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군 Mar 31. 2021

진급에서 또 떨어졌다. 1

30세에 회사에 입사한 14년 차, 43세 과장이다. 차장 진급 발표날이다. 지난해는 코로나로 인해 회사 경영상 어려움으로 진급이 없었다. 올해는 3번째 기회. 첫 해는 극 소수만 진급이 되었기에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둘째 해에는 옆팀에 동기가 되고 다른 부서에는 후배들도 진급했다. 다소의 충격이 있었다.


올해는 '그래도 이번에는 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당일 오전에 부서장님이 팀장들을 소집했고, 각 팀의 진급 결과를 알려주는 듯했다. 우리 팀장님은 부서장실에서 나오더니 옥상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신다. 예감이 좋지 않다.  


팀장으로부터 진급 탈락의 통보를 받았다. 다소의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관리자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아내와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었는데. 무능한 직장인의 대명사로 흔히 들어왔던 '만년 과장'이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학생 시절에는 아버지처럼 샐러리맨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학업을 계속했다. 아버지의 일상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셨다. 그 시절은 주 5일제도 아니어서 토요일에도 출근하셨다. 우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은 많지 않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여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나의 확신, 의지의 부족에 불확실한 유학생활에 대해 부모님이 갖고계신 불안감이 더해져서 홀연히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생활을 잘하는 성격', 흔히 말해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치'라는 것은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특히, '자신을 이롭게 할 목적'을 지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다. 학창 시절에 나름 공부를 잘했던 나는 선생님과 주위의 인정을 다른 노력없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 능력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기분을 살피고 마음을 얻기 위해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내향적인 성격이라 자기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친구들은 나를 우등생으로 인정은 했지만 친구로서 좋아했을 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문제를 삼자면 나의 회사생활에 대한 태도는 '성공한 회사원'의 것이 아니다. 회사생활에 대한 이상은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업무는 업무 시간에만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고 좋아하는 운동과 취미에 할얘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자 했다. 내 이상은 애초에 '회사에 헌신하는 임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무능력한 직원으로 취급받는 '만년 과장'도 아니었다. 결국 차장을 날로 먹으려 했던 심뽀가 문제였던 것일까?


지난밤에는 머릿속의 상념들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앞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와 그 결과로 예상되는 경우의 수들이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그리며 고통을 주었다. 내가 뛰어난 성과를 표출할 수 있는 과제의 기회가 적었고, 다른 진급자가 속한 팀의 권력이 강했을 뿐이라고 외부귀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울의 하강 곡선은 모든 게 나의 문제인 것처럼 바닥으로 나를 잡아끌어 내렸다.


지난 4년 동안 3월 말 목련 꽃의 개화와 낙화는 나의 좌절감과 함께 했다. 언젠가의 3월에는 목련꽃을 보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었는데..'하고 성장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