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는 날 굿바이 (BGM. 아이유 '라일락')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하다못해 이웃사촌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는 몇 달 동안 나와 ‘애증의’ 회사 동료였을 뿐이다. 그런 그가 며칠 전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으니, 지방 발령도 아니고 무려 편도 4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이직을 해서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세상에 미운정이란 게 존재한다면, 내가 지난 몇 달간 그에게 느꼈던 감정일 테지. 그런 감정은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느껴보았다. 활자로만 접해봐서 실체감이 없었던 그 단어, 미운정. 그가 떠난다고 하자, 다들 나에게 (특이하고 보통 사람이 아닌 그가 떠나서) “시원섭섭하겠다”고 했다.
“그만 두게 됐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이직하신다고요?”하고 되물었을 때는 진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금방 떠날 거였으면서, 계약직인 나보다도 먼저 떠날 거였으면서 너는 나에게 그토록 매사 우악스러웠구나. 아니 금방 떠날 거여서 같은 팀인데도 굳이 마지막까지 밥 한 끼 먹으려 하지 않았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매번 그럴 수 없이 퉁명스런 표정으로 내 질문을 그리도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세상 무시당하면서도 묻고 또 물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내가 미웠고, 그가 미웠었다. 정말이지 세상만사가 다 미웠으며 그 때문에 갓 입사한 회사에 가는 거 자체가 고역인 날도 많았다.
그에게 되도록이면 덜 상처 받을 방법으로 질문을 하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도 해 보았지만, 결과는 고작 그날그날 그의 컨디션에 따라 오락가락했을 뿐이었다. “야! 나 너랑 동갑이고, 내 사회생활 경력도 만만치 않거든? 너만 그렇게 잘난 거 아니거든?” 목청껏 외치고 싶은 날이 많았지만,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두 눈을 꿈벅대며 “아아, 네네”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꾸준히 그 무시를 참아가며 끝까지 화를 내지 않는 데 성공했다. 잘했어, 나 참 잘했어, 나는 그걸 알아, 그럼 됐지, 뭐.
처음엔 참 시원하고 달콤했더랬다. 몸도 마음도 날아갈 것 같았다. 그가 그만 두다니, 내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일을 독식하고 내 업무를 축소시키며 일을 나눠주지 않던 그 성질 나쁘고 고약한 선임이 사라지다니. 자꾸 웃음이 나서, 사무실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일하는 상황에 “땡큐 갓”을 외칠 지경이어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썼다.
그런데 세상 일 참 알 수 없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은 그와의 이별을 섭섭해 하고 있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별로 웃기지 않는데도 종종 ‘흐흐’ 웃는 추임새며, 선명하고 똑 부러진 말투와 '왠 근자감이야'싶게 매사 당당한 태도, “저는 집에만 있잖아요” 같은 말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멘탈이, 나는 늘 신기했다. 아무리 싱글이라지만 이 나이에, 서울 사람이 지방으로 훌쩍 이직해버리는 그 결단이 대단해 보였고, 나는 흉내낼 수 없는 그의 배포가 부러워졌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를 미워하는 한편으로,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어 했던 거 같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다니” 카테고리를 자꾸 갱신하는 그가, 어쩔 땐 내 메신저 물음에 대꾸도 않다가 어쩔 땐 이런저런 자료를 굳이 친절히 찾아 보내주며 요상하게 일로 밀당하는 그가, 나름 신선했던 걸까? 이렇게 나를 막 대하는 데도, “나는 왜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하며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스스로가 참 이해되지 않았지만, 솔직히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끝까지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내가, 이건 뭐 스톡홀롬 증후군 비슷한 건가 싶어서 민망해 하면서도 그의 실체가, 본질이 궁금했다. 더 다가가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었다. 그 흔한 마무리 인사 “그동안 고마웠어요. 잘 지내요”와 같은 추임새는 우리 사전에(그런 게 만약 있다면) 등록되지 않았다. 끝까지 이런저런 미련이 가득한 쪽은 나였고, 끝까지 그럴 수 없이 쿨하고 산뜻한 쪽은 그였다. “갈게요” “네, 가세요”라며 고개도 채 다 돌리지 않는 그의 무심한 뒤통수를 보며 사무실을 떠나면서 나는, 역시 실감나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생각했다.
‘오늘의 이 실패를 잊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줄곧 내게 별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 이토록 친해지려는 노력을 했던 건 거의 20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꽝. 20년 전에도 실패였고, 오늘의 나도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나는, 생겨먹기를 미련한 나는 그런 노-오력을 올 하반기에도, 내년에도 반복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도 나를 이젠 진짜 모르겠다.
그래도, 해봤다. 관계의 측면에서는 완벽히 실패했지만, 한사코 막아서는 사람 앞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는 끝까지 좋아해봤고 애써 마음을 고쳐먹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쉽게 충고할지도 모른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라”고. 나도 진짜, 순도 100% 그러고 싶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 다만 맘처럼 그렇게 되질 않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