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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Feb 13. 2017

아침엔 커피, 점심엔 한숨, 저녁엔 포도주

사라지는 일상을 주워담으며 


이번 글의 제목은 불어 번역자 김남주 선생님의 새 책 <사라지는 번역자들>의 한 챕터명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원래 챕터명은 '아침은 커피, 점심은 맥주, 저녁은 포도주'였고, 정말로 이 메뉴를 주식으로 삼는 불가리아 번역자와 김남주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한 글이었다. 이 제목이 너무나 최근 나의 일상을 반영해 마음속 깊숙이 호응했던 나머지, 책에 밑줄도 주욱 긋고 혼자 실실 웃기도 해서 기억하고 있다. 

요즘 나는 점심에 맥주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아침에 커피 두 잔을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점심에 한 잔을 더 마신 뒤 저녁이면 집 앞 대형마트에 들러 레드 포도주를 사 들고 내 작은 방으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와인을 따는 일. 그 와인을 곁에 두고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로 미드를 보거나, 시사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취기가 오르면 잠이 든다. 그렇게 소설가 김애란의 한 단편처럼, 거듭하여 피아노의 '도' 음을 누르듯, 단조로운 리듬의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바닷가에서 갓 잡은 생선과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누군가와 나눠 먹는 '킨포크'적 삶의 반대편에 홀로 참치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음식에 의지해 편의점을 전전하는 '자취생'적 삶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후자 쪽이겠지. 

꽤 오래전, 스스로도 놀랍게도, 단박에, 담배를 끊고 나서 생각했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호사 취미는 커피와 맥주 뿐이로구나, 그것마저 몸에 나쁘다고 다 끊고 나면 과연 내 몸 속엔 뭐가 남을까, 하고. 그렇게 되면 나를 나이게 하는 물질이 뭐라도 남아있긴 할까, 싶었던 나는 줄기차게 커피를 들이붓고 맥주를 홀짝였다. 최근에는 음주 취향이 맥주에서 포도주로 옮아갔는데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싸구려 포도주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형마트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온 게 한 몫을 한 것 같다. 


간만에 네이버 웹툰을 보니 1년 여 만에 최규석 작가의 <송곳> 5부가 시작되어서 부리나케 클릭을 했다(두 엄지손가락을 척척). 5부 2회에 실린 대사 중 내 가슴을 후벼 판 대목을 옮겨본다. '남편은 새 꿈을 꾸기엔 이미 늙었고 죽기엔 아직 젊었다.' '언니들은.... 남편이 있잖아. 난.... 세상에서 내가 기댈 데가... 노조밖에 없어.'  

내가 다녔던 전 직장에도 노조가 있었다. 월급의 일정 퍼센트를 무조건 떼갔지만, 나도 노조가 있는 회사에 다닌다는 것이 조금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노조는, 어용노조도 아니었지만 전체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대개 현장 출신이었던 노조 사람들은, 나 같은 사무실 노동자보다 현장 노동자의 권익에 집중하는 듯했고, 주로 그들이 다뤘던 이슈는 현장 노동자들의 것이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휴직 후에 돌아온 혹은 돌아오려 했던 몇몇 동료들은 원치 않는(혹은 생뚱맞은)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사무실이 아니라 3교대를 해야 하는 현장으로 발령이 날 것이라는 소릴 듣고 육아 때문에 할 수없이 퇴직을 하기도 했지만, 노조는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어 주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 두엇이, 노조 사람들 역시 임기 말이 되어 본인들의 이전 일터로 돌아가야 하니 몸을 사려야 하는 처지라고 알려주었다. 

그처럼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노조는 좀처럼 기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회사의 뜻대로 움직이는 곳도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내가 겪은 직장의 현실은 대체로 그랬다. <송곳>에서처럼 빛나는 이상주의자와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이 대립하며 에너지가 들끓는 곳이 아니라, 대개 뜨뜻미지근한 현실주의자들이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일을 적당히 쳐내며 버티는 곳이었다. 그러니 죽도록 누군가를 미워할 상황도, 죽도록 지켜내야 할 사명도 찾아내긴 힘들었다. 나는 나의 나약함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을 탓하며 퇴장을 택했고 말이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에서 그랬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 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근데 전쟁터가 지옥보다는 조금 급수가 높은 걸까? 다시 생각해봐도, 지금의 나로선 잘 모르겠다. 전우가 내 곁에서 죽어가는 전쟁터와 나 혼자 죽어가는 지옥의 차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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