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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군 Sep 04. 2023

40대 아빠 육아휴직하다.

회사생활은 어쩌려고 그 나이에 휴직을?


우리 딸은 이제 2학년 2학기에 접어들었다. 이제까지는 엄마가 초등학교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서 휴직을 하고 돌보고 있었다. 며칠 전인 9월부터 엄마의 휴직 기간이 끝났다. 하지만 딸은 우리 부부가 너무 외동스럽게 키워서 그런지 혼자서 방과 후 생활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휴직을 하기로 했다.


우리 딸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극도로 아낀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불편해한다. 아이가 그럴 때면 천천히 기다려주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급한 마음이 들어 다그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식의 성격은 결국 부모의 유전자 혹은 선대의 유전자가 발현된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다. 단지 딸은 나의 매운맛 버전인 것 같다. 아내도 내향적인 사람이라 둘의 유전자가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서 딸의 성격을 만든 것일 수 있겠다.


아내는 거기에 더해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결혼 전 나는 해외여행 보험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보험 없이 해외여행에 나서는 것은 여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 따른 막대한 경제적 지출의 위험을 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내가 하나뿐인 자신의 분신인 딸을 대하는 마음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아내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노심초사한다.


그리하여 40대 아빠는 육아휴직 사용을 결심하게 된다. 지난 코로나 기간 중에 한두 달씩 쉬었던 경험은 있었지만 1년을 계획하고 휴직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대학 때도 휴학을 한 적이 없었고, 졸업, 입대, 전역 후 바로 취직을 한 터라 백수로 지낸 기억이 없다. 물론 대학과 장교시험을 재수를 한 삶의 스케줄에 없는 경험이 있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오는 트라우마스러운 경험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은 휴식이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육아휴직은 열심히는 아니지만 '쉼 없이 달려온(?)' 내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딸도 그리 손이 많이 가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틈틈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단지 내가 40대에 정확히는 45세에 육아휴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회사에서는 동기들이 팀장 진급을 하기 시작했다. 입사도 늦고 지난 진급도 뒤쳐졌던 내가 지금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은 회사생활을 더욱 가열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내가 휴직 사실을 알렸을 때 회사 사람들은 내 결정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지난 진급이 늦었던 만큼 팀장 진급은 빨리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이 내 젊은 시간을 송두리째 앗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재주 없는 소심한 범생 타입인지라 옆길로 샐 생각도 하지 못하고 회사 출퇴근만 했다. 1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태어나고 노심초사 키우다 보니 어느덧 흰머리가 가득하다. 염색은 하기 싫어 머리를 짧게 자르면 그나마 흰색이 좀 줄어든다. 회사에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선배들을 보면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회사생활의 사다리에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인지, 정신없이 달리다가 돌아보니 마주한 노쇠한 자신의 모습 탓인지 모르겠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났다. 출퇴근으로 인한 피곤함도 없다. 평일에 쉬니 테니스를 자주 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이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서 즐겁다. 육아휴직이 어느 순간 끝날테지만 그동안은 아이와 나의 삶에 기억에 남는 시간들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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