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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책, 그리고 사람

이어령의 '거시기 머시기'를 읽고

예전에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가 지금껏 연을 맺어온 많은 이들을 떠오르게 만들었고, 그들과 함께 왔던 생의 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글썽글성이라는 이름의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곳에서 또한 여러 인생들을 만나고 있다. 우리는 소소하게 한주를 살아온 이야기는 물론, 각자의 생에서 경험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나누면서 함께 울고 웃는다. 그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가 쓴 글을 통해 서로를 깊이 만나고, 같은 책을 함께 읽으면서 다양한 시선을 접하는 중이다.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만남을 넘어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궤적을 좇아가면서 '그 생을 함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쓴 책을 읽는 것 또한 그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하물며 그 책을 무수히 많이 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실로 측정할 수 없는 크기의 어마어마한 삶들을 함께 맞이하는 과정일 것이다.


우리는 처음으로 <거시기 머시기>라는 책을 통해 이어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어령의 대표 강연을 모아 엮은 이 책을 읽으면서 실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 많은 지식과 생각들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수 있는지, 그것들을 어쩜 저렇게 막힘없이 술술 풀어낼 수 있는지. 그 사람의 삶과 경험에 대해 호기심을 넘어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이 세상을 80년 산 그와 고작 30년 남짓 살아온 내 삶의 경험치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만, 그가 가진 것들은 단순한 세월과 연륜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어령의 책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에는 "어머니는 나의 책이었다. 영원히 읽어도 읽을 수 없는 도서관이고 수만 권의 책이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 문장에서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가진 이어령에게 큰 부러움을 느꼈다.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풍성한 엄마가 이 세상 그 무엇을 가진 어미보다 풍요롭고 멋진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가장 처음 만나는 세상이 엄마이기에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라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세상이 아름답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어둡고 탁한 것들로 인해 메말라 있는지는 아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어령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로부터 세상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바라보는 눈을 선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글은 암벽 같은 딱딱한 것을 긁는 것을 어원으로 합니다.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긁다, 그리움, 그림 전부 글에서 나온 겁니다. 책은 글입니다. 어떤 흔적을 남기니까 시간이 공간화됩니다. 말한 것은 사라지지만 긁는 것은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리움은 마치 책에 글자처럼 여러분 가슴속에 긁혀있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의 글자를 남기게 됩니다.


글이 '긁다'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글은 긁는 행위이구나...' 글을 쓰는 것이 어딘가 답답한 곳을 긁어주는 행위이자, 무언가를 긁어서 흔적을 남기는 행위라 생각하니 왜 인간이 글을 쓰고자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글들이 쌓이고 쌓여 모인 것이 책이니 그 책은 누군가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는 거였다.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며 깨닫는 많은 것들이 그 사람의 정신과 의식에 고스란히 담기면서 인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를 형성한다. 그렇기에 한 인간이 적은 책은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한 인간의 우주를 다시 고스란히 담아 또 다른 소우주를 창조하는 행위에 가깝다. 책을 쓰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우주가 작은 우주를 통해 또 다른 우주에게 다가가는 신비롭고 위대한 행위이다.       




우리가 모여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행위 또한 단순히 그 행위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 저마다의 우주이기에, 그 우주들이 모여 자신의 마음을 긁는 행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에 흔적을 남김으로써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이면서 여러 사람의 일생이 함께 왔다. 그 인생들이 모여 서로의 인생을 드나드는 중이다. 우리가 함께 글을 씀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져가고 있다. 이어령이라는 대우주는 저물었지만, 그가 남긴 거시기 머시기라는 소우주는 아직도 살아남아 무수한 우주들을 지금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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