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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Feb 15. 2017

내 지갑 속 예술인패스

예술인패스가 내게로 왔다. 만년 예술가 지망생인 나에게로. 먹고 살기 위해 이런저런 별 볼일 없는 기사를 파는 것 말고는 별다른 창작 활동을 하는 게 없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꼭 받고 싶었던 예술인카드다. 기쁘고, 신나서 부모님댁 아파트 한 구석 벤치에 앉아 내 예술인패스를 감상하며 잠시 어깨춤을 추었다. 저 멀리 있던 수위 아저씨도, 바삐 갈 길 가시던 할머니도 다행히, 전혀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여간 이제 내 지갑 속엔 예술인패스가 있다고 생각하니 손톱 만큼은 든든한 구석이 있다. 


요, 작은 예술인패스를 받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인터넷으로 신청한 뒤 두 달하고 열흘 정도 걸렸다. 난 운전면허증이 없지만 학과시험, 기능시험, 도로주행 다 해치우고 마침내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면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다. 작은 노력 끝에 어떤 경계를 넘었다는 뿌듯함이랄까? 사실 예술인패스의 혜택이 크진 않지만(서울에선 예술인패스를 가지고 국립현대미술관엘 가면 무료,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특정 공연이나 전시에 한해 30~4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예술인이라는 또 하나의 자아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기분이란 꽤 삼삼한 거다. 






자, 예술인패스란 무엇인고 하면, 지난 2014년 10월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들에게 발급하는 카드다. 예술인패스를 받기 위해선 우선 예술인 활동증명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첨부해 신청을 하면 심사 기간이 3, 4주 가량 걸린다고 써있는데 나는 꽉 채운 4주가 걸렸다. 예술인 활동증명이 완료됐다는 문자 메시지가 오면, 그때 예술인패스를 신청할 수 있다.  그 후에 또  2, 3주가 걸리는데 나는 한번 반송되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렸다.  우체국 등기로 오는 줄 모르고, 그만 습관처럼 여성안심택배함을 수령지로 지정했던 바람에-_-;; 


그럼 예술인패스를 받을 예술인의 기준은 무엇일까. 예술인이라는 게 무슨 국가공인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오늘부터 예술가야’라고 혼자 선언하고 계속 뭔가를 창작하면 예술가가 된다. 그렇게 심오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홀로 열심히 창작을 해왔다는 것만으로는 예술인패스를 받을 수 없고, 그 창작물을 어딘가에서 발표한 기록이 필요하다. 그러니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골방 예술가들, 예술 활동은 했지만 팸플릿이나 웹사이트 등에 이름이 남지 않은 이들은 활동 증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이 애석하고 또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편 공기관 입장에선 또 예술 활동을 심사할 만한 다른 기준을 마련하기도 애매할 테지. 


하지만 덕분에, 나처럼 오리지널 창작자는 아니지만 창작 언저리 일을 하는 사람도 예술인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나로선 운이 좋았다. 인터넷을 둘러보니 예술인패스를 발급 받은 사람은 다 사용 기간이 2017년 12월까지인 듯하다. 막 발급 받았는데 1년만 쓸 수 있다니 너무 아쉽지 아니한가. 정권이 바뀌면 부디 더 통 큰 문화 정책으로 기간도, 혜택도 팍팍 늘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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