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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백수 남편의 취업 분투기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며(상)

남편과 내가 세계일주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것이 2019년 4월이었으니 부부가 나란히 퇴사를 한지도 벌써 4년째 접어든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건만 그 이후 닥친 여러 불가항력적인 상황들로 인해 남편은 지난 몇 년 간 계속 무직 상태에 있었다. 결혼 엔 사고로 망가진 몸을 재활하느라 반년 간 치료를 받아야 했고, 취업준비를 시작하던 해에는 코로나 시작된 탓이다.    


그 후 1년 가까이 공공기관으로의 취직을 준비하던 남편은 여러 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좁아진 취업문에 비해 늘어난 취준생들이 저마다의 절박함으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리라... 여러 번의 좌절 끝에 가혹한 현실을 마주한 남편은 다시 한번 눈을 낮추어 공기업 대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두 백수 부부가 나란히 고시생활을 시작한 것이 2020년 1월이었다.




그로부터 3년, 남편과 나는 밤낮으로 고시공부에 매달렸다. 나는 1년 만에 합격증을 받아 들었지만 남편은 작년에 이어 올해 시험에서근사치로 결국 떨어졌다. 연이어 불합격 통보받은 남편은 단 1점의 차이로 나뉜 합격과 불합격의 경계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지난 3년 간 경험한 것이라고는 무수한 좌절뿐이었던 남편은, 또다시 부족하다는 평가와 함께 거절감을 맛보았다.


매번 반복되는 좌절에도 늘 얼마 간의 속앓이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남편도 이번에는 상심한 마음을 쉬이 추스르지 못했다. 거부당하는 기분, 부족하다는 평가, 모두가 번듯하게 자리를 잡아갈 때 나만 도태되는 듯한 느낌. 한 번으로도 사람의 마음에 큰 상흔을 남길 수 있는 감정들로 인해 남편은 계속해서 상처받고 작아져갔다. 일하지 않는 가장을 상상해본 적 없는 남편은 아내인 내게 부담을 지우는 것을 죽기보다 힘들어했다.


거절이 계속되면 부정인 줄 안다

나는 늘 '괜찮다, 수고했다, 잘하고 있다' 격려했지만, 그는 자주 '못난 남편이라 미안하다' 사과했다. 나는 '당신은 참 능력 있고 멋진 남자'라고 그를 치켜세웠지만, 그는 내게 '왜 이런 자신을 사랑해주는 거냐'라고 되물었다. 지난 시간 동안 대체 무얼 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 그는 잦은 한탄과 불안 끝에 종종 혼자 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기업부터 공사와 공기업을 거쳐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지원할 직군을 바꿀 때마다 좋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았건만, 세상은 더 눈을 낮추기 원했다. 이제는 30대 중반이 되어버린 중고 신입이 단절된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20대 대졸 신입 취준생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남편은 중소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그간 가졌던 모든 목표와 자존심을 내려놓은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중소기업에서 첫 면접을 보았던 그날, 대다수의 20대들 사이에서 30대 중반은 남편 혼자였다. 면접관들은 어린 면접자들을 제쳐두고 질문의 70% 가까이를 남편에게 쏟아부었다. 남편은 '마누라가 고생이 많았겠다, 지난 몇 년 동안 놀면서 뭐했냐' 따위의 호기심과 너스레가 섞인 무례한 질문에도 성심껏 답했건만, 결국 그 면접은 남편의 마음과 자존심에 생체기만 남긴 채 20대를 채용하고 끝이 났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자기를 뽑아주리라 믿었던 남편은 생각지 못한 불합격 소식에 다시 한번 크게 좌절했다. '이곳에서 마저 떨어지다니...' 남편은 마치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 된 듯 절망하며 얼마 간 넋이 나가 있었다. 계속되는 거절 앞에서 그는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는 듯했다. 나는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며 그를 다독였지만 그 어떠한 위로도 남편의 참담한 심정을 쉬이 달랠 수 없었다.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느 때처럼 채용공고를 찾아보던 남편은 어느 공기업에서 먼 타국으로 일하러 갈 계약직 파견 직원을 뽑는다고 했다. '어디? 에이 몰라 지원해버려! 까짓 거 대한민국 떠버리자'라며 농담을 주고받던 우리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기에 으레 또 안 되었나 보다 하고 까맣게 잊고 지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화상면접을 본다고 했다.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없이 상반신에 슈트를 걸친 채로 작은방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한참 뒤 문을 열고 나온 남편은 답을 잘하지 못했다며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는 이전 직장에서의 업무와 커리어에 집중해줬다며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과 함께 존중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면접을 망쳐놓고도 한껏 뿌듯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생면부지의 그 면접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퇴근 뒤 회식 중이던 어느 저녁,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는 한껏 상기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합격했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서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잘 됐네. 이따 집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애써 담담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통화를 끊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한참을 울었다. 합격소식보다는 언제 들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밝은 남편의 목소리가 반가워서였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입가에 웃음을 한껏 머금은 채로 담당자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가 인정을 받았다고, 모두가 자신을 거절할 때 이곳에서는 자신을 알아봐 줬다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 인정받고 싶었구나' 지난 몇 년간 남편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이 누군가로부터의 인정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아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토록 바라던 합격 소식인데, 분명 기쁘고 축하해야 할 일인 줄 알면서도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의 취직은 축하해 줄 일임이 분명했지만 그 결과가 남편과의 이별이라니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며칠간 이 제안을 받아 들 일지 말지 신중하게 고민해보기로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곤히 잠든 남편 곁에 누워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였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만 멍하게 생각에 빠져들었고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것이 남편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일지 독이든 성배가 될지, 과연 이렇게 남편을 떠나보내는 것이 맞는지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선택도,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우리가 져야 할 것이었기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민했다.


며칠간 온종일 깊은 한숨만 내 쉬던 나는 가까운 몇몇 이에게 연락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분명 좋은 기회인 걸 알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남편을 보내주는 것이 맞는지 말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지금껏 남편이 너를 항상 지지해주었듯이 너도 남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응원해주라며, 그것이 아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순간 지난 10년 간 내가 무얼 하든 늘 내편에서 나를 응원해주었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혹여 그 선택이 잘못되어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나 묵묵히 곁에서 함께하며 나를 도와주던 남편이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이 한 사람 몫의 삶을 두 사람이 함께 나눠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나는 그저 남편 몫의 삶을 함께 나눠지고 살아가면 되는 거였다. 나는 남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에게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그곳에 가고 싶은지, 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만약 그 이유가 단지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면 굳이 거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남편은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기업에서 일해볼 수 있는 기회라며, 그곳에서의 근무를 통해 4년 간 단절된 경력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지금껏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도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고, 이제는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어떤 말이 필요할까. 자신의 길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남편을 곁에 붙잡아 두기보단, 남편이 마음 편히 선택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줘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날, 남편은 계약서에 사인을 해 보내며 그곳에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남편은 해외취업에 성공했고 그와 동시에 우리 부부의 이별준비가 시작됐다.  



본 이야기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duckyou-story/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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