빠진다. 특히 뭔가 못마땅할 때 더욱 그렇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비판은 더욱 날이 선다. 마치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에만 초점을 둘 때 우리는 비난과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누가 잘못했으며 누구 책임인지 따지기 좋아하는 관료제에 익숙해져 그것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인지 구분을 못하게 된다.


이런 행동은 '함께'라는 의식을 만들지 못한다. 토의할 때 보면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듣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하되 상관없다 생각할 때는 발을 빼는 것이다. 토의할 때 비록 내 흥미를 당기지는 않고 좀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경청하면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다양성에 기여해야 참여의 가치가 살아난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것에는 모두의 의식이 들어있다. 그러면 결과만 갖고 재판하듯 따지는 식에서 벗어나 모두가 좋은 결과를 위해 열심을 다하는 참여중심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공동체주의이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지 않을 때나 어떤 제안이나 충고를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결과론으로 빠져들지 말고 상호작용을 유지하면서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내 생각이나 상대방의 생각을 불변하는 것처럼 여겨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행위를 그만두는 걸 뜻한다. 그러니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서 발을 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기분이 나쁘다고 자신을 그 관계와 상황에서 분리시키는 건 비난할 공격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를 살펴보고 상대방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와 상대방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 서로가 객관적으로 남지 않고 주관적인 상태에서 변화할 거라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상호작용이 뜻하는 바이다. 이런 믿음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주관적 상대성을 가지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론적 사고로 옮겨갈 수 있다. 이렇게 과정 속에 서로에게 주고 받는 영향에 집중하는 것이 결과론에 대비되는 과정론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지, 어떻게 성장하였는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결과론이 좋지 않게 가면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갖는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게 뻔하다는 식의 태도이다. 단적인 예는 이런 것이다. 공부를 안하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면 이런 답이 온다.

"어차피 해봤자 안될 건데 왜 또 해야 하나요?"

난 이런 말을 하는 아이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어차피 배가 고파 또 먹을 건데 왜 또 먹을려고 하지?"

"어차피 잠을 또 잘텐데 왜 일어나는 거니?"


이런 사고는 허무주의와 연결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냉소적인 태도를 갖는다. 이런 인식에는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어 자신감이 상실된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 갖게 된 열등감과 패배감이 뒤섞여 있는 열패감은 항상 좋지 않은 결과를 예상하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는 자신을 그린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원인이 있는데 그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 되는 사고이다.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는데 남이 하니까 망치는 거라고 비난하는 마음이다. 남이 하는 중에 계속 참견하고 방해하면서 안되면 자신이 하는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며 비난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할 때도 실패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지 않고 항상 남 탓하기에 바쁘다.


결국 결과에 집중하면 비난할 거리가 생기고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함이 고개를 든다. 산다는 건 어떤 일의 결과가 아니다. 언제나 과정일 뿐이다. 단기적으로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가 결과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 뿐이다. 큰 틀에서는 결과라고 보는 것도 과정의 한 축이다. 그것이 삶의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으로 인해 삶은 과정임을 잊는다면 우리는 쉽게 열패감에 빠지거나 비난의 덫에 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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