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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존경하는 나의 남편에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식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를 꽥꽥 내지르며 팔짝팔짝 뛰게 될 줄 알았는데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 주저앉아 꺽꺽 거리며 울었다.


그간의 모든 과정이 떠올랐고 이내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6시 출근 - 7시 퇴근. 뜨거운 사막의 더위와 작은 방안의 외로움을 끌어안은 채로 온종일 일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책을 붙들고 매일 씨름하여 얻어낸 결과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대한민국까지 오고 가기를 여러 번. 남편은 편도 7000km를 20시간 넘게 이동해 가며 1년에 걸쳐 1차 시험과 2차 면접을 보 오갔다. 그건 분명 쉽지 않은, 정말 대단한,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5년 만의 취직이자 3년 만의 합격이기도 했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홀로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했다. 남편은 내게 자신도 어딘가에 속하고 싶다고 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래서 내가 누굽니다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자꾸만 남편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고 매번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시험은 번번이 '안된다'며 퇴짜를 놓았다.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시험'이라는 터널은 끝이 보이는 듯하다 다시 연장되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스스로 '내가 부족한 탓인가, 이건 내 길이 아닌가' 수십 번 묻고 또 물으며 긴 어둠 속을 걸어왔다.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평가받고 반복적으로 거절당하는 경험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취준생 혹은 고시생이라는 이름 외에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미래가 계속해서 사람을 불안하고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주 오랜 시간 그 아픔을 견뎌야 했다.



면접날 아침, 남편을 따라나섰다. 이른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시험장에는 많은 이들이 한데 뒤섞여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같은 정장을 걸치고 있었지만 이미 그곳의 일원이 되어 출근하는 이들과 그 안에 속하기 위해 찾아온 면접생의 모습은 한눈에도 달라 보였다.


늘 입던 츄리을 벗고 아직 어색한 양복을 걸친 채 쭈뼛쭈뼛 서성이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콧잔등이 시큰했다. 그들이 보냈을 지난 시간들, 혼자서 분투했을 그날들이 떠올라 괜히 맘이 먹먹했다. 나는 면접장으로 올라가는 남편의 뒷모습과 옆 사람의 뒤통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두가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일 터였다.  


합격소식을 받자마자 그날 본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오늘, 누군가는 실패의 좌절을 맛보며 홀로 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섣불리 '괜찮다' 위로를 건넬 수도, 무작정 '다 잘 될 거라' 희망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황 안도하며 조용히 감사하는 것뿐이다.



이제 더는 모든 욕구를 참고 절제하며 책상에 앉기 위해 씨름하지 않아도 되고,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 큰 잘못을 한 것 마냥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제 지칠 때 쉬어도 되고, 자고 싶을 때 자도 되며, 감히 이래도 되나 고민 없이 마음껏 웃어도 된다. 남편이 마음 편히 있을 거라 생각하니 참 기쁘다.


이제 더는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 또 어떻게 공부하나, 과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고민하며 한숨을 쉬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무가치하고 쓸모없고 아무것도 아닌 기분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며, 사람들이 건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나 우리를 바라보며 보내는 딱한 눈빛들을 받지 않아도 된다. 남편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이제 더는 남편이 위축되거나 그의 마음이 무너질까 봐 전전긍긍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되고, 더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이 그저 힘든 모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남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 눈 웃음이 이쁜 당당한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렌다.   




가족들과 친구들, 은사님들에게 남편을 대신하여 합격 소식을 전했다. 대부분은 웃으며 축하해 주었고 몇몇은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당사자 없는 축하가 사뭇 아쉽게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렇게 우리 부부를 위해 마음을 쓰고, 함께 울고 웃으며, 우리의 행복을 기도해 주는 이들이 많다니 새삼스레 감사하고 뭉클하다.


어서 남편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영상통화 너머로 보였던 함박웃음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두 팔 벌려 그를 꼬옥 끌어안고 그간 고생했노라, 정말 대단하노라, 당신을 존경하노라 말하고 싶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남은 2달 동안, 나도 다시 건강하고 예쁜 웃음을 가진 아내의 모습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축하해 여보,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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