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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Jan 19. 2021

노화통과 울화통, 그리고 기간제 사원의 비애(1)

직장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노화통이야, 그거”

“노화통이요?”

“내가 붙인 이름인데, 아이들은 성장통을 겪잖아, 왜. 나도 어느 시점부터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더라. 노화를 받아들어야 해,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 말이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오랜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이자 친한 지인, 나보다 여섯 살 많은 김의 말이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증폭되어 맴돌았다. 내가 노화통이라고? 아니 맛있는 즉석떡볶이 잘 먹다가 이 무슨 즉석떡볶이 불어터지는 소리람! 


그런 것이었나. 이. 모. 든. 것. 기억력 감퇴, 잦은 우울감, 툭하면 노여움(어르신들 나오는 약 광고 카피 아니고요), 이해력 부족, 빠릿빠릿하긴커녕 스스로도 놀랄 만큼 느려진 반응속도, 이 모든 것이 노화 탓이라면 더 이상은 나를 탓하지 않으리.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저 자꾸 바보 짓하는 게 노화통일까요, 그럼? 회사에서 서류를 볼 때마다 왜 그리 이해가 안 되는지 머리를 쥐어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물론 서류를 미흡하게 작성한 자의 문제도 있겠지만, 예전엔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대충 맥락을 잡았었는데.”

“여름... 더 이상 과거의 총명했고 젊었던 자신과 비교할 수 없어. 세포가 늙어가잖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Office in a small city' /  네, 제 세포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흙흙.


사실 김이나 나나 그렇다. 여전히 내게 총명하고 명석한 사회인의 상징인 김이지만 요새 부쩍 약속 시간에 늦어 나를 놀라게 하고, 회사에서 급한 단체 업무 메일에 대한 답신을 다른 사람들은 다 답신을 주고받은 3~4시간 후에야 한다고 한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메일 알림창이 뜨고, 카카오톡이 울리는 게 도무지 감지가 안 되는 걸 깨닫고, 자신의 노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김은 내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나라고 뭐가 다를쏘냐. 퓨즈가 나가려는 형광등처럼 두 눈을 연신 끔뻑이며 김의 이야길 들었다. 침울한 심정으로 머지않아 내게 닥칠 일들을 들으면서 한숨을 쉬다가 요새 내가 노화통과 울화통, 두 가지 증상을 함께 겪어내느라 이토록 스트레스가 한강이로구나 싶었다.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남짓. 사기업에서만 일을 하다 수 년간의 반백수 시간을 거쳐 가까스로 입사한 첫 공공기관이다. 계약직 사원에 대한 은근한 배제와 경력직 사원에 대한 짠내 나는 텃세야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흔히 하는 말처럼 ‘멘탈갑’이 있다면 나는 ‘멘탈을’ 쪽이어서 그런지 막상 닥친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나는 확실히 감도 떨어져 있었다. 간단한 엑셀이며 파워포인트 업무를 잡고도 몇 시간을 끙끙대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맡게 된 사업도 난생 처음 해보는 류의 일이었다. 게다가 공공기관 특유의 ‘공무원인듯 공무원 아닌듯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해도 많이 생기고 울화통이 치미는 일도 적잖았다. 


내가 일해 온 방식의 합리와 이곳의 합리는 확실히 평행선을 달렸고, 한숨을 돌림노래처럼 푹푹푹푹 쉬면서 “안 알려주겠다고? 흥, 내가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낼게” 따위의 다짐을 매일같이 했다. 그래도 ‘절대로 책임지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 는 그 강력한 태도와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한 수 배웠다고 할까, 이쯤 되면 존경심이 생길 정도라고 할까. 


그리고 웬 작성해야할 문서는 그리도 많은지, 문서를 작성하려고 이 한 몸 바치겠다고 태어난 사람들처럼 모두들 전투적으로 문서를 작성하고 또 작성하고 내일이면 다시 나와 또 문서를 작성하는 일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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