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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 Mar 31. 2024

심판론에 갈등하는 청년들에게

『1984』와 우화를 통해 얻는 지혜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이야기


"조금은 뻔뻔하게 살아도 된단다." 어릴 적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아팠을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소리다. 당시 나는 '뻔뻔함'이라는 뜻을 몰랐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봐도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다. '합리화하기 싫어하고 공정한 경쟁을 추구하는 나'이기에 어릴 적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라는 게 뭔지 공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잘못된 일을 하고도 아무런 사과 없이 평소와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제야 '뻔뻔하고 염치없는' 사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질서와 배려 그리고 성찰을 중시하는 나에게, 그러한 '뻔뻔함'이란 가까이하기 싫은 삶의 태도였다.


당시까지는 뻔뻔함을 싫어하는 게, 유독 나 자신뿐인 줄 알았다.



나도 결국은 이 시대의 청년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2024.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나는 '사회문제와 국내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정부가 만든 의사-정부 간 갈등, 여당-야당 간 갈등이 결국은 '심판론' 속에서 청년들의 적극적인 선택을 힘들게 하는 프레임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사건, 사고들에 대해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많은 신뢰를 잃었기에 여당을 심판하고 싶은 반면, 야당을 선택하기에는 대표 둘에게는 사법리스크가 있다는 것이 공정한 경쟁을 중요시하는 청년들에게 힘든 선택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같은 청년으로서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어른들은 '왜 요즘 것들은 투표를 안 해?'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우리 청년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로서는 우리 청년을 설득할 수 없다. 말하는 언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청년이 청년을 설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내겐 총선이 지나기 전에 선택을 망설이는 우리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솔로몬 왕과 두 여인 이야기


여인 둘이 왕에게 나와 섰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말을 꺼냈다.

"임금님, 이 여자와 저는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을 때에 이 여자도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해산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이 여자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집에는 우리 둘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 여자는 자기의 아들을 깔아뭉개어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여자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 계집종이 잠자는 사이에 제 곁에 있던 제 아들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제 아들을 가져다 자기 품에 두고 죽은 자기 아들을 제 품에 놓고 간 것입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 젖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날이 밝아서야 그 아이가 제 몸에서 난 아이가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느냐? 산 아이는 내 아이이고 죽은 아이가 네 아이야." 하고 우겼다. 첫 번째 여자도 "천만에! 죽은 아이가 네 아이이고 산 아이는 내 아이야." 하고 우겼다. 그렇게 그들은 왕 앞에서 말싸움을 벌였다.


그때 왕이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은 '산 이 아이가 내 아들이고 네 아들은 죽었다.' 하고 또 한 사람은 '아니다. 네 아들은 죽었고 내 아들이 산 아이다.' 하는구나."

그러면서 왕은 칼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신하들이 왕 앞으로 칼을 내오자

왕은 명령을 내렸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그러자 산 아이의 어머니 제 자식을 생각하여 가슴이 메어지는 듯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시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마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어차피 내 아이도 네 아이도 아니니 나누어갖자." 하였다.


그러자 왕의 분부가 떨어졌다. "산 아이를 죽이지 말고 처음 여자에게 내주어라. 그가 참 어머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이 판결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왕에게 하느님의 슬기가 있어 정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고는 모두들 왕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솔로몬 왕과 두 여인

솔로몬이 만들어낸 위기의 상황 속에서 아이의 어머니는 제 자식을 생각하며 가슴이 메어지는 선택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반면, 다른 여자는 내 알바 아니니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그 위기의 상황에 두 여인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지켜본  처음 여자에게 아이를 내주었다.


친구들아, 잠시지만 지금 총선이라는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의 입장에 있는 거야. 만약 솔로몬이 저 상황에서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솔로몬 왕의 두 여인 이야기'가 일화로 남을 수 있었을까?


혹시나 선택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망설이는 것 잘 알아. 하지만, 이대로 우리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청년이 아닌 다른 유권자들에게 끌려가는 꼴이 될 거야.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청년이 지켜나가야 해. 우리 청년들이 가장 오래 있게 될 텐데, 이 나라의 운명을 다른 이들의 손에 맡길 순 없지 않나?


"청년들의 실패를 감싸주는 그런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어. 국가는 청년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여론 또한 청년을 보호해주려고 하지 않아." 나도 우리나라 사회문제를 보면서 그렇게 느껴.


하지만 '각자도생'은 정부의 사건과 사고 그리고 그 여론이 낳은 프레임에 불과해.


사회가 우리를 각자도생으로 몰아간다 한들, 우리 청년들마저 서로에게 거리를 두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기 바빠진다면, 훗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할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이 연쇄를 끊어내야 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우리들은 부모님의 아픔 속에서 각자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어. 이대로 아무런 선택 없이 세상에 짓눌리게 된다면, 그건 '누군가의 아픔 속에서 자란' 우리들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야.


아픔을 상기시키고 계속해서 '상처에 맞서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 '열어야만 하는 문'이야.


'상처에 맞서는 것'은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 '열어야만 하는 문'

양의 탈을 쓴 늑대


옛날에, 한 늑대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보고 맛있는 식사를 생각했지만, 목자와 그의 개들이 항상 주위를 지키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늑대는 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죽은 양의 가죽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두르기로 했다. 양의 탈을 쓴 채로, 늑대는 목자와 개들이 속아 넘어갈 것을 기대하며 양 떼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처음에는 계획이 효과가 있었다. 목자는 늑대가 양인 줄 알고 그를 무시했고, 늑대는 양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숨어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목자는 한 양을 골라 집으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무심코 양으로 위장한 늑대를 잡았고, 집으로 데려가는 도중에 그의 참모습을 알아챘다.


목자는 곧바로 늑대를 붙잡아, 더 이상의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했다. 늑대는 그의 탐욕과 기만으로 인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집 개와 늑대 (The House Dog and the Wolf)


늘 허기가 져 비쩍 마른 늑대가 있었다. 배고픈 늑대는 늘 그렇듯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보름달이 뜬 훤한 밤에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개를 만나게 되었다.


살이 찐 개가 마냥 부러운 늑대가 물었다.

“이보시오, 도대체 뭘 하시는 분이시길래 그리도 신수가 훤하시오? 나는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이오, 방도를 알려주시구려.”


늑대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 개가 대답했다.

“만일, 나처럼 되고 싶다면 도둑으로부터 농부의 집을 지켜주면 됩니다. 그리하면 맛있는 식사에, 따뜻한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생각 있으면 나를 따라 오시오.”


늑대는 개의 말에 솔깃했다. 그리고 개를 따라 농부의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같이 걸어가던 늑대는 달빛에 개의 목덜미에 난 상처자국을 발견한다. 궁금해진 늑대가 상처에 대해 물었다.


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쇠로 만든 목걸이 때문에 난 상처야. 밤에는 날 놓아주는데, 낮에는 목에 쇠사슬을 묶고 있어야 돼,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되거든. 곧 익숙해져”


늑대는 발걸음을 멈추고 개에게 이렇게 말했다.

“배불리 먹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느니 굶는 게 나아”


그리고 늑대는 재빨리 숲으로 돌아갔다.


출처: https://oldconan.tistory.com/34291


양의 탈을 쓴 늑대

[전체 줄거리 스포]『1984』: 조지 오웰이 쓴 디스토피아 소설

소설의 배경은 1984년,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국가인 오세아니아. 이곳은 빅 브라더라는 지도자가 지배하며, 당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부에서 일하며, 과거의 문서를 조작하여 당의 정책과 역사를 항상 옳게 보이도록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체제에 점점 회의적이 되고, 당의 통제와 빅 브라더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길 이른다.

윈스턴은 줄리아라는 여성과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시작하고 둘은 당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짧은 자유를 누린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곧 발각되고, 잔혹한 고문과 심문을 받게 된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윈스턴이 방사능에 대한 공포로 인해 줄리아를 배신하고, 결국 빅 브라더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요받는 장면. 윈스턴은 자신의 독립적인 사고와 반항적 정신을 잃어버리고, 체제에 완전히 굴복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윈스턴은 빅 브라더를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생각과 감정이 당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 의지를 상실한 채, 체제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1984』: 조지 오웰(저)

『1984』는 개인의 자유와 사상이 극단적인 권력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며, 독재 체제 하에서 인간 본성과 정신이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감시, 통제, 자유, 진실에 대한 사고를 유도한다.


현재 총선의 판은 '심판론'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으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도 협상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바로 '심판론'이라는 판을 깔기 위해서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의 의료난으로 죽는 것에 대해서 정부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환자들의 희생을 더는 못 지켜보겠다면 2000명 증원을 이렇게 오래 끌지는 않았을 거고, 총선을 앞두고 필수의료 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3년이나 남았는데 이 시점에 의료 정책을 꺼낸 것에는 총선에 대한 분명한 의도가 있다.


이 글에서만큼은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습니다.

여당, 야당, 정부 모두를 까겠습니다.


https://v.daum.net/v/20240326103713189

https://v.daum.net/v/20240318133302304

https://v.daum.net/v/20240303172108781

https://v.daum.net/v/20240331153128361

https://v.daum.net/v/20240331155357969


https://v.daum.net/v/20240328200105285

https://v.daum.net/v/20240330040803701

https://v.daum.net/v/20240325151503952

윤석열 정부의 사건 및 문제를 정리한 글 https://brunch.co.kr/@duckfi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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