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삶의 모든 조각들
실행
신고
라이킷
18
댓글
7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방랑전문 상담사 덕규언니
Apr 13. 2023
정신 차려 이 여자야.
철썩 내 뺨을 쳤다.
아프다. 또 병이 났다.
계속 열이 오르내리고 아프다.
하루종일 머리가 지끈거리고
코는 막히고, 목은 쉬었다.
머리 밑이 다 벗겨지고
밑으로는 또 피가 비친다.
온갖 통증에 시달리고 있자니
정말 총체적 난국에 개똥이다.
몸이 모든 기력을 소진한 건지
가만히 앉아있어도 힘이 든다.
아침에는 눈을 뜰 수가 없고
낮에도 병든 닭처럼 픽 쓰러진다.
나는 백순데, 분명 쉬는 중인데
대체 왜 자꾸 아픈 걸까.
도저히 재활치료를 갈 힘이 없어서
원장님한테 한 번만 째자고 했더니
원장님이 헛소리 말고 오라고 했다.
방금 전까지 자다 일어났음에도
날밤을 샌 듯 초췌한 나를 보더니
요즘 잘 먹고, 잘 자냐고 물었다.
입맛이 없어서 끼니는 대충 때우고
피곤해 쓰러지지만 잘 자진 못한
댔다.
그는 일단 잘 먹어야 기력이 난다며
식사와 영양제를 챙겨 먹어보라 했다.
그래 그렇게 안 먹어서 뭔 힘이 나겠니.
그의 말대로 뭐든 먹어야 힘이 나고,
그래야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당장 먹을거리와 영양제를 주문했다.
휴직 후 첫 한 달은 정말 잘 지냈다.
6시에 일어나 하루를 알뜰히 썼고
에너지가 넘쳐나서 종일 날아다녔다.
그 여자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아무도 부과하지 않은 과업을 주고
나를 닦달하며 쪼아대긴 했어도
그자와 함께하는
시간
은 즐거웠다.
뭐든 할 수 있었고, 항상 설레었으니까.
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비해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짧았고
조급한 마음에 매 순간이 아쉬웠다.
대체 누가, 무엇이, 왜 그리 급한 걸까.
자면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컷 자고 일어나면 자괴감이 들고
이러려고 휴직을 한 건가 의문이 든다.
근데 사실은 이러려고 휴직한 게 맞다.
몇 년치의 피로와 켜켜 묵은 독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사라질 리 없다.
반년은 푸욱 쉬면서 먹고 자기만 해도
겨우 몸이 나아질까 말까 일 거다.
근데 그 쉬는 반년 간 또 뭘 해보겠다고
아침저녁으로 수험생마냥 달달 볶아대니
안 그래도 약해빠진 몸이 남아날 리가 있나.
쓰다 보니 아픈 이유가 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니까 아픈 거다. 이렇게 막 써대니까.
내 삶의 최우선 순위는 건강이어야 하는데
나는 건강을 젤 뒤로 젖혀놓고 딴짓만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은 여전히 가득하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쓰고 싶은 글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만나고 싶은 이도 많다.
그러나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걸 자꾸만 잊어버리니 이 모양 인
거
다.
본질을 잃으면 중심이 흔들리고
중심이 흔들리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지금 내 삶의 본질은 잠시 멈춰 선 것이고
그 목적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틈틈이
중심을 잡고 자주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자꾸만
본질을
잊고 흔들리
는 나의 뺨을 내려친다.
정신 차려 이 여자야.
안 그럼 또 무너져 너.
올해만 살고 죽을 것도 아니잖니
그러니 조급해말고 한 발씩 가자 제발.
한쪽 뺨이 얼얼하다.
정신이
조금 또렷
해진다.
keyword
백수
소진
통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