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함께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 "글썽글성"의 멤버들과 첫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모든 멤버가 수도권에 사는지라 부산 사는 나와 만날 일이 없었는데, 남편을 배웅할 겸 인천공항에 따라간 김에 곧장 서울로 날아가기로 했다. 블루스퀘어라는 북카페에서 모인 우리는 통성명 후 각자의 가방에서 준비해 온 물건을 꺼내었다. 그렇게 네 사람 앞에는 네 개의 책이 나란히 놓였다.
지난 모임에서 우리는 기존에 해오던 책 읽기 프로젝트의 번외 편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책 여행 보내기' 프로젝트!!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각자가 아끼는 책을 데리고 와서 그 책의 선정이유와 매력포인트를 어필한 후 다른 멤버에게로 여행을 보내는 거였다. 그렇게 책을 받은 사람이 줄을 긋고, 느낀 점을 써가며 자유롭게 책을 읽은 뒤 그 책을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에게 보내는 방식이다.
모든 멤버에게로의 여행을 마친 책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기나긴 여행을 마친 그 책 안에는 각자가 읽으며 좋았던 부분과 느꼈던 것들이 빼곡히 남아, 맨 처음의 책과는 다른 책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은 새책을 선물 받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설렘을 가져다주는... 정말이지 세상에 1권밖에 없는 특별한 책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멋진 아이디어인 것 같다! 크...)
모두가 책을 읽던 블루스퀘어의 전경
처음으로 내게 여행온 책은 "브로콜리 펀치"라는 소설책이었다. 지난번에 모임에서 읽고 독후감을 썼던 '안녕, 주정뱅이'가 못해도 10년 만에 읽은 소설이었듯이 나는 평소에 소설을 읽지 않는다. 그런 내게 푸징 작가님은 '분명 이 책이 위로가 될 것 이라며, 자기는 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내가 울었던 부분에서 덕규 너도 울게 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아련한 영업을 펼쳤다.
작가님의 영업에 넘어간 나는 덜컥 그 책을 첫 책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가방에 넣어 다니며 틈틈이 읽어나갔다. 정말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깊게 빠져드는 책 속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 슬며시 파고들었고 나도 거부감 없이 이야기에 젖어들었다.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들이 어찌나 이쁜지 그 표현에 감탄해서 '크... 개쩐다' 라며 밑줄을 긋기도 했고(졸음이 올 때 즈음 눈을 감으면 베란다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밤의 공기를 한 겹씩 거쳐 우리가 누워 있는 방까지 흘러들어오는 그 소리는 부드러운 자장가처럼 나를 잠재워 푹 잠들 수 있었다-P.27),
이야기 속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된 나머지 '아... 그랬구나'하고 잠시 머물기도 했다(다들 어디로 갔을까. 아마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곳은 향기롭고 따뜻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이겠지. 그런 곳으로 당연한 듯이 향하는 사람들이 코가 찡할 만큼 부럽고 샘이 났다-P.228). 그중 한 편의 에피소드는 나를 정말 뚝뚝 울게 만들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부분은 푸징 작가님의 그 포인트와 다른 곳이었다.
나를 울게 만든 부분은 사고로 죽은 남자의 영혼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여자를 찾아와서 건네는 대사였다. "죽는 게 이렇게 무섭고 무서운데 수정 씨도 그랬을까 봐요. 죽은 뒤에는 쓸쓸하고 좁고 추운 세계뿐이었는데, 혹시 수정 씨도 나와 같은 이런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얘기예요 수정 씨가. -p.127"
그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당신 때문에 죽었다고 근데 어쩌면 너는 나를 잊고 새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 있냐"라고 여자를 원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죽은 남자가 보고싶어한 사람이 그 여자뿐이었고, 그래서 여자를 찾아가서도 '당신이 나처럼 고통받고 있지 않아서,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먹먹했다.
그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그 남자에게서 내 남편의 모습을 겹쳐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의 안위를 걱정하고, 오직 나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존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도록 아린 감정을 일으키니 말이다. 남자 주인공에게서 나의 남편을 본 나는 그에게 미안한 나머지 어느 카페 구석에서 혼자 코를 훌쩍대며 한참 눈물을 찍어냈다.
책의 말미에는 한 평론가가 적어둔 해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각 에피소드별로 작가가 담고자 했던 주제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해 평론가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풀어주었다. 그 해설을 읽으며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알게 됐고, 놓치고 지나간 부분을 다시 짚어보기도 했다. 모든 문학은 독자의 해석과 감상에 자유를 부여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추가적인 해설이 부가되는 것도 초보 독자에겐 좋을 것 같다.
그 글의 끝에는 이 책이 다시 한번 소설을 사랑할 수 있는 달달한 각성제로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혀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이 책을 통해 소설과 사랑을 시작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모든 주인공의 삶을 가까이 또 멀리서 바라보며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과정이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은 내가 참 소설과 찰지게 어울리는 사람이란 걸 알게 해줬다.
좋은 책을 보내준 푸징작가님께 감사를 표하며 이 책을 다음 여행지인 모모제인 작가님에게로 떠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