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하는 것의 위험성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바로 시작하는 것이 받아쓰기이다. 아마 한글이라는 문자를 배우면서 정서법에 맞게 써야 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맞춤법이 틀리면 왠지 무식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떤 단어는 소리는 같아도 글자가 다르면 다른 걸 뜻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각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쓰지 않고 단어가 갖는 글자 그대로 알아두는 건 필요하다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한국 교육의 비판점 중에 하나가 정답주의인데, 받아쓰기는 바로 그걸 정규교육 시작부터 주입하고 있다. 단어의 글자, 즉 맞춤법을 받아쓰기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익힐 수 있는 것일까? 소리나는 대로 적는 건 소통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그런데 받아쓰기에서 틀리는 게 많으면 혼나고 반복연습을 해서라도 반드시 익혀야 하는 그 글자는 누가 정한 것일까? 급수체계도 있던데 그건 누가 정한 것일까? 게다가 문장이 아니고 그것도 중간에 잘라서 문맥이 제거된 몇 가지 글자의 조합은 어떤 의미로 아이에게 다가갈까? 한 글자 한 글자에 아이는 의미를 담을 수 있는가?
기계적으로 배우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일단 기계라는 단어는 무의미를 드러낸다. 입력된 명령어를 처리하는 것 외에 스스로 아무런 의미를 만들 수 없다. 만일 명령어 수행을 거부하거나 다르게 한다면 그건 고장난 것이지 스스로 의식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기계적 학습은 주어진 내용과 의도 및 의미까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뜻한다. 이는 자신이 살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의 틀 안에서 재해석 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내용에 덧붙여진 의미는 원저자의 의미이며 학습자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같은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주관이라 딱지 붙이고 정답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받아쓰기는 정답주의와 기계적 학습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질 나쁜 교육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의 생각은 이렇다. 지식이 어느 정도 쌓여야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린 시절은 지식을 배우고 쌓는 시기이지 자신의 생각을 만들 시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지식을 많이 알고 있으면 창의성은 저절로 생기는가? 지식을 정확하게 배우고 그것을 토해내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고 나면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주입식 교육이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만들어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땅에서 갑자기 생각이라는 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지식과 생각을 순차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가 몇 가지 있다. 첫번째, 자기 생각과 지식은 대립적이지 않다. 자기 생각은 지식을 배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생각을 지식에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받아쓰기주의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갖지 못한 상태로 오랫동안 교육을 받아왔으니까 그걸 비판하면 마치 자신의 삶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것이 잘못이라고? 그럼 내가 잘못되었다는 소리인가? 이렇게 받아들이면 절대로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없다. 두번째, 자기 생각은 지식과 상호작용하면서 자라난다. 지식은 사물에 대한 앎인데, 어떤 앎이라도 없는 상태에서는 생각을 갖기 어렵다. 앎이 없는데 상상하는 건 힘들고 상상의 이미지에 세부사항을 채워넣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 가르치고 그걸 외워서 뱉어내는 거라면 그걸 앎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각에 양분을 공급해주는, 아니 생각을 지지하고 상호작용으로 생각을 키우는 지식으로 볼 수 있는가? 오히려 그 지식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이 필요하다. 이 사고가 바로 자기 생각이 된다.
받아쓰기는 그런 사고를 전혀 키워주지 않는다. 오히려 남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의 비결이라고 가르친다. 난 이런 문화를 가리켜 받아쓰기주의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dictationism이다. 어원상 dic은 말을 뜻한다. 여기서 dictionary(사전)이 나왔다. 하지만 독재자를 뜻하는 dictator도 있다. 말로 지배하고 통치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의 수하들은 그의 말이 법이다. 그의 말을 자기 식대로 해석할 수 없다. 철저 하나 틀려도 혼란이 발생하기에 받아쓰기주의가 작동한다.
최근 서울대학생 고득점자의 비결이 교수의 말을 다 적고 외워 시험지에 옮겨적는 받아쓰기주의라고 한 방송에서 지적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받아쓰기주의를 지적한 것이다. 그게 성공과 직결된다고 믿는 신화가 사회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고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듣고 자란다. "너 왜 시키는 대로 안했어?", "누가 이런 거 하라고 했어?", "하라는 대로 해!" 자기 의미를 제거하고 받아쓰기주의를 강요받으며 사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가 어떻게 자기 삶을 만들어갈 능력을 키우겠는가?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는 바로 받아쓰기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