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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 May 22. 2024

[회상] 한그루의 나무가 만들어낸 것

지옥에서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괴물이 되기 전 이야기


광대역할을 하며 교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밝게 웃으며, 자유를 만끽했던 나.

그 명랑함은 웃고 떠드는 친구들의 눈동자에만 비췄던 것은 아니다.

힘을 쥐고 있었던 권력자 일진의 눈에도 띄었다.


순진했던 나는 일진에게서 화잘실로 불려 갔다.

폐쇄된 공간에는 일진, 나 그리고 친한 친구가 있었다.

웃는 모습이 아니꼽다면 까이을 당하는 그 상황에서도 나는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왜 너의 말을 들어야 하나며, 뭐가 문제냐며 밝은 모습에 당당해했다.


권력자 옆에 있던 친구는 침묵을 지키고 가만히 지켜봤다.

일진은 한대 툭 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친구가 잠잠하면서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내게 건넨 말은

"너, 대단하다."었다. 그 은 답을 남기고 그는 열려있는 문을 찾아 걸어 나갔다.


당시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내가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했는지 몰랐고, 그가 건넨 말에 이질감을 느꼈을 뿐이다.


20년 뒤 내가 알게 된 것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오늘도 같은 공간에 머물며 업무를 본다.

내 옆에 계신 약사님은 80세가 넘는 연세의 고령이다. 손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늦은 나이로 약국으로 들어오셨지만, 청각이 약회 됨에 따라 손님과 의사소통이 힘들다. 약사님이 놓치는 상황을 내가 캐치해서 그의 귀가 되어야 했다. 활동력이 강하면서 귀가 밝은 다른 분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약사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며 말을 더듬는 그를 안 좋게 바라봤다.


오늘은 약사님의 생신이었다. 평소 그를 멀리했었지만, 그의 존재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생일을 축하하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처음으로 밝게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대화의 시작은 "오늘 생신인데 댁에서 뭐 하시나요?"였다. 용기를 내서 시작한 대화는 "생신 평안히 보내십시오. 평소 힘드셨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로 끝이 났다.


평소 굳어있는 표정에서 어두운 모습을 보였던 고령의 약사님은 밝은 미소를 보이셨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감정은 전염된다"라는 것과 "웃을 권리는 모두에게 있다"라는 진리와 같은 것이었다.



세상은 웃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먼저 웃으며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며,

밝게 웃으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태양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교실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 역할을 하는 나를 인정해 줬던 것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내가 마련해 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진이 혼자서 교실을 비추는 나를 내려앉게 하려고 했던 것은, 그 힘이 왕관을 쓴 그에게 두려운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두운 사회에서 리더는 홀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카리스마 있는 미소는 세상에 밝은 등불로 가득 차게 하며,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불빛으로 작용한다.


홀로 웃는 사람을 보면, 웃지 못하게 그를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같이 웃는 것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그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 약함을 인정하며 교실에서 홀로 웃었던 나의 가치를 알기까지 20년이 걸렸고, 이제는 그 미소를 되찾고자 한다.


동화 - 나무는 숲을 만들어냈다.


벌판 위의 나무는 숲을 만들어냈고, 소년은 그를 사랑했다. 나무를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그 중심에는 한그루 나무가 있다는 것을 나무는 알지 못하였다. 계절이 지나서 겨울이 되었고 헐벗은 모습의 나무는 자신을 바라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자취를 감췄다. 나무 주변에 사람들이 모였던 것은: "밝게 웃는 그들에게 있다"라고 생각했다. 겨울은 길었다.


20년이 지났고, 자취를 감췄던 나무는 헐벗은 모습으로 숲 속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자리를 꿋꿋이 버티며 서있던 나무에 소년이 다가왔다. 미소를 보이며 소년은 속삭였다.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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