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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군 Apr 12. 2021

결혼 후 10년, '견딤'에 대하여

봄날의 날씨는 하와이를 떠올리게 한다. 바람은 서늘하고 햇살은 맑다. 우리 부부는 10년 전 5월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갔다. 하와이는 신혼여행지로 너무 진부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하와이에 도착해서 청량한 공기를 느끼는 순간 괜한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우이섬 이곳저곳에서 넓게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나무들이 '나는 이곳에 있어서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화창한 햇살과 시원한 공기가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아내와 나는 아빠 친구의 딸과 아빠 친구의 아들이었다. 아빠끼리 고향 친구였는데 30대 중반쯤에도 결혼을 못한 자녀끼리 한번 만나게 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이 되었다. 우유부단하고 행동력이 부족했던 우리는 1년여의 만남을 이어가던 중 가족들이 조성한 분위기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결혼식날 주례 선생님은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견뎌야 함'을 연이어 강조하셨다. 그때만 해도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사람이다. 아내는 '독립적인 고양이',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강아지'다. (개가 아닌 강아지라 한 것은 나의 미성숙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아내는 위로는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언니', 아래로는 '귀한 막내아들' 사이에서 자란 둘째 딸이다. 그래서인지 자기의 특기인 공부 잘하기로 생존 방식을 터득했고, 공부 외에 다른 방식으로 애정과 관심을 구하는 방법에는 서투르다. 장모님도 '전혀 신경 쓸 것 없이 잘 자란 아이'로 아내를 생각하고 계신다.  


나는 위로 형과 누나가 있는 막내다. 다섯 살 위의 형은 폭군이어서 어린 시절 좋지 않은 기억도 있지만, 나름의 막내아들 위치에서 애정을 받고 자랐다. 물론 공부로 애정과 관심을 받았기에, 나 역시 아내처럼 사람 관계는 서툴다. 독립적이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다소 의존적이다.


게다가 생활에 있어서도 '다름'이 많이 나타난다. 아내는 밤늦게까지 혼자서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로 인해 아침잠도 많다. 나도 고요한 밤 시간을 좋아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 아내는 청소를 하면 물건을 '닦는 것'에 집중을 하지만, 나는 '정리하는 것'에 집중을 한다. 아내는 계산할 때 영수증을 확인하며 일일이 맞춰보지만, 나는 '설마 틀리겠어' 하며 영수증을 챙기지 않는다. 아내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는 위생관념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까지 조심하지만, 나는 눈에 보이는 수준에서 깨끗하면 된다. 아내는 이성적인 편이고, 나는 감성적인 편이다. 심지어 아내는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짜고, 나는 끝에서부터 짠다.


아내와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한 생명체를 협업으로 양육하기 시작하면서이다. 딸이 태어나고 육아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아내는 위생을 꼼꼼하게 챙겼고, 그런 아내의 방식을 따르기 힘이 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내는 딸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아플까 봐 조바심을 낸다. 딸이 두 살 때는 감기 때문에 거칠어진 들숨에 놀란 아내가 119를 불렀다. 7살 딸은 요즘 3세도 타고 다니는 킥보드가 없다. 


5월이면 그런 아내와 함께 산지 10년이 된다. 소심한 나는 종종 아내와 싸우고 나서 가출을 계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 어딘가로 가기에는 외로움을 잘 탄다. 본가에 가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고, 내가 없으면 딸이 심심할 것 같다. 토라져서 안방에서 나와 마루 소파에 혼자 누워있는다. 나처럼 잘 삐지지는 않는 '고양이 아내'가 나와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한다. 그런 아내에게 고마움이 크다. 분쟁의 원인은 따지지 말자.


아직 딸과는 하와이에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 딸에게 마우이 섬에 매년 겨울 찾아오는 혹등고래들을 보여주고 싶다. 아내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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