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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쩌리짱 Dec 31. 2020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


데스크톱 바탕화면 메모지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다만 이 햇살 아래 오래 서 있고 싶다.
-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 중에서

짐 홀랜드 'Hold that thought'


거의 매일 데스크톱을 쓸 때마다 보고 또 보면서 마음에 새기는 말들.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는 말에 매우 매우 동의하므로, 희망찬 삶을 위해 나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은)해왔다.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서, 늘 마음의 짐짝으로 작동하기 일쑤라는 점이 문제이긴 하지만. 나름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건만, 왜 내겐 블로그 글쓰기조차 그토록 어려웠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되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튼 지난해까지 꼬박 6년간 프리랜서+백수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폭망’한 나는, 그야말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졸아들었고 글쓰기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당최 글을 쓴다는, 그렇게 여유로운 행동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사치처럼 느껴졌다. 나는 오직 돈을 버는 일, 더 정확히 말해 최저시급을 받으며 몸으로 때우는 알바를 하거나 알바마저도 할 수 없는 현실을 회피하며 지내면서도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헤프게 낭비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려왔다. 아무리 노트북 앞에 앉아 새하얀 워드프로세서를 켜서 깜빡이는 커서와 마주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올해부터다. 그나마 사무실에서 일다운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은. 그리고 제대로 취직을(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제이긴 하지만) 한 것은 4개월 전으로, 그 짧은 시간 동안 해 본 적 없는 프로젝트를 끝내고, 많이 당해본 류의 텃세를 겪어내면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와 같은 시구를 생각했다.


모처럼 한가해진 12월(그나마 다 가버렸네, 코로나와 함께 잘 가 2020), 나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란 바로 이런 거구나, 9~6시 사이의 회사형 인간을 연기하는 나를 말끔히 씻고,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존재 증명을 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로 가득 찼다. 20대 이후로 살면서 이렇게 뭔가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고, 이 마음의 실체가 다 뭐지 싶던 차에,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마치 세트상품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회사 생활의 다른 모든 업무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이지만,
실은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존재 증명’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모적으로 남의 일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내 목소리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그 감각이, 수면장애를 앓으며
쪽잠을 자면서도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의 현실을 버티게 해 주었다.
-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중에서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세트상품!이라는 깨달음에 탄복해 머리를 주억이면서 ‘간결한 문장의 승부사’ 스티븐 킹의 말을 다시금 꺼내본다. ‘글쓰기는 절망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내가 진정 침을 뱉을 곳은 어디인가, 지금은 브런치로구나,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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