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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Feb 05. 2021

노화통과 울화통, 그리고 기간제 사원의 비애(2)

직장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소곤소곤) 저 너무 할일이 없어요.”

“요즘은 다들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나도 전에 OO씨 업무를 했을 때, 처음엔 너무 할일이 없어서 1층 OO실에서 오죽하면 혼자 풀칠하고 공작하고(웃음) 소일하고 있었다니까. 사무실에 앉아있기는 싫고 해서.”


아, 무지 위안이 됐다. 회사에서 늘 바빠 보여서 나로선 무척 부러운 옆 팀 사원에게 어렵사리 조언을 구했더니 들었던 말, “나도 그랬다”는 말. 곧 바빠지고 그땐 지금이 그리워 질 테니 지금을 즐기라는 말. 그 말들이 뼈에 사무치게 고마웠다. 우리 팀에선 티를 낼 수도 없고, 어떤 대답을 듣기도 어려워서 혼자 끙끙대고 있는 요즘의 내가 얻은, 아마도 유일한 위로였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노화통(1편 참조) - 기억력 감퇴와 이해력 부족, 툭하면 노여움 - 때문에 하루하루가 쉽지 않은데다, 일이 최우선인 나에게 일이 없다는 건 마치 형벌처럼 느껴졌다. 본래 공공기관의 특성상 연초에는 일을 아끼다가(곱게 표현해보았다) 봄이나 되어야 본격적으로 각종 사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업무는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과 맞물려 거의 올스톱인 지경이다. 


출처_ 산돌 미생 폰트 홈페이지 / 우린 언제쯤 사무실에서 살아있는 자가 될까?  


새로 올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일이 1도 없는 상황이고(비유법 아니고 팩트), 이를 호소할 만한 창구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팀 내 크고 작은 행정 업무는 내게 맡겨지지 않았는데 이는 내가 계약직 사원이기 때문일 터였다.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그래서 마치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듯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또 우리가 정신승리법으로 생각해보자면, 하기 싫은 자잘한 업무를 하지 않아도 같은 직급 정규직과 동일한 월급을 받으니 ‘땡큐 갓 잇츠 쏘 프라이데이’지 뭐. 게다가 요즘은 절반은 재택근무 중이라 그리 눈치 볼 것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조금, 아니 많이 워커홀릭이다. 어떤 이들은 이해가 잘 안 될 테지만, 나로 말하자면 회사에선 일만 죽도록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까만 하늘, 반달을 바라보면서 마음 뿌듯해하는 사람이다.  

난 늘 심사가 복잡하여 머릿속이 분주한 편이라 에너지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일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어쩌면 김부장, 박과장, 이대리가 아니라 일을 회사생활의 중심에 놓는 것이 훨씬 감정소모가 덜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워커홀릭 성향 때문에 이런저런 말 공격도 받곤 한다(아시죠? 동료가 혼자 열심히 일하는 거, 사람들이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내 입장에서도 이건 몹시 절박해서 타협할 수 없는 상황이 못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하지 않는 동안 겪는 심리적 불안이 싫어서 일에 몰입하는 건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니 나란 인간이 요령이 참 없어서 적당히 열심히 하는 척을 못한다는 것이다. 


EQ가 몹시 발달하여 사회생활을 잘하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인 ‘적당히족’들과 나는 대개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부류는 혼자 뭐 그리 잘났다고 이 짐 저 짐 떠안고 낑낑대면서 또 다 해내버리고 마니까, 반대편에서 보면 꼴불견인 거 나도 안다(뭐 이쪽에서도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 걸로).


하지만 하아, 진짜 저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결단코 아니거든요. 그저 타고난 데로 생겨먹은 데로 살다보니 자연발생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되는 거라고요! 어떻게 해야 일을 ‘적당히 잘 하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잘살면서 ‘워라밸’을 지켜낼 수 있는 걸까. 나의 적정선과 한계점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회사에선 얼마만큼 몸을 사릴 것인지, 몸을 아낄 것인지 정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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