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옥죄고 있는 유교 문화에 대한 생각
가족(家族) : 주로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 표준국어대사전
추석 때 제사 준비를 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사를 지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기리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애정을 느낄만한 사람들이 제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얼굴 모르는 조상님, 내가 어릴 때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던 할아버지가 내가 생각하는 제사의 대상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는 것에 동참하는 이유는 그것이 관습으로 내려져왔기 때문이고, 나의 부모님이 그래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특히 나이 드신 어머니가 혼자 고생하시는 것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맞벌이셨던지라, 어릴 때 나는 친가에서 자랐다. 어릴 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차남이라는 이유로 장남인 사촌 동생을 편애하던 친할머니, 외동 아들이란 이유로 자기 자식을 감싸고 돌던 큰 집. 성적을 검사하며 매번 나를 혼내시던 어머니, 직장 때문에 집에는 잘 들어오시지 않던 아버지.
친가에서 사랑을 느낀 적이 없다. 적어도 나의 유년시절 기억 안에서는.
그 당시에는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어렸고, 약했다. 다들 네가 형이니까, 양보하라고만 했다. 내가 좋은지 싫은지를 묻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형이니까 양보해야했고, 내가 차남이니까 장남이 더 중요했다. 내가 하고 싶어도, 어른들이 반대하면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참 재밌다. 장유유서(五倫之序)라는 사자성어 하나 때문에 나의 의견은 어른들의 의견 뒤에 가려진다. 내가 차남이면, 장남의 다음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과거로 남겨둘 수 있었지만, 장유유서(五倫之序)는 현재까지도 적용되고 있었다. 특히나 우리 어머니에게. 작은 집이지만 큰 며느리의 역할을 하셨던 우리 어머니는 매번 제사 준비를 도맡아 하셨고, 매번 연로하신 할머니를 챙겼다. 큰 집은 장사를 해야한다며 제사 준비를 하지 않았다. 같이 준비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작은 액수의 성의 표시라도 하지는 못할 망정,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큰 어머니.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큰 집은 장사하느라 바쁘지 않냐며 우리 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시키시던 친할머니. 우리 어머니도 일을 하시는데, 도대체 왜 우리 어머니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왜 큰 집에게만 특혜를 주셨을까?
우리 어머니는 꾹꾹 참아내셨다. 30년을. 그리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이 되어서야, 폭발하셨다. 한창 이혼 얘기가 오갔고, 나는 궁금했다. 왜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지. 술 한 잔 하며 얘기해보니, 아버지는 형수님께 직접 말하는 건 어렵다고 얘기하셨다. 자신의 형에게 말을 했으면 했지, 형수에게 어떻게 직접 말할 수 있냐며. 그리고 자신에게는 엄마와 형이라는 존재는, 너무 미안한 존재이며 자기가 더 해주고 싶은 존재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면서.
이해는 되었다. 나도 내 가족에게 느끼는 감정이 같으니까. 나를 키워주셨고,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신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의문이 든다. 나의 가족과, 부인 중에는 누가 먼저인가? 자신의 가족이 아닌 '남'과 다를 바 없는 사돈 어른들을 30여년 동안 챙긴 어머니의 희생은 왜 당연시되고 있는가?
물론 친 할머니와 큰 집 어른들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염치가 없었고, 우리 어머니에 대한 존중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친 할머니와 큰 집 어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그저 우리 아버지의 가족이기 때문에, 어른이기 때문에 존중해드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일가 친척으로서 어떤 유대감같은 것도 없었다.
제사 때마다 어른들과 얘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당신들의 생각과 경험이 모두 맞다고만 생각하시고,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시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는 건 무의미하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더 나은 의견을 도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 불과하니까.
이번 추석은 연휴 시작부터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기 싫은 제사를 준비하는 것, 제사 당일에 일찍 일어나서 큰 집에서 제사가 시작할 때까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모든 것이 유달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사를 지낸 후 밥을 대충 먹고, 상을 같이 치우고 낮잠을 잤다. 한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났는데, 큰 아버지와 아버지는 무언가를 고치고 계셨다. 아버지가 올라가셨다가 망가진 마사지 기계를 고쳐보겠다며, 다 분해해놓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계셨다. 나는 한동안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언제쯤 끝날지 궁금해 자세히 보니, 도저히 두 분이서 고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냥 A/S 기사를 부르시라고 말씀을 드렸다. 대꾸는 없었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두 분만 얘기하실 뿐.
그 때부터 짜증이 났다. 큰 집에서 더 이상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데, 나도 좀 쉬고 싶은데, 큰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집 때문에 늦어지고 있어서. 안된다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그걸 잡고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내 의견을 듣지 않는게 아니꼬와서. 두 분에게 내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나중에 A/S 기사를 부르자는 말을 두 세 번 더 했다. 내가 같은 말을 계속하자, 아무 대꾸도 없던 아버지는
"아이씨, 가만있어 봐."
라고 하셨다. 그 때 내 인내심이 한계를 넘어섰다.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나에게 그다지 의미없는 것들을 하기 위해 큰 집에 있는데, 아버지는 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성을 높였다.
"아니, 안되는 걸 왜 계속 붙잡고 있냐고요! 아이씨, 진짜 답답해가지고"
그리고 더 이상 큰 집에 있기가 싫어, 나가려고하니 아버지는 한 마디 더 하셨다.
"이씨, 야!"
나도 한 마디 더 했다.
"뭘 이씨야 이씨는!!! 아오 진짜!"
어머니는 그냥 빨리 가라며 나를 내보내셨다.
답답했다. 제사를 지내는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아버지가,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나에게 소리치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아버지가. 나는 어릴 때처럼 소리친다고 기가 죽을 어린이가 아니었고, 이제는 아버지가 틀리셨다고 할 수 있을만큼 머리가 컸는데도 말이다.
동생과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정도 후에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들어오시면서 가기 싫으면 외갓집은 안 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두분께서만 다녀오시겠다고. 나는 외갓집엔 간다고 말했고, 동생은 안 간다고 했다. 어떻게 할 거냐고 얘기하다가,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나는
"에이씨, 제사 때 내려오지 말던가 해야지, 진짜."
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도 하기 싫었어, 근데 형이 하자고 하는 걸 어떡하냐고."
라고 하셨다. 나는
"아니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죠!"
라고 대꾸했다.
아버지는 말 없이 차 키를 가지고 나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 옆에 오시더니, 말을 걸었다. 뭐가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냐며.
나는 친척들에게 별로 애착이 없다는 것과 제사를 굳지 지내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제사를 지내는 건 아버지랑 어머니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그래도 같은 가족인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딱 잘라서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말하는 가족은 어디까지 일까? 나의 가족까지일까, 나의 가족의 가족까지일까? 사전 상으로 '가족'은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친족'은 '촌수가 가까운 일가'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로 보면, 가까운 친척들도 가족에 포함될 수 있겠다.
가족은 '관계'이다. '관계'는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으로 정의된다.
'나'와 '관계'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이다. 엄연히 다른 별개의 인간이며, 그러므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과연 '내'가 없는 와중에, '관계'로 인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가족과의 관계가 힘든데도 '관계'를 위해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맞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있어야 내 주변의 '관계'가 건강해질 수 있고,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관계'로 인해 '내'가 없어지는 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설사 가족이더라 하더라도, 내가 힘들다면 놓아주는 것이 맞다. 억지로 붙잡으려해봤자, 고통만 커질 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며 착각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네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평소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 있냐며, 아버지가 즐거워 하시는 몇 안 되는 때가 그 때인데, 아버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던 나의 마음에 그것은 왜 포함이 될 수 없는 것이냐며. 나에게 너무 차가워진 것같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나는 좀 의문이 든다. 내가 희생한다는 것이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은 걸 억지로 해야되는 범주인가? 그리고 그 희생은 당연시되어야하는가? 어머니는 그러한 암묵적인 희생을 견디시다 못해 이혼까지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데, 나에게 같은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그걸 안 한다고 내가 편하지 않더라.' 이다. 참 재밌는 말이다. 결국 어머니가 한 의사결정의 기준은 어머니 당신이신데 말이다. '내'가 해서 편하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내'가 싫은 관계라고해서 '내' 맘대로 끊어내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잘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런데, 아버지가 나와 우리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신다면 굳이 희생하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제사를 하며, 보고 싶지 않은 친척들과 대화해가며 억지로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
어떤 외국인 교수는 한국의 '효(孝)'를 '죄의식(sin)'이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갖는 일종의 죄책감. 내가 얼른 성장해서 받은 것을 갚아야한다는 의무감과 부채 의식이라는 뜻에서. (http://thechangeground.com/archives/55440)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 죄송함과 미안함을 가지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뒤로 한 채 시간을 보내는 명절이 난 썩 달갑지 않다.
제사를 안 지낸다고,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세상엔 그 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다. 유교의 '인(仁)'은 도대체 무엇인가? 공자도 '인'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다. 애매모호하게 그저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는 것이라고 했을 뿐.
무엇인지도 모르는 '인'이라는 것 아래 암묵적으로, 강제적으로 시행되어왔던 많은 것들이 없어졌으면 한다. 어줍잖은 관계보다, '내'가 우선시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얼토당토않은 "우리 때는 그랬다, 원래 이런거다, 어쩔 수 없다." 같은 이유 말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 너도 원하면 같이 하고, 굳이 같이 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제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훗날 제사를 지낸다면, 나의 자식들에게는 꼭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