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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군 Apr 02. 2021

진급에서 떨어진 후 4

나의 정체성을 찾아서

진급발표 후 4일이 지났다. 봄날의 따스함과 만개한 벚꽃들의 위로로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있다. 집에서 늦잠도 자고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회사생각에서는 조금 멀어진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할 것을 생각하니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월요병을 겪을 것만 같다.


부서 직원들은 나를 무능한 직원으로 보지 않을까? 나와 가까운 선배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줄까? 후배들은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타인들은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어요. 단지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나의 불행이 사람들 사이에서 가십이 될 것만 같은 생각에 그들의 눈빛을 마주할 것이 두렵다.


부서장은 나의 진급 탈락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안타까울 것 같으면 시켜주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까운 마음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과에 따른 우선순위는 별개다. 부서장에게 ‘저는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업무 특성상 부서장님과 상호작용이 적어서 저를 어필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결과에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다음번에는 더 노력해서 부서장님의 최우선 순위에 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메일이라도 한 통 보내야 할까.


회사생활은 어쩌다가 나의 정체성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우리 회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 유행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직원들의 50% 내외를 순환휴직시키고 있다. 처음 두 달 휴직에 들어갔을 때는 오랜만에 방학을 맞은 것이 너무 즐거웠다. 좋아하는 테니스도 치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보낼수록 불안감이 찾아왔다. ‘나의 생산성’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은행계좌의 숫자를 쌓아 올리지 못하고 줄이고만 있다는 사실에 ‘비생산적인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우두커니 있으면, ‘사회에서 쓰임새가 없는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회사생활 외에는 다른 준비가 없었으니, 회사 밖을 나오면 말 그대로 'Nobody'가 되는 것이다. 이름 있는 회사의 소속원이 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 정체성이 허상일 뿐인지. 대기업 임원을 해도 자신의 능력을 갖추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동네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것이다. 물론 ‘소일하며 지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생산성에 대한 강박일지도 모른다.


다른 한 가지는 ‘계속 놀기만 하면, 노는 것이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시험이 끝난 날이다. 한동안의 속박을 견뎌낸 뒤 자유로워졌을 때 날 듯이 신이 난다. 영화도 시험공부를 하는 중간에 몰래 보는 영화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 안의 ‘마조히즘적인 성향’과 진정 놀 줄 모르는 ‘모범생 성향’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아닌 다른 나들을 만들어가는데 공을 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글을 쓰는 나’를 시작한 것은 만족스럽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일기를 보고 아버지가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주신 적이 있다. 그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의례적인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한다. 아내는 이공계 출신이다. 하지만 꾸준히 써나가다 보면 나 스스로도 만족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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