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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군 Apr 03. 2021

방황하는 40대 회사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7살쯤 나의 꿈은 운전기사였다.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가 너무나 신기했기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장래희망이었다. 그 당시에는 자가용이 있는 집이 많지 않아서 골목에서 아이들이 축구도 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2학년 때 처음 시험을 봤다. 2~3문제를 틀렸는데 나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결과를 알렸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형은 100점을 맞는데 성적이 그게 뭐냐?’며 나를 혼내셨다. 엄마에게 혼난 후 회전의자에 늘어져 의자를 하염없이 돌리며 풀이 죽어있던 9살의 내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후로 나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부모님의 애정을 받으며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절박함에 따른 불안감이 있어서인지 그 후로 상위권의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위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친구 관계를 풍요롭게 하거나,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주지는 못했다. 학교가 끝나면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고, 시험기간에는 시험 등수가 떨어질까봐 불안에 떨었다.


문제집을 푼다고 책 한 권 읽는 시간을 내지 못했고, 수학도 원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보다는 답을 보고 문제를 푸는 패턴을 외우기만 했다. 그래서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나는 언어영역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는 40이 된 지금도 가끔 언어영역을 시간 내에 다 풀지 못하는 악몽을 꾼다. 수학도 기존에 접해보지 못한 난도가 높은 문제가 나오면 당황하기 일수였다.


나보다 5살이 많은 형은 삼수 끝에 한의대를 갔다. 부모님은 아들 둘을 다르게 키워보고 싶으셨던 것인지 나에게 문과를 권하셨다. 그리고 문과의 모범생이 누구나 생각하는 법대를 목표로 공부했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대학의 법대를 가기에는 점수가 모자랐고, 재수까지 했던 터라 다소 커트라인이 낮을 것 같았던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때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탐색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동기들이 많이 하는 고시 공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그 당시 뜨고 있던 변리사 자격증 취득을 권하기도 하셨는데,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절박함이 없었던 나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공 공부는 재미가 있었다. 자신의 성격, 불안감, 우울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공부였고, 이러한 흥미는 대학원 진학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임상 심리학 전공자의 위치는 생각보다 안정적이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가 그 방면에는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시장을 공유하기를 원치 않았다. 게다가 대학원 졸업 후 군대를 다녀왔는데, 지도 교수님도 국내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나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결국 유학 준비를 하다가 얻은 토익 성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학문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없었기에 유학 준비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취업 후에도 직장 생활은 내 길이 아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많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을 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이 되었다. 30대였던 내가 그랬다. 35살쯤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제 43살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절실하게 하고픈 것이 없다. 회사생활에서 임원을 목표로 삼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진급도 생각같지 않다. 지향하는 바가 따로 있어서 준비를 하는 것도 없다.


만일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우선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생각을 더 성숙하게 만들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 더 열정적으로 놀아보고,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 관계를 더 신경 쓰겠다. 관계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줄 아는 현명함도 기르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유학도 가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깊이가 더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43세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책은 지금도 열심히 읽을 수 있다. 사람 관계는 타고난 내향성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지금 나이의 유학은 다녀온 후 실효성이 미미한 도전으로 보인다. 열정적으로 놀기에는 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평생 방황하며 살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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