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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형 May 08. 2016

맥락돌려주기

아이가 자기 맥락을 찾게 하자

아이를 혼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어른은 매우 일방적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아이의 감정 상태를 보지 않으며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전통적인 혼냄의 정석이다.


어른이 정한 규칙을 어겼을 때는 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른의 맘에 들지 않을 때, 심지어 어른의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아이는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 힘이 세다는 이유로 아이는 꼼짝없이 희생제물이 되고 만다. 이런 게 반복이 될 경우에 아이는 자기 분풀이로 약한 상대가 필요하다는 걸 내면화하고 자신의 힘이 강해지면서 힘의 지배논리를 철저히 따르는 비겁한 자가 된다. 즉, 강자 앞엔 약하고 약자 앞엔 강한 태도를 보인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도를 갖고 행동한다. 비록 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해도 마찬가지다. 비폭력대화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욕구를 중심으로 행동한다고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면 좋겠지만 좌절될 경우 감정은 상하고 그걸 누구한테 뒤집어씌워 희생양으로 삼는 못된 습성을 갖고 있다. 이런 습성을 알아차리게 하려면 욕구를 인지하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욕구는 잘못이 없다. 다시 말해 중립적이다. 어떤 욕구를 가졌다고 나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취했는가에 대해선 잘잘못을 따져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거짓말을 할 경우 거짓말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수단이다. 이때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면 아이의 욕구를 살펴봐야 한다. 무턱대고 거짓말을 하면 무조건 혼나야 한다는 당위를 선택하지 말고, 아이가 왜 거짓말을 수단으로 선택했는지 그 욕구를 살펴보는 게 아이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다. 거짓말은 두려움의 표현이므로 공포로 다스리는 건 두려움을 더 키울 뿐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없다. 다만 거짓말이라는 수단은 믿음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그걸 가르쳐줘야 한다. 거짓말이라는 표면적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수단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도록 하면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욕구부터 출발하는 건 아이의 행동에 대해 어른의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해서 아이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 말을 맥락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해보자. 위에서 말한 전통적인 혼냄은 어른의 맥락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아이의 맥락은 무시하는 것이다. 맥락은 삶의 이야기인데 어른이 자기 판단으로 아이를 재는 건 어른의 삶으로 아이를 끌어당기는 것이며 아이가 자신의 삶을 꾸려갈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어른의 맥락과 아이의 맥락은 다르다. 두 개의 다른 맥락은 서로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 자기 삶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고유성을 지킬 수 있으며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이는 어른의 삶을 통해 그리고 어른은 아이의 삶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이가 잘 이야기를 못하면 예, 아니오가 나올 수 있는 질문을 하면 좋다. 이때 어른은 아이를 존중하고 믿는 자세를 잃어버리면 안된다. 잘못이 드러나는 순간 엄청나게 혼날 거라는 분위기를 감지하면 두려움으로 인한 방어벽이 생겨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어른은 더욱 아이를 불신하고 부정적 감정이 차올라 아이를 더 세게 혼내게 된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아이는 이미 그걸 알고 있다. 다만 그게 뭔지 희미하게 알고 있거나 그걸로 어떤 피해를 줬는지 잘 모른다. 이때 대화가 필요하다. 자신의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아이는 어른의 판단을 훨씬 잘 수용할 수 있다. 어른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는 기회가 된다. 그러니 아이로부터 맥락을 빼앗아 자기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태도로 아이를 몰아가지 말자. 아이는 자기 맥락을 찾고 그걸 이야기로 풀어 설명하는 기회를 통해 어른이 보여주는 수용적 태도와 지혜를 배우게 되고 뛰어난 자기 성찰력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어른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질문을 통해 존중의 자세와 묻고 탐구하는 태도, 그리고 편향되지 않고 다른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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