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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가 되었다

남편을 멀리 떠나보내며(하)

이 글은 전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편을 먼저 봐주세요.

https://brunch.co.kr/@duckyou-story/119




누군가 제목을 고 '남편을 잃은 아내의 글'이라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한다. 나의 남편은 살아있고 심지어 건강하며, 우리는 이혼을 하지 않았고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다만 남편이 문자 그대로 '머나먼 곳으로 떠나' 버린 탓에 그저 혼자 남은 아내가 되어 글을 쓰는 것뿐이다. 그러니 혹여 누군가 이혼이나 사별에 관한 글을 기대하며 들어왔다면 부디 실망하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7년의 연애 끝에 부부가 되었고 결혼한 지 어언 4년이 다 되어 가니 우리 부부가 함께한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결혼 전 대학생 시절엔 남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보러 왔고, 결혼 후엔 신혼여행에서 겪은 사고로 무직의 환자 부부가 된지라 대부분의 시간을 단둘이 집 안에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여 년 간 남편과 나는 떨어져 있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남편이 나를 두고 멀리 떠나게 되었다. 것도 단순히 몇 시간 떨어진 타지가 아닌 하루 꼬박 비행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머나먼 타국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레 맞이한 이별 덕분에 지난 두 달이 어떻게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겠다. 남편을 보낸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씩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직도 그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지만 그를 보내고 혼자 남은 마음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남편은 취직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었다. 기존에 하고 있던 단기 알바를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장기 해외 출국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서류들을 제출하기 위해 각종 공공기관들은 번질나게 드나들었고 대사관과 외교부 업무를 보느라 멀리 서울까지 오갔다.


지난 몇 년 간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탓에 남편을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전부 4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옷가지와 전자기기부터 공용문서와 여권까지. 남편은 취직이 되면 바꾸겠노라 유예하며 버텨온 낡고 철 지난 물건들을 전부 새 마련했다. 덕분에 그는 결혼 전 세계일주를 준비하던 그때만큼이나 바쁘게 쇼핑몰과 다이소를 돌아다녔다.


그가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

사실 그 모든 과정들 중에 가장 버겁고 빠듯했던 것은 서로와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 4년 간 매일 아침 눈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24시간을 꼭 붙어지내며 마치 샴쌍둥이처럼 살아왔던 우리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나 함께인 것이 당연했고 항상 서로의 곁에는 서로가 있었다.


지난 10년 간 남편은 나에게 오랜 남친이자 가장 친한 절친, 나의 가족이자 유일한 보호자였기에 나는 남편이 없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사람과 여행을 좋아하는 탓에 늘 집 밖으로 나돌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혼자 집에 있기를 좋아해서 결혼 후 집을 비운 적이 없다. 그 말인즉슨 나는 남편 없이 신혼집에 혼자 머물러 본 날이 단 하루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항상 당연하게 존재했던 남편이 곁에 없다니... 이제 곧 매일 출퇴근을 시켜주고, 밤에 모기를 잡아 주며, 잠결에 뒤척이는 내 몸에 이불 덮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1달 뒤 남편이 멀리 떠날 거라는 사실은 부정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나는 이따금씩 남편이 사라 거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새벽녘에 일어나 가만히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 울고, 자기 전 마주 보고 누워 이야기를 하다가도 울었다. 빨래를 개다가도, 짐을 싸다가도, 설거지를 하는 남편 등에 매달려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눈물이 차오르면 입을 비죽이다 아이처럼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길 여러 번 했다. 그건 단순한 슬픔이라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과 두려움, 애틋함과 애잔함이 모두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자신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사람의 존재

남편이 가게 될 곳은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보안시설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덩그러니 타국에 떨어질 그가 얼마나 외로울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마주할 상황을 걱정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 괜찮겠냐, 혼자 지내려면 외로울 거다, 많이 힘들 거다'하고 걱정할 때마다 남편은 되려 이곳에 남겨질 나를 걱정했다.


출국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나를 먼저 챙겼다. 이제 곧 겨울이니 전기장판을 꺼내어놓고, 환절기라 코를 삑삑 대는 나를 위해 가습기를 씻어놓았다. 이제 혼자 운전해야 할 내가 혹여 사고를 당할까 차를 정비하고, 홀로 장을 봐야 할 나를 위해 작은 손수레를 마련했다. 나는 떠나기 전까지 욕실에 쪼그려 앉아 묵은 때를 벗기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혼자 또 눈물을 훔쳤다.


남편은 1달간 단기 알바를 해서 받은 월급으로 출국에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그리고 내게도 돈을 벌지 못하는 동안 주고 싶었들을 마치  풀듯이 잔뜩 사주었다. 따뜻한 운동복과 크록스 신발, 예쁜 가을 옷과 좋은 스킨로션까지. 남편이 뿌듯한 표정으로 건넨 물건들을 한 아름 받아 든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간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항상 마음 쓰여했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꼭 필요한 시간이 주어진 것뿐이다

출국이 확정된 날 주변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오랜 무직 생활을 알고 있는 이들은 정말 잘 되었다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떠나갈 남편의 안위와 남겨질 나의 마음을 걱정했다. 그중 친한 친구 하나가 장문의 문자를 보내어왔다. 그 글을 읽던 중에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고 차올랐다. 나도 몰랐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구의 깊은 맘이 먹먹히 올라왔기 때문이다.

덕규야. 건강한 오빠라면 샴쌍둥이, 더 없는 소울메이트가 맞는데. 오빠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이 이리 와 승냥이 떼가 가득한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자기 가족을 지켜야 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라서 취직의 압박을 받는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건강할 수가 없다.

오빠가 땅 속 깊이 꺼져가는 걸 보면서 너도 많이 힘들었지? 내가 아는 너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밖으로 나와야 되는 사람인데, 오빠랑 같이 가라앉아있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다. 난 오빠의 외국행이 뜬금없고 충동적인 기행으로 보이지 않는다. 둘을 위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를 원하는 곳이 있다고 그렇게 웃었다고 하니 콧잔등이 시큰한다 야. 넓은 곳에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고 오셨으면 좋겠다. 너는 혼자 두면 더욱더 알아서 잘할 거니까 걱정 안 한다. 치열하게 고민한 삶은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고 난 믿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남편에게 친구의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남편은 대번에 메시지를 보낸 이가 누구인지 알아채었다. 그리고 붉어진 눈으로 '고맙네.,.'라고 했다. 친구의 문자에 담긴 것은 단순한 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간 우리 두 사람이 겪은 고통에 대한 이해였고, 우리가 내린 결정에 대한 신뢰였으며, 앞으로 나아질 상황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날 우리는 앞으로 지니고 갈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건 우리 부부에게 닥친 또 다른 고난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해서 주어진 시간이라고 믿기로. 남편에게는 다시 일을 시작하며 가장이자 남자로서의 자존감과 가치감을 회복할 기회로, 나에게는 남편으로부터의 의존에서 벗어나 이전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던 내 모습을 되찾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며 한결 마음이 가볍게 맑아졌다.



남편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첫날,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신혼집낯설게 느껴졌다. 이제 밤을 새워 기다려도 돌아 올 사람이 없고, 매일 불 꺼진 집에서 혼자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내가 홀로 힘들어하며 울거나 자신이 없는 집이 의미 없는 TV 소리만 가득하길 원치 않아할 것 이기에 나는 통곡 대신 남편을 위해 기도했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 지난 4주 동안에 많은 감정의 변화들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긴장되는 마음에 잠에 들지 못하며 첫 주를 지나 보냈고, 몰아치는 슬픔과 그리움에 빠져 매일 밤마다 엉엉 울며 한 주를 보내기도 했다. 무기력과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바쁜 스케줄에 나를 몰아넣어보기도 하고, 먹먹한 마음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그 안에 가만히 머물러 보기도 했다.


지난 4년 항상 함께했던 그가 떠나고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다. 20대, 치열하게 혼자서 삶을 살아내는 동안 느꼈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익숙하게 다시 나를 찾아온다. 그러나 모든 것을 회피하며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왔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마주 해보려 한다. 다시 혼자가 된 이 시간을 견디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때 즈음이면 다시 남편과 만나 건강히 함께 할 수 있게 될 거라 믿는다.


우리가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들을 지나보내고 다시 만날때엔, 함께여서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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